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하지 말아야 할 이유

기록하는 사람 2008. 5. 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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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여론조사 주관했던 신문사 정치부장의 고백

지난 2008년 4·9총선 후보자별 지지도 여론조사는 완전한 실패였다. 수많은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이 시시때때 조사결과를 발표했으나 완벽하게 적중시킨 곳은 없었다. 심지어 방송사 출구조사마저 틀렸다.

경남의 경우도 거제 선거구가 그렇게 박빙일 줄은 몰랐다. <경남도민일보>도 'Q&A리서치'와 공동으로 접전지역 여론조사를 했지만 틀린 곳이 적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선거구 단위와 유권자 수가 적을수록 정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유권자의 관심도가 낮은 선거일수록 여론조사의 오차도 커진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4월 30일 경남총선미디어연대가 창원시청 2층 대강당에서 주최한 제18대 총선 보도를 점검하는 토론회. 이날 토론에서도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이 집중적으로 나왔다.


출구 조사마저 빗나간 총선

대통령 선거나 도지사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틀린 적이 없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정확성이 전제되지 않는 여론조사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특히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는 후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유권자들이 태반이다. 정작 지역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이나 방송의 지역뉴스보다는 서울일간지, 서울 뉴스를 지역사람들이 더 많이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경우 여론조사는 후보자별 '지지도' 조사가 아니라 사실상 '인지도' 조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한 번이라도 들어본 익숙한 이름에 응답해버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현역이나 거대 정당의 후보에게 절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선거 초반에 이뤄진 '인지도'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왜곡된 인지도 순위가 판세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참신한 신인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런 걸 뻔히 알면서 <경남도민일보>마저 지난 총선 때 왜 여론조사를 했나. 그때 내가 선거보도 담당 부서장이었는데, 솔직히 총선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사실 2002년 지방선거 때 우리는 여론조사의 이런 문제점을 알게 됐고, 그 이후 지방선거에서는 여론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총선은 지방선거와 좀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의 관심은 낮았고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자기 선거구가 갑인지, 을인지도 모르는 유권자는 물론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까지 후보자들의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투표일에 임박해 좀 알만할 때에는 선거법상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러니 정확할 수가 없었다. 우리 딴엔 접전지역이라고 찍은 곳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그것마저 틀려버렸다. 이 지면을 빌려 독자들께 사과드린다.

다만 한 가지 위안으로 삼을만한 것은 본격 선거운동기간에 앞서 정책 이슈와 지역 현안, 그리고 유권자의 정치의식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권자의 현안에 대한 입장이 뭔지를 알 수 있게 했고, 후보자들에게도 어떤 공약을 내놔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창간기념호(13일자)에서도 경남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정책 이슈와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되어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완화 및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논란, 한반도 대운하 건설 논란 등에 대해 경남도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 중에서도 이들 현안으로 인해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최근 경남도민일보가 조사해 발표한 정책여론조사 결과.


정책 여론조사로 전환해야

눈길을 끈 것은 실제 국민 개개인의 삶에 가장 큰 변화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민영의료보험에 대해 도민들의 70% 이상이 그 내용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거 때에도 이미 나왔던 얘기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따져보지도 않았거나 잘 모르고 그냥 찍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서 나는 언론의 무거운 역할과 책무를 느낀다. 어차피 정확하지도 않은 후보자별 지지도 여론조사에 목숨 걸지 말고, 선거에서 이슈가 될 만한 정책이나 현안을 학자나 기자들이 찾아내 주기별로 여론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잘 모르고 있던 유권자들에게 정책이나 공약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알려주는 효과도 있고, 선거에서 정책과 공약을 이슈화함으로써 의제설정 기능에 충실할 수 있다. 그러려면 기자들도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여론조사 문항조차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선거에서부터 지지도 조사를 포기하고, 정책 여론조사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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