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송미영 이야기(5)가곡명인 조순자 선생과의 인연

기록하는 사람 2011. 6. 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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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의창구 봉곡동에 있는 미영 씨의 집 현관문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묵직한 장식품(?)이 둘 있다. 벽에 세로로 걸려 있는 가야금이다. 자세히 보니 그냥 장식용 모조품이 아니라 진짜 가야금이다. 국숫집 주인 집에 웬 가야금일까?

미영 씨는 고등학교까지 자퇴한 후 1년 넘게 엄마 병 수발과 장애인들 뒤치닥거리에 매달렸다. 그런 미영 씨 덕분에 당시 코흘리개였던 막내 애영(30) 씨도 탈없이 자랄 수 있었고, 남동생 둘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벌써 23·4년 전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 송병수 씨는 병든 아내와 어린 자식들 때문에 장녀를 희생시킨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영 씨가 열 아홉 되던 해 어느날 '큰 딸을 저렇게 키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그가 찾아간 곳은 그 때도 이미 가곡(중요무형문화제 제30호) 명인으로 유명했던 조순자 선생의 댁이었다.

부녀의 방문을 받은 조순자 선생은 미영에게 가야금을 주며 줄을 뜯어보라고 했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가야금이었다. 그러나 조 선생은 첫 소리만 듣고도 바로 자신의 문하생으로 받아들였다. 한 눈에 재능을 알아본 것이었다.


"지금도 선생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저를 너무나 잘 알아주시고 이뻐해준 분이셨어요."

선생님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미영에게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게 했다. 당시 조순자 명인의 국악학원을 드나들었던 많은 문하생들이 미영 씨를 '작은 선생님'으로 알았던 이유다.

"하루는 선생님이 조용히 저를 불렀어요. 비가 엄청나게 오는 날이었는데, 제 가야금 소리가 듣고 싶다고 하더군요."

빗소리와 함께 한참동안 미영 씨의 연주를 듣고 있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프냐? 네 소리에 아픔이 배어 있구나. 네 아픈 과거도 소리로 다 알 수 있단다. 힘드냐? 나도 힘든 시절이 있었단다. 하지만 세상이 널 알아줄 때가 올거다.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주마. 포기하지 마라."

낮에는 가야금을 배우고, 저녁과 아침에는 병든 엄마와 집안을 가득 채운 장애인들을 돌보는 생활이 계속됐다. 거동을 못하는 장애인들의 목욕을 시켜주는 것도 미영 씨의 일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들의 아침밥까지 해놓고 집을 나섰다.

미영의 그런 처지를 알게 된 조순자 선생이 나섰다. 자신의 수양딸로 데려오겠다는 것이었다. 아예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보낼 생각이었다. 후계자로 키울 결심을 한 것이다.

"미영아. 이제 너희 집에 가지마. 나와 함께 살아. 지금부터 공부해. 날 엄마라고 불러. 내 수제자라고 만천하에 공개할거야."

그리곤 장애인들이 득실거리는 마산 두척동 미영의 집으로 선생이 직접 찾아갔다.

"지금도 너무나 유명한 분이지만, 그 때도 선생님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분이 아니셨어요. 그런 분이 우리집까지 찾아온 거예요. 아버지께 '이제 미영이를 놔 주세요'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을 숨어서 들었죠."

하지만 수양딸과 수제자는 커녕 미영 씨는 가야금 공부마저 아예 포기해야 했다. 엄마의 병세가 갈수록 위중해졌고, 엄마를 대신하여 보살펴야 할 장애인 식솔들은 계속 늘었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 그냥 그 땐 포기하고 싶데요. 내 가족, 내 동생, 우리 집 식솔들이 중요하지 내가 성공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마음을 다졌죠."


덤덤히 말하던 미영 씨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인터뷰도 잠시 중단됐다. 눈물이 그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영 씨의 삶에서 그 때 조순자 선생과의 인연이 가장 애틋하고도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렇지만, 그 때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조순자 선생님을 따라가라고 했으면 갔을 것 같아요."

미영 씨 집의 가야금을 벽에 걸어둔 이는 남편 도연 씨다. 여러번 이사를 다녔지만 가야금만은 꼭 챙겨 다락에 숨겨두는 아내를 보고, 남편이 내걸었던 것이다. 큰 것은 정악 가야금, 작은 건 산조 가야금이란다.

- 조순자 선생님과는 그 때 헤어진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나요?

"못했죠. 뵐 면목이 없으니까요. 직접 뵙진 못했지만, 테레비에 나오시는 모습은 여러번 봤죠."

- 지금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음…. 아마도 언젠가는 호호국수에 국수 드시러 오실 것 같아요. 언젠가 한 번은 오시겠죠. 제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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