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부실공사뿐 아니라 '부실행사'도 문제다

기록하는 사람 2010. 7. 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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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단체로부터 주말에 강의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날짜가 임박한 사흘 전에야 강사 섭외를 한다는 것도 그랬고, 전화를 걸어온 이도 그 단체의 실무자가 아닌 우리회사 후배였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수락했다. 마침 휴일인데다 가까운 거리여서 부담이 없다 싶었다. 전해들은 강의 주제는 '인터넷 미디어 활용법'이라는 게 전부였다.

종종 강의를 다니지만 대개 강사 섭외는 한 달이나 두 달 전, 짧아도 보름 전쯤 이뤄진다. 사흘 전 요청이 왔다면 십중팔구 펑크 난 강의를 때우기 위함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의미있는 일을 하는 단체에 땜질용이라도 쓸모가 있다면….

주최측의 이해할 수 없는 행사 진행

하지만 적어도 해당 단체 실무자로부터 전화 한 통 정도는 올 줄 알았다. 수강 대상은 누구인지, 행사 취지나 목적은 뭔지, 수준은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주제와 아울러 듣고 싶은 내용이나 교재 제작을 위한 강의 자료 등에 대한 사전 협의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강의요청서에 이런 상세한 내용을 담아 보내주지만, 그런 것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전화를 기다렸다. 강의실에 빔프로젝트가 있는지, 무선인터넷이 되는지도 궁금했다. 또 사전에 강사료가 얼마인지 알려주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기본이다.

자료사진 : 이 글의 특정한 내용과 무관합니다.


치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강사료 이야기를 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몇 년 전이었다. 한 시민단체의 강의 요청을 받았는데, 그 때도 미리 강사료에 대한 말이 없었다. 그래도 잘 아는 사람의 요청이라 흔쾌히 응했다. 돌아오는 길에 봉투를 하나 받았다. 뜯어보니 5000원 권 도서상품권 두 장이 들어있었다. 그 날 강의는 내가 알기로 행정기관의 예산을 지원받은 프로젝트 사업이었다. 그 때 받은 심한 모욕감과 불쾌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우리의 세금으로 지원된 돈을 떼먹거나 전용하는 일에 내가 공범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행정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십시일반 회원의 회비로만 어렵게 운영하는 단체에서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 단체는 당연히 미리 강사료를 알려주고 양해를 구했다. 받은 5만 원을 모두 뒤풀이 비용으로 냈다. 그리고 즉석에서 회원으로 가입해 지금도 꼬박꼬박 월 회비를 내고 있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후배 기자를 통해 강사 섭외를 마친 이 단체의 실무자는 당일까지 끝내 전화 한 통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내가 후배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 전화를 걸었다. 내 순서 앞 강의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강의실 사정부터 물어봤다. 빔프로젝트는 있는데, 인터넷은 안 된다고 했다. 난감했다. '인터넷 미디어 활용법'을 강의해달라면서 인터넷이 안 되는 환경이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휴일이라 시설관리자가 없단다. 대략 수강자에 대한 정보와 원하는 강의 내용 등을 물어본 뒤 전화를 끊었다.

금액없는 강사료 영수증 불쾌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내가 강의하는 행사와 다른 행사가 겹쳐서 진행되고 있었다. 두 행사장을 오가며 겹치기 출연을 하는 강사들도 있었다. 내게 할당된 시간은 한 시간. 강의실에 들어가보니 그제서야 인터넷을 연결하느라 분주했다. 한 시간 중 그렇게 15분이 지나갔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강의를 마쳤다.

더 황당한 건 강의 직후 내민 강사료 영수증이었다. 거기에도 금액은 공란으로 비어 있었다. 백지수표에 서명을 하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유를 물었다. 그게 내부 규정이란다. '세상에 그런 규정이 있다니'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규정은 아니고 자기 단체의 관례라고 말을 바꿨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를 연결시켜준 후배 기자도 거의 똑같은 황당한 일들을 겪었다고 한다.

빌딩 신축이나 도로 건설에만 '부실공사'가 있는 건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런 단체의 행사에도 똑같은 '부실행사'가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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