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해준 책 <지의 정원>

기록하는 사람 2011. 2. 1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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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가 쓴 < 知의 정원 >(예문)을 다 읽었다.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영 교수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다. 이지성이라는 분이 쓴 < 리딩으로 리드하라 >(문학동네)는 책과 함께 선물받았는데, 두 책 모두 인문학과 인문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책이다.

나는 < 知의 정원 >을 먼저 읽고 < 리딩으로 리드하라 >을 읽고 있는데, 막상 읽고 보니 < 리딩으로 리드하라 >를 먼저 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 리딩~ >을 먼저 읽어 인문고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 知의 정원 >을 읽으면 훨씬 더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 知의 정원 >은 동서양의 수많은 책을 권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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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 知의 정원 >을 읽고난 뒤 드는 느낌은 '그동안 내가 읽은 책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열등감에 빠질 수도 있는 책이다. 그러나 어쩌랴. 뒤늦게나마 이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줬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 知의 정원 >을 읽는 동안 기억해두고 싶은 글귀들을 메모해봤다.


과거를 기억해야 할 까닭

"과거를 청산하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를 변경하거나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 눈을 닫는 자는 현재를 볼 수 있는 눈도 갖지 못한다. 과거에 저질러진 비인간적인 행위를 상기하고자 하지 않는 자는 앞으로 새롭게 일어날 비인간적인 것의 전염력에 패하게 된다."(다치바나 다카시)


"인터넷에서 찾아낸 최첨단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본이 되는 책을 먼저 읽어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색엔진에 어떤 키워드를 입력해야 할 지 몰라 머뭇거리게 되죠."(다치바나 다카시)

지식과 교양의 차이


"지식과 교양은 구분해야 합니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알아야 할 기본상식이 지식이라면, 교양은 그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과 같아요. 교양이 없으면 진정한 지식의 세계에 다다를 수 없는 거죠. 전화 거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번호부가 무용지물인 것처럼 말입니다."(사토 마사루)

"교양은 다른 말로 하면 인류의 지적 유산입니다. 그래서 교양 교육은 지적 유산의 재산목록을 가르치는 것이 됩니다. 지식의 전체상을 그리도록 하고, 지의 세계의 끝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지점으로 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이 교양교육이라고 봅니다."(다치바나 다카시)

"뇌의 발달이 책읽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뇌 과학에서는 상식입니다. 일본어에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와 한자가 있습니다. 결국 음과 문자의 의미가 미묘하게 틀어지게 되는데 뇌는 이런 비틀림이 존재할수록 그 복잡성에 순응하기 위해 고차원적인 발달을 이루어냅니다. 그런 이유로 일본인의 뇌는 굉장히 발달되었지요. 예전에 일본어를 로마자로 바꾸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시가 나오야가 "일본어를 폐지하고 프랑스어를 받아들이자"라고 했는데 터무니없는 말이죠."(다치바나 다카시)

시험공부가 사람을 멍청이로 만드는 이유


"다치바나 : 공부를 할수록 머리가 나빠진다고요?

사토 : 네. 그 중 하나가 입시공부입니다. 국가공무원시험이나 사법시험을 서너 번씩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기억한 것을 일정한 시간에 종이 위에 재현하는 것은 우리 뇌의 기능 가운데 기억력과 조건반사 능력밖에 사용하지 않는 거죠. 한 분야에서 지나치게 오랫동안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머리가 나빠집니다. 입시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다 보면 머리가 나빠져서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외무성에도 4~5년씩 시험 준비를 하다가 합격해서 들어온 외교관들은 쓸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의 위험성을 논한 쇼펜하우러의 <독서에 대하여>를 읽어두면 좋습니다. 쇼펜하우어 자신은 대단한 독서가였지만, 독서가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이 책에서 거듭 경고합니다. 독서한 다음에는 생각하는 행위가 필요한데,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어 오히려 머리가 나빠진다는 것이죠.(웃음)"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일본과 한국


일본 외무성에서 연수생을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에 유학보냈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한 세 명이 성적불량으로 모두 퇴학을 당했다. 이유를 알아보니 수학과 철학, 논리학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 사토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는 '수학'이었습니다. 미적분도 선형대수도 못하니 산업연관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거였죠. 금융공학 수업에서 편미분이 나오면 완전히 포기 상태였고요. 그 연수생들은 일본에서 경제학 석사학위까지 딴 사람들이었는데 말입니다. 러시아 교수들이 오히려 어떻게 된 일인지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철학'이었습니다. 러시아 대학에서는 무슨 학위든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철학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연수생들 가운데 일본 대학에서 철학 학점을 딴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니 러시아에서 철학 수업을 따라가기가 여의치 않았던 거지요.

다치바나 : 저는 고등학교에서 반드시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리세 최종 학년(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에서 철학을 확실하게 공부시키죠. 철학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토 :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고의 틀을 알기 위해서도 철학은 필수적이죠. 마지막 문제는 '논리학'이었습니다. 동일률, 모순률, 배중률에 대한 사고방식을 모르면 배리법을 쓸 수 없는데,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논쟁을 할 수 없습니다. 어디어 논리적인 모순이 있는지 지적할 수 없기 때문이죠."

미국 패권주의의 철학적 배경


"프로그머티즘은 다시 말해서 뒤에 신이 숨어있다는 것이지요. 하늘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성공한다는, 일종의 중세적인 리얼리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힘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정당화되지요. 미국인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올바른 것'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그 저변에는 프래그머틱한 발상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사토 마사루)

"미국의 서부개척은 계몽주의 정신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디언 같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종족은 이성으로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서요. 지금 미국이 하고 있는 외교행위도 그러한 관점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나 걸프 전쟁,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도 과거 인디언 정벌과 마찬가지로 미개하고 야만적인 민족에 대한 계몽이라는 사고가 깔려 있는 거죠."(다치바나 다카시)

실재하진 않지만 실존하는 권력당


"제 생각에는 '권력당'이라는 정당이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파르차 블라스티', '파워(권력)의 정당'이라는 말입니다. … 권력당원의 조건은 권력의 가장 핵심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사카이야 다이치처럼 각료가 되거나 또는 정부의 자문의원이 되면 권력당원에서 탈락할 위험성이 있지요.(웃음) 권력은 어딘가에서 어느 새 교체되니까요. 권력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항상 권력의 안쪽에 있는 것, 이것이 권력당원의 요건이라서 언제나 건설적인 비판자가 돼야만 합니다. 건설적 비판자라고 해도 반체제적이거나 좌익적이어서는 안 되지요.

제 생각에는 앵커이나 평론가인 다하라 소이치로는 진정한 권력당원입니다.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웬만큼 독특한 기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권력당원의 당적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결코 비꼬는 게 아닙니다. 미디어와 정치를 연결하는 회로로서 권력당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사토 마사루)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생긴 경위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생기게 된 경위가 생각났습니다. … 홀로코스트를 추진할 때 상사가 지시를 내린 방법이 "잘해"입니다. 현장에서는 그걸 어림짐작해서 홀로코스트를 실행하지요. 그렇게 되면 홀로코스트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증거를 찾으려 해도 정확한 명령이 없으니 여기저기에 증거가 누락돼 버리죠. 그 누락된 부분의 증거만을 이어서 논리를 세우면 홀로코스트는 없었다는 증명이 가능해집니다."(다치바나 다카시)

사이비과학에 열광하는 이유


"이토록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지식이 높아지는데도 어째서 모두 시시한 것에 믿음을 주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순응하는 마음가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어떤 정보에 대해 하나하나 검증할 수 있는 기초적인 학력, 다른 표현으로는 논리 관계를 쫓아가는 능력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검증해야 할 정보가 방대해지면, 스스로 하나씩 검증하다가 결국 지치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선 식자층이 말하는 것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스스로는 이해를 못해도 누군가가 설득해줄 거라는 마음이 생기는 거지요. 이런 순응하는 마음가짐 때문에 수동적으로 변합니다.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쉽게 순응하게 되지요.(웃음) 와이드 쇼의 유식한 해설자가 설명을 해주는 것은 일단 확실할 거라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 점이 무서운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순응주의에 기술까지 결부되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구심이 드는 점은 요즘처럼 출판이 불황인 상황에서 혈액형으로 성격을 진단하는 책만은 매우 잘 팔린다는 것입니다. … 혈액형과 성격을 결부시키는 논의가 의미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지요. 그런데도 정기적으로 혈액형 성격테스트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유럽에서는 나오지 않지요. 왜냐하면 유럽에서는 혈액형과 성격을 결부시키면 금세 나치즘으로 간주될 수 있으니까요."(사토 마사루)

모순과 대립, 그리고 차이라는 개념

"헤결의 개념 틀 안에서 논의해보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헤결은 모순, 대립, 차이라는 개념을 구별하지요. 마르크스가 든 예이지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모순이 있어도 협동조합을 만듦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의 전환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모순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립은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완전히 절멸시킬 때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차이는 해소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논쟁하는 상대가 "당신이 뭐라하든 이것은 내 취향이다"라고 해버리면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될 수 없습니다. 취향은 차이니까요. 차이는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느 쪽 입장에 서는가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보입니다."(사토 마사루)

자본가가 아니라 스패셜리스트가 되라

카츠마 카즈요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 <거절하는 힘>의 저자.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오해가 많습니다. 그녀가 기본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숙련노동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머니 게임인 주식에 투자하여 돈을 벌고, 자본가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출세해서 경영자가 되라는 것도 아니지요. 꼭 필요한 만큼의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만의 시간으로 활용하라는 겁니다. 단, 적당히 살면 단순한 상품처럼 돼 버리므로 스페셜리스트가 되라는 것입니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단순노동자가 아닌 <자본론>이 설파하는 숙련노동자가 되라는 것이지요."

지의 정원 - 10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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