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광주에선 '쇠고기 발언' 하지 말라고?

기록하는 사람 2008. 5. 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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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일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그냥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 광주일보 > 토요일자를 한 부(400원) 샀습니다. 1면 머릿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5·18 행사 정치 변질 안된다'는 제목이었습니다. 이게 뭔 말인가 싶어 자세히 읽어봤습니다. "5·18 민중항쟁 28주년 기념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념식을 전후로 외지단체의 각종 시위·집회가 예정돼 있어 5·18 정신의 훼손과 정치적 변질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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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2008년 5월 17일자 1면.


여기서 말하는 '외지단체'란 민주노총과 한총련이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총련이 5·18 기념일을 전후에 광주에서 집회와 시위를 하면 5·18 정신이 훼손되고 정치적으로 변질된다니요? 대체 < 광주일보 >가 말하는 '5·18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조용히 기념식만 치르면서 추모만 하는 게 5·18 정신을 바르게 계승하는 걸까요?

5·18 정신은 불의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또한 정권의 살인진압에 맞서기 위해 총까지 들었던 분들이 광주의 민주열사들 아니었던가요?

< 광주일보 >의 기사는 또 이런 우려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5·18 행사준비위원회가 광우병 파동·한반도 대운하·한미FTA 등 민감한 사회 현안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5월 선언문'이 애초 발표된 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게 확정돼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처럼 < 광주일보 >는 행사준비위원회가 발표한 '광주선언'도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광주 5월 선언'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원문을 올려놓은 보도매체나 블로그 포스트가 없더군요. 어렵사리 행사준비위원회 홈페이지(http://www.518-28.org/sub4/notice/?cate=view&page=1&num=12)에서 찾았습니다. 읽어봤더니 구구절절이 옳은 말만 해놨더군요. (아래 상자 '광주 5월 선언 전문' 참조)

민감한 사회 현안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도 5·18 정신에 위배되는 걸까요? 80년 광주의 민주영령들은 당시의 '민감한 사회 현안'을 정면으로 지적하지 않았나요? 오히려 그걸 정면으로 지적하며 투쟁하는 것이 5월 민주영령들께 보답하고 5·18 정신을 계승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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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밤 광주 금남로에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쇠고기 수입반대 펼침막을 3000원씩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 광주일보 >가 말하는 5·18 정신은 아마도 이런 것 같습니다.

1. 광주에 있는 단체와 시민이 아닌 민주노총이나 한총련 같은 외지 단체가 광주에서 집회·시위를 하면 안 된다.

2. 광주에 있는 단체는 물론 5.18행사 주최측이라도 이명박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발언하지 말아야 한다.

3. 발언하지 말아야 할 '민감한 사회 현안'이란 광우병 파동·한반도 대운하·한미FTA 등을 말한다.

여러분, < 광주일보 >의 이런 5·18 정신에 동의하시나요?

2008 오월 선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 간 젊은 넋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열사들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쳤던가! 그로부터 28년이 지났건만 조국의 하늘은 평화로운가 대동의 세상인가 백성은 진정 나라의 주인이 되었는가?

보라 산자들이여  2008년 오월의 오늘을 ! 
무한경쟁과 돈벌이만을 최고의 가치로 몰아가는 이땅의 현실은 인간성마저 위협하고, 양극화 심화로 인한 빈곤의 대물림은 도를 넘어서고 있으니 노동자, 농민, 민중의 신음소리는 방방곡곡을 울리고 있다.

의료, 교육, 물, 전기, 가스 등 공공분야의 시장화 음모는 민중의 복지를 파괴하려 하고, 실효성 없는 대운하 공약 강행은 금수강산 곳곳을 파헤쳐 환경 재앙을 부르고 있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은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온 국민을 광우병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강대국의 간섭과 굴욕적인 사대외교는 국가 주권을 뒤흔들고 남북 화해를 통해 무르익던 통일의 염원마저 긴장과 대결로 뒤바뀌고 있으니 이 어찌 민의를 거스르는 역사의 반동이 아니라 하겠는가?

이제 다시 일어서자  오월의 함성으로 !
부패하고 타락한 세력은 국정을 농단하고 민심을 어지럽힌 채, 우리더러 민주적 권리를 포기하고 절망하며 살라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건강과 생명, 생존의 권리와 나라의 주권마저 송두리째 다 내주고 굴욕적 삶을 요구한다.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도 인권도 평화도 모든 것이 자본의 이익 앞에 부정되고 있으니, 이 어찌 우려하고 개탄할 일이 아니란 말인가.

미완의 혁명 오월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제 다시 오월의 희망으로 온갖 불의한 것들을 부수고 새 세상을 노래하자.  5월의 함성으로 다시 일어나 자주와 평등, 민주와 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 나가자.

우리는 오늘, 5·18민중항쟁 28주년을 맞아 남과북 해외의 8천만 겨레와 세계만방의 민중 앞에 엄숙히 선언한다.

하나,  오월의 촛불되어 세상을 밝히자.
번져가는 촛불은 오월의 희망이다.  
국민의 뜻과 역사를 거역하는 오만함을 밀어내고 오월의 촛불되어 어두움을 불사르자.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한·미FTA 막아내고, 검역주권과 식량주권 옹호를 위해 모두가 다 촛불되어 나서자. 

하나,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다"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살리자.
돈과 권력이 어지럽히는 모순에 찬 현실앞에 백성의 시름은 커져만 간다. 사회양극화 심화시키는 비정규직 확산, 농민말살, 교육의 피폐화, 돈벌이 의료, 공공부문 시장화, 환경재앙 대운하 정책을 막아내고 오월정신 꽃피울 대동의 세상 만들어 가자  

하나, 한반도 불행의 근원은 외세와 분단이다."오월에서 통일로" 민족의염원 실현하자.
더 이상의 전쟁과 대결은 민족의 수치이다.
6.15남북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외세를 거부하고 당당한 나라, 통일된 조국을 위해 8천만 겨레여 손에 손잡고 나아가자.

하나, 오월의 희망으로 새로운 인류역사를 만들어 가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세계 인류에게 절망을 강요한다.
민주와 인권, 평등과 평화를 억누르는 모든 탐욕과 패권, 약탈과 전쟁을 배격하고 정의와 평화의 세계, 대동의 인류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자.

5·18민중항쟁 28주년 5월 18일
- 5·18민중항쟁 28주년 기념행사위원회 -


※덧붙이는 말 : 토요일 저녁 광주에 사는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솔직히 한총련이나 민주노총이 광주에 와서 데모를 하는 데 대해 광주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경우 자기 동네나 자기 학교에서는 변변한 집회 하나 열지 못하면서 광주를 이용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때문에 '광주는 데모만 하는 곳'이며 '광주시민은 강성'이라는 국민들의 선입견을 고착화시킨다는 피해의식도 크다."

동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 광주일보 >가 차라리 이런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사를 썼다면 이해했을 겁니다.

한총련 소속 대학생 여러분! 광주에서만 데모하지 말고 각자 자기 학교, 자기 지역에서도 데모 좀 열심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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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밤 금남로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신문과 유인물을 줍고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왜 줍느냐고 물었더니 "폐지로 팔려고 그런다"고 대답하더군요. 저는 한총련이 반미와 통일도 좋지만, 이런 분들의 고단한 삶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김주완(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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