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남매 중 다섯째다. 위로 누나가 넷 있고, 아래로 여동생 둘, 막내로 남동생 하나가 있다.
나는 장남이다. 손위 매형 네 분과 손아래 매제 둘도 모두 장남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큰 매형은 장남인 내가 어렸던 탓에 맏사위의 역할을 넘어 내가 결혼할 때까지 우리집에서도 큰아들 역할을 해왔다. 심지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닐 때도 만나면 나에게 용돈을 줬다.
이제 내 나이도 마흔 여덟. 늘 큰 매형이나 누나들게게 뭔가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하는 건 없다. 동생들한테도 마찬가지다. 형으로서, 오빠로서 뭔가 해준 게 없다는 애잔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막내인 남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형님의 편집국장 취임 기념으로 만년필을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겠냐는 거였다. 기분이 묘했다. 동생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니…. 아직은 내가 뭔가를 줘야 할 나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동안 해준 것도 없는데, 벌써 손아래로부터 뭔가를 받는 입장이 되다니….
사실 몇 년 전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있는동안, 여동생이 오빠에게 전해 달라며 수십 만 원의 돈을 어머니에게 맡겨두고 간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자존심까지 상했다. 아무리 오빠가 없이 산다고 동생에게까지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이제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책임져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그런 상황 변화 때문일까? 막내 동생의 집요한 문자질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파버 카스텔 엠비션 코코넛 만년필
그래서 받은 게 바로 이 만년필이다. 파버카스텔 엠비션 시리즈 중 하나인데, 몸통이 코코넛 나무 재질이다.
나는 일본에서 사온 오크 나무 재질의 볼펜도 하나 갖고 있는데, 이게 참 감촉이 좋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걸 택했다. 촉은 F촉인데, 너무 가늘지도 않고 지나치게 굵지도 않아 메모하는데 딱 적당했다. 또 보통 F촉에 비해 필기감이 굉장히 부드럽다. 독일제라서 그런지 펜촉 만큼은 최상이다.
컨버터도 달려 있지만, 웬만한 잉크 카트리지로 규격에 맞는다. 그래서 나는 카트리지만 쓰고 있다.
뚜껑의 착탈도 아주 안정적이다. 다만 펜촉과 몸통의 연결 나사 부분이 쉽게 풀려 헐거워지는 단점이 있다.
무게는 제법 묵직한 편이고, 길이가 좀 길어 와이셔츠 왼쪽 호주머니에 꽂기엔 적당하지 않다.
글을 쓰다보니 파버카스텔 만년필 리뷰처럼 흘러버렸다. 어쨌든 결론은 동생이 준 선물 자랑이다.
동생은 이 만년필을 보낸 지 몇일 지나지 않아 여름 휴가차 제수씨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다녀갔다. 우리가 출근하는 날이라 함께 지낸 시간은 짧았다. 그 사이 어쩌다 보니 받은 만년필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잘 쓰고 있다는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은 동생에게 쓰는 만년필 사용 보고서이기도 하다.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잔 동생은 내가 출근한 사이 3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내 책상 위에 두고 갔다. 우리가 최근 이사를 했다는 이유였다. 끝까지 날 난감하게 한다. 낼 모레 마산에서 처음 지내는 어머니 기일인데, 제사상과 병풍을 사는 데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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