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권력횡포 이긴 수정주민들, 25일 한판 잔치

김훤주 2011. 6. 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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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정 주민들, STX 진입을 막았다

2007년 10월부터 4년 가까이 STX의 수정만 매립지 진입에 반대해 온 마산 수정 마을 주민들이 25일 마을 구산초등학교에서 축하 잔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창원시가 5월 16일 'STX 중공업(주) 수정산업단지 조성 포기 입장 표명'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와 바로 붙은 공장,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공장, 마을과 왕복 2차로로 붙은 공장이 들어설 가능성은 사라졌다 해도 되겠습니다.

수정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아무도 상상도 예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했습니다. 거대 행정 권력과 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을 때, 모두들 "계란으로 바위치기", "결국은 지는 싸움일 수밖에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수정 주민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힘을 다해 저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향해 몸을 던져 저항하면서 수없이 깨지는 계란들이 또 다시 일어서서 바위치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5월 16일 거대한 바위가 갈라졌음이 확인됐습니다. 수정 주민들에게는 꿈만 같은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적의 주인공들이, 그간 곁에서 거들었던 사람들을 모시고 25일 잔치를 합니다.


2. 많은 시민들의 말없는 지지도 큰 힘

수정 주민들은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당시 시장이던 황철곤 선수로 대표되는 마산의 기득권 세력이 수정 마을 사람들의 이같은 행동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치고 '마산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황철곤 선수는 행정 역량을 동원해 관제 집회와 관제 데모를 조직 지원했고 관변단체들은 얼씨구나 집회를 했을 뿐 아니라 일 있을 때마다 꼭 맞춰 나타나 자기네만 지역 여론을 대변하듯이 굴며 수정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일들이 수정 마을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했고 의기소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계각층 많은 사람들이 수정 주민들의 마을을 지키는 노력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지지해 줬기에 이들이 스스로 추슬러 처지지 않을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를 이렇게 불쑥 꺼내는 까닭은, 겉으로 드러나게 수정 사람들과 함께하고 거든 단체나 사람도 고맙고 소중하지만, 흔들림 없이 밑바닥 여론을 지켜주신 보이지 않는 이들도 무척 고맙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25일 수정 마을 잔치에 평범한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꼭 드러내 놓고 활동하거나 공공연하게 움직이지는 않으셨어도 이런 시민 여러분들의 보이지 않는 지지와 성원이 없었으면 이같은 잔칫상이 차려지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 30분부터는 구산초등학교에서 경과 보고와 발자취 영상, 푸짐한 점심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돼 있고요, 1시간 앞에는 같은 마을 트라피스트수녀원 성당에서 감사 미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습니다.

3. 갈등 길고 깊어진 원인은 행정과 자본이 제공

어쨌거나, 한 번 돌이켜 보면 수정만 매립지 STX 진입 추진으로 말미암은 갈등은 자본과 행정이 상식과 원칙대로만 했더라도 일찌감치 한 해도 안 돼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든 뭐든 욕심에 눈이 먼 자본과 행정이 상식을 망가뜨리고 원칙을 까뭉개는 바람에 주민의 뜻이 비틀어졌고 이 때문에 갖은 무리가 더해졌으며 세 해가 넘도록 주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핵심은 2008년 5월 30일 치러졌던 주민 투표입니다. 당시 황철곤 선수가 시장으로 있던 마산시가 공장 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과만 손잡고 밀어붙인 주민투표였습니다.

황철곤은 주민 투표를 앞두고 한 주일인가 동안 수정 마을로 출근해 업무를 볼 정도였습니다. 마산시 공무원을 총동원해 수정 마을 사람들을 어르고 주물러 댔습니다.

마을에서 장사를 하거나 축산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약점을 잡아서 찬성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같은 주민인 STX 수정만 매립지 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참여는 보장해야 했지만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투표하는 날보다 겨우 사흘 앞선 5월 27일에야 일정과 계획과 대상 범위 따위를 반대하는 모임에 알렸습니다. 반대하는 수정마을 주민대책위원회는 이미 서울행 투쟁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투표가 이뤄졌습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현지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도 투표에 동원이 됐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찬성하는 조직과 마산시 행정을 영향력을 있는대로 부렸습니다.

개표 현장 모습. 오른쪽 마이크에 손대고 있는 이가 황철곤 선수.


그러나 투표한 숫자 자체가 전체 투표권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150명 가운데 49.6% 남짓한 570명밖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절반에 못 미쳤으므로 이러면 일반적으로는 개표도 않고 부결입니다.

더욱이 찬성한 사람은 520명뿐이었습니다. 전체의 45% 수준입니다. 마찬가지 과반수 동의가 안 됐으니 부결인데도 황철곤은 그날 그 자리에서 이 같은 결과를 두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전체 주민 동의'라 선언했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STX그룹은 이를 바탕삼아 6월 5일 수정 마을 주민들의 찬반 투표와 그에 대한 마산시의 선언을 '존중한다'며 수정만 매립지에 공장 진입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갖은 방법으로 개입을 해댔다 하더라도, 아니 바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개입해 후리고 어르고 주무르고 했는데도 찬성이 절반에 이르지 못했다면 깨끗이 승복을 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렇게만 했다면 길어도 일곱 달만에 끝났을 갈등입니다. 그러나 우월한 지위에 있었던 행정과 자본이 주민의 명백하게 표현된 의사를 무시하는 바람에 3년을 더 끌었습니다. 그 와중에 겪은 주민들의 고난은 하나둘이 아닙니다.

4. 할머니들 옷 벗는 일 다시는 없기를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만, 보기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2009년 6월 5일 열린 경남도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는 수정만 매립지의 수정 일반 산업단지 건설 계획을 조건부 가결했습니다.

주민에게 약속한 26개 사항을 잘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6개 약속은 들어서기 전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5월 16일 포기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STX는 지킬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조건부로 허가하면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말하자면 막 가는 결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게
다가 심의위원회는 비공개로 열렸고 회의록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수정 마을 주민들은 6월 8일 김태호 도지사를 찾아갔습니다. 항의하고 면담하기 위해서였지요. 결국 주민 대표들이 면담을 하기는 했지만 주민들은 경찰에게 가로막혀야 했습니다.

"없는 사람 우습게 보고, 마산시하고 STX 편만 드는 도지사 꼴 좀 보자!" 수정마을 주민 70명 남짓이 도청으로 들어가려다 청원경찰과 경찰이랑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젊은 경찰들에게 늙은이들이 맞설 힘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들 가운데 할머니 20명 가량이 윗도리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나서기도 했고 일부는 기진맥진해 쓰러지거나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이날, 이 사람들은 통곡을 했습니다. 저는 그 때 부끄러웠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할머니들이 이토록 험한 몰골을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겠는지요? STX 거대 자본도 이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감옥에 들어 있는 황철곤 당시 마산시장도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김훤주

이장이된교수전원일기를쓰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학일반 > 사회비평에세이
지은이 강수돌 (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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