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전국 최초 '민주도정협의회', 성공하려면?

기록하는 사람 2010. 10. 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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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남도와 경남발전연구원 주최로 '민주도정협의회 구성과 운영을 위한 도민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민주도정협의회'란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선거 당시 야 3당(민주, 민노, 참여)-시민단체와 후보단일화에 합의하면서 '당선되면 정책연합을 통한 공동지방정부를 위해 '민주도정협의회'를 구성한다'는 약속에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참여대상은 야 3당과 희망자치연대라는 시민연대기구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당이나 자유선진당 같은 보수정당은 원천적으로 배제를 전제로 한 정책협의기구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민주도정협의회'는 어떤 모양과 방식으로 구성된다 하더라도 '도민 대표성'이라는 것은 확보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생각을 굴린다 해도 예산으로 운영되는 '경남도의 공식 기구' 속에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한나라당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야당을 배제한 한나라당 사람들만으로 청와대나 정부 부처의 공식기구를 만들어 국가예산을 쓸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저도 이 공청회의 패널 중 한 명으로 섭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10일)까지 발표문을 보내야 한다는 걸 잊고 있다가 월요일 오전 재촉 전화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급히 원고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후 다시 살펴보니 이미 보낸 원고에 미비한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미 인쇄된 원고를 고칠 수는 없었고, 다만 발표할 때 보완된 내용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발표의 핵심은 '어차피 조례나 규칙으로 공식적인 경남도의 행정기구는 될 수 없으니, 깨끗이 순수 외부 민간단체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단 한 푼도 경남도의 예산을 지원받아선 안 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아래는 그 발표문.


경남에 민주도정협의회 왜 필요한가


법적·행정적 문제는 발제문에서도 잘 검토해놓았고, 앞으로 경남도에서도 알아서 잘 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저는 지역언론인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특정정당이 독점해온 도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민주도정협의회가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좋을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현 이명박 정부 이전에 김대중 정부도 있었고, 노무현 정부도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에도 경남에서는 줄곧 한나라당이 집권여당이었다. 그러다 보니 야당이나 시민단체와 경남도의 관계는 항상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경남도와 관계가 좋은 민간단체는 오직 바르게살기와 새마을, 자유총연맹과 같은 직접 돈을 지원받는 관변단체들뿐이었다. 따라서 지방권력과 가까워질 수 있는 토호들에게는 그런 관변단체장 자리가 아주 매력적이었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관변단체는 행정기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기업인들이 대표자를 맡고 있다.

(여기 도정조정위원회 부분은 수정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도정조정위원회는 도청의 실국장으로 구성된 일종의 국무회의 성격이더군요. 물론 여기서도 민간 자문단을 둘 수 있지만, 민주도정협의회와는 성격이 다르고, 거기에 참여할 여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도정의견 수렴기구로 도정조정위원회라는 게 있다고는 하지만, 위원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경남발전협의회라는 민간단체도 있었지만 이 또한 상공인들 중심이었다.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각각 제2건국위원회와 지역혁신협의회가 정부 주도로 경남도와 각 시·군에 구성되었지만, 기존의 관변단체장들과 기득권 인사들 속에 시민단체 인사들이 양념처럼 섞여있는 형국이었다.

경남 출신 국회의원들도 두 세 명을 빼고는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보니 과거 경남도정의 의견수렴은 아예 한나라당과 토호-기득권-관변단체를 통해서만 이뤄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토호민주주의'라 이름붙일만 하다.

막혀있던 한 쪽 귀를 뚫어야 한다

따라서 거기에서 소외된 비한나라당-시민단체-소외계층이 자신의 목소리를 도정에 반영하기 위해선 집회와 시위, 기자회견 등 실력행사 외에는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물론 그런 실력행사가 우리 같은 지역언론엔 심심찮은 기삿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니 언론사 입장에선 좋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히 경남도민이고 도정의 한 축일진대, 그 한 축이 도정에서 배제 또는 소외됨으로써 생기는 행정력 낭비와 혼란은 고스란히 도민의 부담이 된다.

패널 석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의외로 많은 사람이 왔다. 관심이 높아서일까?


이런 상황에서 민선 지자체가 생긴 후 처음으로 비한나라당 무소속 야권단일후보가 경남도지사로 당선되었고, 이제 그동안 배제되어 있던 한 축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한 기구로 민주도정협의회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혹자는 민주도정협의회를 도정의 자문기구 또는 파트너로 삼게 되면,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한나라당-토호-기득권-관변단체가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아직도 그쪽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는 차고도 넘쳐 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의 간담회도 있고, 여전히 한나라당이 다수인 도의회도 있다. 또한 수많은 관변단체나 관변학자들도 수십 개의 각종 위원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한쪽으로만 열려있던 귀를 두 쪽 모두 열기 위해서라도 민주도정협의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주도정협의회가 정말 제대로 취지에 맞도록 운영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어떻게 구성, 운영해야 할까

첫째
, 어차피 조례에 의한 기구로 구성하지 못할 바엔 철저히 순수한 정책협의기구로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몇 푼 안되는 예산을 변칙적으로 지원하려다간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도정협의회에 참여할 정당이나 단체는 제각각 사무국과 상근인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 정당·단체와의 협의기구에 별도 사무국과 상근인력을 확보해야 할 당위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따라서 협의회 사무국을 도청 안은 물론이고 도 외부기관에도 두어선 안 되며, 다만 도지사와 연락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정무라인에서 맡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회의에 김두관 도지사가 참석할 순 없겠지만, 중요한 제안이나 정책건의가 이뤄지는 회의에는 김 지사가 직접 참여하여 설명을 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 민주도정협의회의 모든 회의와 제안 및 보고서는 100%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 통합 창원시의 민관협력기구인 '화합·균형발전시민협의회'와 3개 지역 발전추진위원회, 그리고 마산 해양신도시 사업 재검토를 위한 조정위원회 등의 모든 회의를 취재기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듯이 민주도정협의회는 그보다 더 민주적이며 유리알처럼 투명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단지 투명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걸 그렇게 공개함으로써 실제로 이 기구가 왜 필요하며 여기에서 나오는 제안이나 정책이 얼마나 경남도민에게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것들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상대편에 있는 다른 기구들과 정책경쟁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민주도정협의회에 참여하는 각 정당과 단체, 그리고 개인들이 더 큰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고 임하도록 하는 효과도 노려야 한다.

그리고 자문기구기인 만큼 민주도정협의회는 정책을 제안하고 건의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그 정책을 채택하고 실행하는 여부는 전적으로 경남도의 공식 라인에 맡기는 게 옳다고 본다. 또한 이미 입안해 시행 중인 시책이나 예산 등에 대한 심의나 의결, 감시 비판 기능은 도의회가 하고 있으므로, 민주도정협의회는 가급적 새로운 정책을 발굴, 개발하여 제안하는 데 집중하는 게 맞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건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동안의 한나라당 도지사들의 도정은 '콘크리트 행정'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주로 개발과 토목건설 위주의 하드웨어 행정에 집중되어 왔다.

민주도정협의회에 인문학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철학과 콘텐츠 능력을 갖춘 분들이 많이 참여하여 큰 실적으로 포장되는 정책은 아닐지라도 도민의 정신과 문화가 살찌고 삶의 질이 윤택해질 수 있는 그런 소소하지만 알맹이있는 정책들을 많이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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