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모래톱은 사라져도 발바닥은 기억한다

김훤주 2010. 11. 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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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클레인 삽질이 시작된 경천대

10월 22일 경북 상주 경천대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낙동강 살리기 사업 공사가 여기도 시작됐는데,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는 데 함께해 달라는 지율 스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스님의 집은 경천대와 아주 가까웠습니다. 경천대는, 저도 잘 몰랐지만, 상주에서 낙동강 제1 비경으로 꼽는 경승지입니다. 상주에 있는 공중 화장실 가운데 경천대 사진이 걸려 있지 않은 데를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우리가 경천대 일대에 갔을 때는 막 진출·입로 닦는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경천대는, 안동 하회 마을 굽이치는 데처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자리였습니다.

경천대에서 바라보이는 낙동강 굽이. 지율 스님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진출입로 닦는 공사 현장. 붉은 깃발이 한 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천대 일대 공사는 아름답게 휘어지는 자리에서 반달처럼 봉긋 솟아오른 둔치를 잘라내어 6m 깊이로 파내는 작업이랍니다. 그러면서 지금 강물 위로 올라와 있는 모래톱도 가뭇없이 사라지게 하고 말겠지요.

2. 낙동강 상류에서 살고 있는재첩

아직 망가지지 않은 경천대 일대 모래톱을 사진찍기에 앞서 지율 스님과 어울려 야트막하게 흐르는 강물에 들어갔습니다.

강물에 들어가 놀고 있는 지율 스님과 달그리메님.


스님은 "여기가 낙동강 상류인데도 재첩이 살아요" 그랬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처음 듣는 말이었고, 재첩은 낙동강 하구 부산 하단이나 섬진강 어귀 하동 같이 민물과 짠물이 몸을 섞는 데서나 난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첩을 찾는 지율 스님의 손길. 조그만 구멍들마다 제첩이 있다고 했습니다.

손바닥 위에 재첩을 올려봤습니다.


지율 스님도 낙동강 상류인 상주에서 재첩이 난다는 얘기는 여태 들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무심합니다. 자기랑 관련이 없을 때는 무엇이든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재첩에 대한 진실은 이럴 것 같았습니다. '재첩은 보통 강물에서도 자라기는 하지만 민물과 짠물이 뒤섞이는 기수역에서는 더욱 잘 자란다.'

왜냐 하면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데서 자란다는 기존 얘기를 그대로 인정할 경우, 여기 상주까지 바닷물 짠 기운이 올라온다고 봐야 하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모래밭에는 재첩이 사는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습니다. 구멍 언저리를 손으로 통째로 파내니까 손톱만한 재첩들이 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모래톱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재첩을 찾아내면서, 우리 손은 까칠까칠함을 모래로부터 즐거운 감촉으로 받았습니다.

3. 굵은 모래알에서 받은 박하처럼 강렬한 느낌

우리는 즐겁게 놀았습니다. 얕게 흐르는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굵은 모래알이 시나브로 쓸려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모래가 이렇게 쓸려오고 쓸려갔기에 이토록 커다란 모래톱이 생겼나 싶었습니다.

경천대 강물에 들어가 놀고 있는 지율스님.

그러나 정부는 이것을 바로 포클레인 기계삽으로 단박에 파내 버리겠다고 합니다. 아래 6m까지 긁어내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것은 모래만이 아닙니다. 모래톱에 목숨을 기대고 있는 갖은 생물과 미생물이 함께 사라집니다.

맑은 강물 속으로 조그만 물고기들이 비늘을 반짝이며 왔다갔다 하는 것도 보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이 여기서 이렇게 알을 낳고 돌아다니고 했는지도 짐작이 안 됐습니다. 4대강 사업은 여기 물고기들의 삶터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사진 한가운데 볼록한 둔치와 그 왼쪽 튤립 봉오리처럼 생긴 모래톱이 낙동강 사업으로 사라집니다.

모래톱 부분만 따로 찍어봤습니다.


강물은 모래와 더불어 흘러가는 과정에 이리저리 만나고 흩어지면서 여울도 만들고 강가에 모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흐름이 느린 강물 아래 모래는 다져져 있는 편이었지만, 흐름이 빠른 강물 아래 모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흐름이 빠른 모래를 밟았을 때에는 발이 아래까지 쑥 내려가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한 적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모래알이 굵어서인지 발바닥으로 해서 들어오는 느낌이 강렬했습니다. 여기보다 하류인 창녕 남지나 부곡의 모래밭과 비교가 됐습니다.

남지 모래는 알이 잘아서 밟으면 발바닥은 혀로 핥아지는 것 같은 섬세함이 있습니다. 반면 여기 상주 모래는 알이 굵고 많이 닳지가 않은 상태여서 까칠까칠한 느낌이 아주 세었습니다.

발로 밟을 때마다 짜릿짜릿했습니다. 마치 박하 사탕을 먹을 때처럼 시원한 기운이 발을 통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그런 기분이 들면서 아주 뚜렷한 기억으로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준설을 표시하느라 이렇게 깃발을 꽂아놓았는데, 강물은 그야말로 무심하게 걸림도 없이 그냥 흐릅니다.

4. 사라지는 모래톱을 발바닥은 기억하리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경천대 앞 모래톱이 사라져도 우리 발과 발바닥은 이 촉감을 기억하리라. 이런 기억이 아무런 힘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그리워한다면 언젠가는 이 모래톱을 되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자연의 힘은 대단합니다. 낙동강 사업이 모래를 다 퍼낸다 해도 위에서 모래가 계속 쓸려내려오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6m 깊이로 파낸다 해도 그 이상 쌓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이 손을 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실제 보기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강 밤섬이 그것입니다. 밤섬은 1968년 2월부터 석 달 동안 사람 손에 완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여의도 제방 쌓는 공사에 쓸 흙과 돌을 장만하기 위해 통째 폭파해 버린 것입니다.

밤섬은 부활했습니다. 흐르는 강물이 모래를 쓸어내려왔습니다. 1999년에는 철새 도래지로 값어치를 인정받아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경천대 일대를 아무리 파낸다 해도 이어지는 정권들이 계속해서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경천대 앞 둔치와 모래톱도 언젠가는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 발바닥의 기억이 지금 당장 이명박 선수의 이같은 망가뜨림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라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삽질을 멈추게 하는 데에는 우리 발바닥의 기억이 작으나마 이바지를 할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발바닥이 경천대 앞 모래톱을 기억할 것입니다.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실비단안개님, 달그리메님, 그리고 저, 지율 스님.


머리로 하는 기억보다는 눈으로 하는 기억이 훨씬 뚜렷합니다. 나아가 눈으로 하는 기억보다는 손이나 발로 하는 기억이 훨씬 뚜렷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머리로 하는 사랑보다 눈으로 하는 사랑이 많이 셉니다. 그리고 눈으로 하는 사랑보다 몸으로 하는 사랑이 엄청나게 셉니다.

지율 스님 덕분에 저는 이번에 벌건 대낮에 몸으로 경천대를 실컷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경천대와 일대 모래톱을 손과 발로 쓰다듬으면서 저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허물어지지만 얼마 안 가 당당하게 부활할 연인입니다. 사랑하는 상대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이 날 끌어안고 쓰다듬었던 우리 손과 발의 기억은 끊기지 않고 이어질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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