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신성한(?) 편집국에서 막걸리 파티를 벌이다

기록하는 사람 2010. 12. 1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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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사내 기자 교육 프로그램 중 강수걸 산지니출판사 대표의 강의가 막 끝나고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 문자가 한통 날아들었다.

"선배님 추운데 고생하시는 동료분들과 한 잔 하시라고 막걸리 좀 보냈습니다. 조금 후에 도착할 거예요.~^^_○○○"

실명은 굳이 밝히지 않는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알만한 언론계 후배의 문자였다.

순간 좀 난감했다. 우리의 취재권역 밖에 사는 사람이 보낸 거라 이른바 뇌물성 선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관례대로라면 이 또한 아름다운가게나 사회복지시설에 기탁할 대상이 된다. 통상 일반적인 식품류가 아닌 양주나 와인 등 술 종류는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해왔다.

그러나 이건 양주도 아니고 와인도 아닌 것이, 유통기한이 짧은 막걸리다. 잠시 빠르게 머리를 굴린 결과, 그냥 보낸 취지대로 우리 사원들과 나눠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잘 마시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막걸리가 많았다. 두 박스, 총 40병이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회사 인근 식당에서 양해를 구하고, 안주만 거기서 시켜먹는 걸로 하고 깜짝 송년회를 할까? 아니면 원하는 기자들에게 한 병씩 나눠줘버릴까?

아, 편집국에서 송년 번개 막걸리 파티를 벌이는 것도 괜찮겠다. 그런데, 신성한(?) 편집국에서 술판을 벌인다는 게 무슨 문제는 없을까? 이게 한 번 선례가 되어 기자들이 제멋대로 편집국에서 술판을 벌이게 되면 어쩌나.

별의별 소심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에잇! 모르겠다. 오후 데스크회의에서 막걸리가 배송되어 온 경위를 설명하고, 일과를 마친 후 저녁 7시 30분부터 막걸리 파티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내 인트라넷에 같은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국장석 기자에게 막걸리 안주가 될만한 것들을 좀 사오라고 시켰다.


오후 7시 40분쯤, 판이 벌어졌다. 국장석 옆 테이블이다. 튀김과 순대, 김치, 탕수육 비슷한 것...


이쪽은 시민사회부 책상이다. 여기도 한 판 벌어졌다. 김훤주 시민사회부장이 입맛을 다지고 있다.


이쪽은 데스크회의실이다. 이날 만큼은 이곳을 '룸'으로 칭했다. 안주가 모자라 나중에 탕수육과 만두를 더 시켰다.


룸에서 술판이 벌어지는 사이, 뒤쪽 문밖에서도 스탠딩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이곳이 '룸'이라면 저 바깥쪽은 '홀'이 되었다.


한 박스가 금방 동났다. 새로 한 박스를 더 뜯었다.


여기서 얼마나 더 마셨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새벽 1시 30분 정도 되어 집으로 도망쳤으니까....

아, 그건 기억난다. 한 기자가 "남은 건 집에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었던 것을...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내일 와서 훔쳐가는 것은 어떠냐"고.... 그건 괜찮다고 했다. "훔치러 오는 그 노력과 성의가 가상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서 어제(토) 오후 잠시 사무실에 들어 남은 막걸리를 확인해보니, 딱 4병이 남아 있었다.


모처럼 즐거운 편집국 막걸리 파티였다. 이거, 편집국에서 술 마시는 거 버릇되면 안 되는데....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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