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자연에 대한 삽질과 아이에 대한 매질

김훤주 2010. 11. 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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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터가 망가져도 떠나지 못하는 동물들

사람들이 종종 착각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연 생태가 망가지면 거기에는 동물이 얼씬도 하지 않는 줄 아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굴착기가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삽질을 해대면 노루나 고라니 멧돼지 같이 거기서 살고 있던 동물들이 그냥 자리를 뜨고는 돌아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셈입니다.

그런데 낙동강 강변으로 걸어들어가 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망가진 자연 생태에서도  동물은 살고 있었습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망가진 땅으로 들어와 돌아다닌 자취가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자취를 물끄러미 내려보면서, 자연 생태가 망가졌어도, 자기네 삶의 사이클에서 망가진 그 땅이 바로 필요가 없어져 떼어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굴착기 삽질로 망가지고 파헤쳐졌어도 그 너머에 있는 물을 마시려면 지나야 한다든지, 아니면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살면서 이미 익숙해진 발길이라 다시 오는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동물들의 이런 자취를 보니까, 저는 어쩐지 가슴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삶터가 망가지면 아무 미련 없이 그냥 버리고 다른 데로 떠나면 좋으련만, 그렇게 못하도록 하는 무엇이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창녕 부곡 임해진 둘레 청암지구 농지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 찍힌 짐승 발자국과 그 위쪽 덤프차 자취.


2. 매질의 공포와 아픔을 털어내지 못하는 아이들

그러면서 문득 굴착기의 자연에 대한 삽질을 어른들의 아이들에 대한 매질과 견줘보게 됐습니다. 아이들 살갗에 떨어지는 매가, 자연에 떨어지는 삽과 비슷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굴착기에 삽질당해 삶터가 망가져도 쉽게 툴툴 털고 떠나지 못하고 둘레를 서성이는 동물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매질도 저것처럼 아이들이 손쉽게 털어 버리지 못하는 그 무엇을 망가뜨리는 것이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또 자주는 아니었지만, 저도 1999년 봄까지는 제 아이들을 한 번씩 때리곤 했습니다. 명백하게 잘못했을 때만, 본인의 동의를 얻어 그리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이또한 기가 막히도록 기만적인 노릇입니다만)

1999년 봄에는 지금 스물한 살 청년이 된 제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앞에서 말씀한 대로 본인의 동의를 받아 엉덩이를 내리고 회초리로 때리게 됐습니다.

이제 막 때리려고 회초리로 아들 엉덩이를 겨누고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아들 엉덩이 살갗의 바르르한 떨림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매가 엉덩이를 스치지도 않았는데, 엉덩이가 무슨 연못이나 되는 듯이 살갗이 잔물결처럼 일렁였습니다. 아주 조그맣지만 그래도 선명하게 아래위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제가 때리기도 전에 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아들에게 "너는 이런저런 잘못을 했으니 몇 대는 맞아야 되겠다, 너도 동의하지?" 이렇게 묻는 순간부터 공포에 빠져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매질을 해댄다면 그리고 여태 매질을 해댔으니 그 상처에서 비롯된 아픔과 공포와 고통이 아이 골수에까지 사무치게 하거나 이미 해 왔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회초리를 버렸습니다.

3. 삽질도 매질도 명분과 목적만 그럴 듯할 뿐

사실 이명박 선수의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명분이나 목적은 얼마나 그럴 듯합니까? 수질 개선과 홍수 예방에다 일자리 창출까지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결과는 토목족 배불리기요 자연에 대한 망가뜨림일 따름일 것입니다. 몇몇 군데 되살아나는 데 또는 살아남는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전체로 보면 그러합니다. 

마찬가지 아이들에 대한 매질의 명분이나 목적도 그 못지 않게 그럴 듯합니다. 제대로 키우는 교육이 목적이고 다 너희 잘 되게 하려는 것이고 다 공부 잘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해서 아이들이 다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존 가치관 기준으로 보더라도 다 서울대학교 가는 것도 아니고 모두 명문대 합격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 돈 잘 벌지도 못하고 모두 출세하지도 못합니다.

다만 아이들을 통째로 남김없이 자본주의 경쟁 사회를 위해 폭력적으로 길들이는 것일 따름입니다.

밀양 하남 수산 낙동강 둔지 벼논을 망가뜨린 기계장비 발통 자국 위에 찍혀 있는 짐승 발자국.


굴착기에 파헤쳐진 낙동강 둔치에 가서 이렇게 노루나 고라니 발자국을 보고 있으려니까, 문득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매질이 생각났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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