지역에서 본 언론

한국 지역신문이 어려움에 처한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1. 7. 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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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원주투데이> 오원집 대표이사(바른지역언론연대 회장)가 미국의 한 지역신문사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신문의 1면 머리기사가 동네 빵집 주인의 죽음이었다. 한국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였다. 오 대표가 물었다.

"이 기사가 1면 톱이 될 만큼 중요한 건가요?"

미국인 편집국장의 대답은 이랬다.

"이제 다시는 그 분이 만든 빵을 먹을 수 없으니까요."

내가 이번에 영국에서 사온 신문들도 그랬다. 아일랜드공화국에서 나오는 전국지 <아이리시 타임스>는 우리나라의 신문대판과 거의 같은 판형인데, 12면 전체를 털어 'Obituaries'라는 사망기사를 싣고 있다.

모두 5명의 사진과 기사가 실렸는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사회적 활동을 했으며, 그에 대한 주변인물들의 평판은 어땠는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일종의 '짧은 평전'인 셈이다.

강의 중인 원주투데이 오원집 대표.


영국의 북웨일스에서 나오는 <에코>라는 지역신문 27면은 결혼기사를 싣고 있었다.

△부부의 이름·나이·직업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했나 △어떻게 만났나 △프러포즈는 언제, 누가, 어떻게 했으며, 프러포즈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몇 년간 연애를 했고, 결혼식 때는 어떤 옷을 입었으며, 하객은 얼마나 왔나. 그리고 주례와 사회는 누가 맡았고, 축가는 누가 불렀는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으며 어떤 추억을 만들었는지 등의 내용이 기사에 담겨 있다.

영국 웨일스 지역의 일간지 사우스웨일즈 에코에 실린 웨딩 기사.


한때 <경남도민일보>도 '우리 결혼해요'라는 지면이 있었다. 찾아보니 2006년까지 실리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당시 글은 예비신랑이나 신부가 기고 형식으로 보낸 글과 사진을 지면에 실어주는 방식이었다. 다시 이 지면을 되살릴 수 있는 묘책을 찾은 것 같아 반가웠다.

사망기사도 마찬가지다. <경남도민일보> 역시 지역주민의 사망을 중요하게 다루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장례식장과 제휴도 시도해봤고, 부음이 들어오면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고인의 삶을 취재해 싣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슬픔에 빠진 유족들이 기자의 취재에 일일이 응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신문사 인물DB에 이미 프로필이 확보되어 있는 분에 한해 '떠난 이의 향기'라는 코너에 담아왔다.

하지만 이들 미국과 영국, 아일랜드의 신문을 벤치마킹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들 신문과 한국 신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리시 타임스>와 같은 전국단위의 신문에서부터 <레스터 머큐리> 같은 광역 일간지, 그리고 <메일>과 같은 소지역신문에 이르기까지 다들 '생활정보지'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동안 '한국 지역일간지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벼룩신문이나 교차로 등 생활정보지에게 소액광고 시장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라고 종종 이야기해왔다. 이번 영국연수 과정에서도 이 같은 믿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생활정보지를 겸하고 있는 영국의 지역신문들.


또 하나의 뼈아픈 사실은 한국 신문이, 아니 우리가 고비용을 들여 어렵게 생산한 콘텐츠를 너무 허무하게 일회성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흔히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라는 말을 하면서도 그걸 '신문 지면에도 쓰고, 인터넷에도 제공하는 것' 정도의 의미로만 자족해왔다. 그러나 영국을 포함한 유럽 신문들은 하나의 콘텐츠를 일간지와 인터넷은 물론, 무료 주간지, 커뮤니티 페이퍼, 전문 주간지, 전문 월간지까지 타깃층을 달리해가며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하여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영국 신문들뿐 아니라 오원집 대표가 조사해온 독일 신문들도 그랬다. 2만 5000부를 발행하는 <베르게도르퍼 차이퉁>은 전체 직원 중 기자가 26명에 불과하지만, 부족한 인력은 프리랜서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면의 경우 기자 1명과 자유기고가 1명이 1개 면을 담당하는 식이다. 이 신문도 생활정보지 3개를 주간으로 발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투입된 기자는 5명에 불과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일간지인 <힐데스하임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전체 직원 250명 가운데 40명이 편집국 소속이고, 인쇄 80명, 출판 50명, 마케팅 인력이 80명이다. 인쇄와 출판에 인력이 많은 것은 이 회사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출판사이기 때문이다. 이 신문사도 일간지(4만 5000부)와 생활정보지 2개(수요일판, 일요일판)를 발행한다.

영국 신문협회 조사 결과 독자들은 '지역신문의 지역뉴스'에 가장 관심이 높다고 한다. 또 '지역과 지역인물에 초점을 둔 기사'를 가장 선호한다는 미국신문연구소 조사 결과도 있다. 이쯤 되면 지역신문이 가야할 길은 명확해졌다.

바로 '더 지역 속으로, 더 사람 속으로', 좀 유식한 척 한다면 '하이퍼 로컬'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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