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여름철 표충사 우화루에서 놀아보셨는가

김훤주 2011. 7. 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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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놀며 지내려고 밀양 표충사를 찾았을 때, 가장 멋지고 좋은 자리는 우화루(雨花樓)랍니다. 특히 여름철에 표충사의 으뜸 전각인 대광전 맞은편 훤하게 열려 있는 이 우화루 아래 스며들면 그지 없이 시원하지요.

바로 아래 골짜기와 거기 물의 시원함도 우화루에서는 모조리 누릴 수 있습니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도 때때로 들리는 데 더해 언덕배기에 높이 자란 나무들의 그늘 덕도 보는 것입니다.

우화(雨花), 꽃비는 묘법연화경에 나옵니다. "석가모니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더없이 높고 반듯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하니 범천왕이 하늘에서 내린 연꽃이 수북히 쌓인 가운데 다시 향기로운 바람을 불어 시든 꽃은 날리고 다시 새로운 꽃을 내려보냈다".


지금이야 꽃비는 내리지 않지만 아침 나절 대광전에서 '석가모니불'을 되풀이 외는 스님 염불 소리는 우렁찹니다. 반면 앞마당에는 가끔씩만 사람이 지나다닐 뿐 한적합니다.


여기에 염불 소리가 크게 울리는 가운데, 대신 공간은 텅 비는 남다른 어울림이 있습니다. 염불 소리는 공간의 비어 있음을 도드라지게 하고요, 텅 빈 공간은 염불 소리의 울림을 더욱 키우는 셈입니다.

보살 한 사람이 걸어갈 뿐 텅 비어 있는 표충사 아래 마당.

대광전 불상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는 젊은 스님.


우화루 기둥에 기대어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켜보노라니 들고 있는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조는가 싶어 들여다봤더니 눈꺼풀에 조그만 움직임이 맺혀 있습니다. 물병에 담긴 물과 봉지에 넣어온 채소·과일을 조금씩 먹고 마시며 느긋하게 아침 나절을 누리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으뜸 전각을 바람이 사통팔달하는 가운데에 앉아 편하게 바라다볼 수 있보도록 여기 이 우화루처럼 누각을 만들어 놓은 절간은 무척 드뭅니다. 적어도 경남에서는 이런 누각을 본 적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화루의 이같은 맛을 알고 누리는 이는 뜻밖에 많지 않습니다. 표충사를 찾는 대부분이 절간 따위일랑 대충 한 번 훑듯이 지나칠 뿐이기 때문이겠지요.

우화루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멀리 으뜸 전각인 대광전이 보입니다.

우화루 현판이 나오게 사진을 찍었더니 사람이 조그마해졌습니다. 건너편에는 표충사의 옛 이름을 담은 '고영정(古靈井)' 현판이 있습니다.

2010년 8월에 찍은 우화루 사진.


대부분은 발길을 재우쳐 재약산 꼭대기로 올라가 산행하는 보람을 주로 누립니다. 여름이면 사람들이 더욱 많이 찾아오는데, 그들 또한 양쪽으로 펼쳐진 골짜기로 내려가 물놀이를 하는 즐거움만 오로지 누립니다.


표충사는 물론 골짜기가 훌륭합지요. 표충사는 하동 쌍계사와 마찬가지로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자리에 들어앉았습니다. 골짜기가 오른쪽으로는 파전이랑 막걸리를 파는 허름한 가게가 있는 데까지, 왼쪽으로는 내원암 가는 들머리에 이르기까지 이어집니다.

오른편 골짜기. 범종루와 우화루가 위쪽에 보입니다.

오른편 길이 골짜기랑 헤어지는 데 들어서 있는 가게의 요금표.

왼편 골짜기.


두 쪽 다 거리가 500m가량 되는데, 아무 지점에서나 들어가 자리잡으면 바로 그늘과 물이 풍성합니다. 표충사가 문화재 관람료로 한 사람에 3000원씩 받는데, 절간 가득한 문화재들은 전혀 눈에 담지 않았어도 여기 이 그늘과 물이면 본전을 뽑고도 남겠다 싶은 것입니다.


3000원을 내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보람도 적지 않습니다. 표충사 앞에서 두 물줄기가 합해지면서 이뤄진 개천인 시전천은 이미 풍성해져 있습니다. 이번 장마를 거치면서 물은 더욱 불어날 것입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어울리기 좋도록 야영장도 잘 마련돼 있습니다.


아래쪽 주차장과 표충사를 잇는 아스팔트길도 산책하는 데 아무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올라오면서 오른쪽 내려가면서 왼쪽에 있는 오솔길은 산책로로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잘 다듬어져 있는 오솔길.

산책로로도 그럴듯한 아스팔트 진입로.


날이 흐리기도 했지만, 소나무는 숲을 이뤄 아래를 어둡게 했고 덩굴나무들은 그 나무들을 감고 오릅니다. 스님들 다비장을 치르는 조그만 시설도 한 켠에 놓여 있는데 청신한 향기가 숲을 감싸고 돕니다.


버스 종점이 있는 아래쪽 공설 주차장에는 음식점들도 함께 붙어 있습니다. 가장 위쪽 개울과 붙어 있는 데에 자리잡은 '안동 민속촌'에서는 평상에 앉아 물흐르는 개울물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음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1만3000원짜리 산채전에는 저마다 독특한 냄새를 뿜는 산나물들이 그득했습니다. 간장에 절인 곰취를 비롯해 밑반찬도 좋았고 대추 조각이 동동 뜨는 동동주도 괜찮았습니다.

안동 민속촌의 깔끔한 안주와 동동주.


여름철에는 시내버스 타고 즐기더라도 출발하는 지점과 마치는 지점이 같은 것이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무더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기 때문이지요.


이번 나들이는 밀양버스터미널에서 22일 오전 8시 45분발 표충사행 버스(2900원)를 타고 공설 주차장에 내리는 것으로 시작해 오후 2시 10분 같은 장소에서 밀양행을 타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내려서 아스팔트길과 오솔길을 번갈아 걸어 표충사와 우화루를 맛보고 오른쪽과 왼쪽 골짜기를 오가며 개울가에서 노닌 다음 도로 내려와서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간 거리 전체를 치면 4km남짓 되지 않겠나 짐작됩니다. 봄이나 가을이라면 2km가량 아래 있는 삼거 마을까지 그냥 걸어가도 될 만큼 길과 둘레 풍광이 괜찮았습니다.

김훤주

위에 있는 '가례'는 '가게'의 잘못이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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