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한 대씩은 꼭 있는 가정용 세탁기가 어느 날 갑자기 불에 타버린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과 같은 꼴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한 가전 업체에서 만든 세탁기가, 작동도 시키지 않은 상태인데도 저절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불이 나는 믿기 어려운 사고가 터졌습니다.

7월 14일 오후 3시 30분께 창원시 성산구 한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집 주인의 따님이 거실에 누워 있다가 어디선가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매캐한 연기까지 스며드는 바람에 놀라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딸이 20대였는데, 놀라 살펴보니 발코니 쪽에서 안방 열린 문틈을 통해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유리통문을 열고 나가보니 세탁기가 연기를 내뿜으며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딸이 불을 끄려고 애써 봤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와 들고 있던 집 전화로 119 신고를 했습니다. 얼마 안 가 출동한 소방 당국은 바깥에서 유리창을 깨고 물을 내뿜어 타오르던 불길을 잠재웠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이튿날인 15일 오전 세탁기를 만든 업체 직원과 피해 가족이 입회한 가운데 소방 당국과 더불어 현장 감식을 벌였습니다.

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불이 난 세탁기는 채 1년도 되지 않은 것으로, 지난해 11월 전후해 정가가 120만 원대인 것을 90만 원대로 할인해 샀답니다.

15일 오전 세탁기에서 불이 난 집을 찾아가 봤습니다. 집안은 이미 엉망이 돼 있었습니다.

불이 날 때 집에 있었던 딸은 14일 밤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어 어머니와 함께 친지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했습니다. 저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탁기 몸통은 원래 색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그을렸고 매끈했던 표면은 흉물스럽게 울퉁불통해져 있었습니다.

또 세탁기 위·아래와 한가운데는 내부 쇠구조물이 겉으로 드러나 있어 화재 당시 열이 아주 뜨거웠음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발코니에는 군데군데 검댕이 떨어져 있었고요, 세탁기 위에는 나무로 만든 빨래판이 타다 말고 남아 있었다. 위쪽 벽에 달린 찬장도 검게 타 있었습니다.

고무장갑과 수건·옷걸이·빨래 건조대 등은 살짝 불타거나 연기에 그을린 채 여기저기 널려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방 모습이었습니다. 안방은 커튼이 불에 타다 만 채로 있어 조금만 늦었다면 불길이 전체로 번질 뻔했음을 바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세탁기 안에는 옷가지와 수건이 서로 엉기지 않은 채 들어 있어서 불이 나던 당시 세탁기가 가동 중이지 않았음을 짐작게 했습니다.

바깥쪽과 안방 쪽 유리창은 화재 진압 당시 소방 당국이 깨뜨린 그대로 있었고 햇볕을 가리는 창문쪽 버티컬도 군데군데 녹아붙어 있었습니다.

현관 가까이 배전반에서는 다른 스위치는 원래 자리 그대로 있었지만 세탁기가 있는 발코니로 이어지는 스위치만큼은 아래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배전반 한가운데가 떨어져 있는 스위치.


아파트 바깥쪽 벽면도 검게 연기가 훑고 지나간 자국이 있었지만, 장소가 구체적으로 나타날까봐 여기에는 찍은 사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집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드도 멀쩡하고 배선 상태도 멀쩡했으며 세탁기에서만 불이 났다." 그리고 "세상에서 알아주는 이름난 업체에서 만든 세탁기가 어떻게 작동도 않는 상태에서 그냥 불이 날 수 있느냐."

집 주인은 또 단순한 재산 손실 문제가 아니라 사람 목숨과 관계되는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안방 문이 열려 있었고 딸이 채 잠들지 않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사람이 죽거나 다칠 뻔했다."

"단순한 제품 하자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듣고 보니 그랬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이 나던 당시 오히려 집에 사람이 없었다면 불길이 한 집에 그치지 않고 아파트 전체로 번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집 주인의 부인은 이랬습니다. "가만 있던 세탁기가 갑자기 불타고 하는데 불안해 살 수 있겠느냐." "상황이 이러니 이제 집에 있는 것도 어쩌면 공포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에서 만든 이름난 세탁기가, 작동도 안 하는 상태에서 가만 있다 불이 난 현장에서 듣고 본 것들이었습니다.

읽으시는 여러 분들께서는 어떤 생각에는 드시는지요? 여러 분들의 집에 있는 세탁기는 다들 안녕하신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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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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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kbmana 경빈마마 2010.07.21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이런일도 있을 수 있나요?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실비단안개 2010.07.21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군요.
    세상의 모든 게 흉기라니 -
    세탁기 한 번 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연지공원 잘 다녀왔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후기는 카페에 올리지요.

  3. Favicon of http://www.ymca.pe.kr 이윤기 2010.07.21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황당한 일이겠지만 소비자상담을 하다보면 가끔 경험하는 일입니다.

    저는 소비자상담 할 때 TV가 불에탄 것을 2~3번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제조물책임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손해배상은 받을 수 있을겁니다.

  4. Favicon of http://blog.daum.net/design11111 Yujin 2010.07.21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탁기가 집안의 거대한 흉기로 변하다니...세상에 어찌이런일이..해외토픽감아니가요?

  5. Favicon of http://ggholic.tistory.com 달콤시민 2010.07.2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헛.. 귀신보다 무섭기까지 하네요!
    저희집 세탁기님도 안녕히 계신가 얼른 퇴근해서 살펴봐야 겠어요~ ㅠㅠ

  6. 등골오싹 2010.07.21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21999
    SS꺼라고 하는데..저희집도 그 세탁기.. 올 여름 등골이 오싹하게 하는 생활 공포물이네요

  7. Favicon of http://heinrich0306.tistory.com/ Heinrich 2010.07.22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탁기에서 불이난다라.. 오싹하군요.. 특히 아파트같은 다세대 주택에서 거주하는 분들이 많은 나라에다가, 세탁기를 돌릴시간엔 주로 여자분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있을 시간대란걸 생각하면 끔찍하군요...

  8. 보라매 2010.07.30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이 '소송' 이라는 것 때문에 망조가 들긴했지만 이런 건 소송을 걸어야 합니다. 배상금도 엄청나게...
    사람 목숨이 달려있는건데...
    한가지 껄끄러운건 한국에선 소송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겁니다만.
    좀 흥분했나요?

    암튼 인명피해가 없다니 다행입니다.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