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낙동강이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일까

김훤주 2010. 7. 1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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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안보는 과연 댐이 아닐까

정부가 이른바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는 경남 창녕군 길곡면 함안보(낙동강 살리기 18공구) 공사 현장을 2월 1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임시 물막이를 설치하는 거대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둘레에도 술착기로 파헤친 자취가 크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더욱 많이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사정은 갈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골재를 가득 실었거나 아니면 어디엔가 짐을 부려 무게를 줄인 짐차들이 제방 위 도로를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으며 현장 공사를 지원하는 경남1지구건설단 사무실 들도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대신 원래 거기에 뿌리내리고 살던 식물은 쓰러지고 꺾여 있었습니다. 그런 풀과 나무에 보금자리를 틀었던 짐승들은 쫓겨나고 없었습니다. 고라니나 노루 따위 그리고 때로는 멧돼지의 것들로 짐작되는 발자국들은 아무래도 얼마 안 가 사라지고 말 것 같았습니다.

함안보 공사 현장 모습.


함안보가 들어섬에 따라 생기게 되는 환경·생태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1월 22일 현장에서 발견된 오염 퇴적층은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지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던 옛날에 형성된 이런 퇴적층은 낙동강 강바닥 곳곳에 깔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준설을 계속하다 보면 이런 오염 퇴적층이 파뒤집힐 수 있고, 그러면 거기 들어 있는 갖은 유해 물질이 강물을 더럽힐 수밖에 없는데도 말씀입니다.

함안보로 물을 가두면 수위가 올라가게 되고 이 때문에 지하수위까지 덩달아 높아져 일대 농경지·주택지가 물에 빠진다는 지적도 있고 함안보를 비롯한 여덟 개 보 때문에 홍수 피해가 가중되리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밀양 하남읍에서 현안이 된 것처럼 제방 안쪽 농토에서 농사를 짓지 못해 생기는 농민 생계 문제, 생산이 되지 않음에 따른 채소 값 폭등도 예상됐고 이것은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안개가 짙어져 수박 같은 작물 재배에 끼칠 악영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피해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그런 매력이 여기 함안보에 있을까요.

함안보 공사 현장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홍보용 건물 전망대에는 이 일대를 커다란 공원으로 만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적힌 글자만 주워섬겨도 잘 알 수 있답니다.

건너편 함안 1지구에는 이벤트마당, 수변 무대, 다목적 광장, 피크닉장, 나루터 체험장, 자생초 화원, 농구장, 족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조형 녹지, 갈대원이 있습니다.

같은 함안1지구 생태습지는 수질 정화 습지, 생태 학습장, 습지 관찰 테크, 청류도, 샛강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류도가 뭔 말이지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전망대가 있는 길곡지구는 다목적 광장, 테크 마당, 조형 습지원, 경관 작물원, 조형 마운딩, 수변 산책로, 백사장이 있고, 함안보 자체는 통합관리센터, 다기능보(함안보), 자연형 계단식 어도, 어도 관찰실, 아이스하버식 어도, 소수력 발전소, 공도교로 구성됩니다.

억지로라도 환경·생태랑 관계 있는 것을 꼽아보면 자생초 화원, 조형 녹지, 갈대원, 수질 정화 습지, 샛강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죄다 사람들을 위한 놀이터일 따름이고 그도 모자라 소수력 발전까지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엇인가요? 물을 가둬두는 단순한 보(洑)가 아닌 댐이며, 그것도 이른바 다기능 댐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낙동강 살리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자연 상태 낙동강을 어거지로 뜯어 바꾸려는 것입니다.

사람과 짐승과 식물의 삶터를, 사람만을 위한 놀이터와 자본만을 위한 돈벌이터로 뜯어 바꾸려는 이런 짓을 하면서도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는 이런 토목 사업을 두고 "친환경"이라 부득부득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명박 대통령에게 '녹색'이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5일 어린이날에 아이들을 청와대에 불러 모아놓고 "대통령을 그만두면 환경운동, 특히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모든 것이 나름대로 짐작이 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두고 친환경적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토목족 출신임을 감안하면 이런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라 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은, '낙동강 살리기'라는 '토목 사업'이 '친환경적'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낙동강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는 처음부터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운영하는  '공감코리아'에 들어가면 제목이 '4대강 살리기, 이래도 반대하시겠습니까?'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이 그런 사실을 방증합니다. 띄엄띄엄 필요한 대목을 옮겨오면 이렇습니다.


"4대강 살리기의 기본 취지는 강을 정비하고 댐을 만들어 자연의 거친 도전에 선제적·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일 뿐 어디에도 운하 건설을 위한 사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서 "4대강 살리기는 물 관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중대한 도전이다."고 못박습니다.


눈 밝은 사람들은 여기서 불도저를 볼 수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에 운하 건설을 위한 사업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는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여기에 '강을 정비' '자연의 거친 도전' '선제적·능동적으로 대처' '물 관리 선진국' 따위 표현이 그 증거랍니다.


자연은 '거친 도전'이나 해대는, 그래서 '대처'하고 '정비'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일 따름이지요. 이들이 '녹색'이나 '환경'을 무엇으로 여기는지를 알려주는 뚜렷한 지표가 됩니다. 그러니까 녹색운동은 거친 도전을 하는 자연을 대처·정비·관리하는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뜻이 여기서 제대로 드러납니다. 함안보를 짓는 것처럼 갖가지 토목 건설을 하는 것이지요. 댐도 짓고 보도 쌓고 유스호스텔도 세우고 계단도 도로도 만들고 테마공원도 들이세우는 것입니다.

3. 우리에게 '낙동강 살리기'를 반대할 자격이 있는가

2007년 이명박을 대통령 후보로 만든 것은 한나라당이지만 그 해 12월 선거에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이는 대한민국 유권자입니다. 자기 자신이 이명박 기호 1번을 뽑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객관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남지 맞은편 함안에서 강바닥을 준설하는 장면. 오른쪽 가운데 파이프에서 검은 물이 쏟아지고 있다.

준설토 적치장.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당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찬반 논란이 심했지만 어쨌든 그이는 대운하 건설을 하겠다는 공약을 버리지 않은 채로 당선이 됐습니다.

그러니 그이에게는 대운하를 건설할 까닭이 있는 셈입니다. 물론 대운하 건설은 2008년 촛불 정국에서 형체도 없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와 국민이 찬성하지 않는 이상 대운하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들고 나온 것이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입니다. 물론 논리로 따지면 대운하라든지 4대강 살리기에 누구든 비판하고 비난하고 반대할 자유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논리 이전에 스스로의 안목을 탓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렇게 말해 보는 것입니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우리나라 곳곳이 삽질로 난리법석이 되리라는 것을 몰랐다면 좀 멍청한 사람일 것입니다. 당시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고 또 이명박이 정통 엘리트 토목족 출신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골랐습니다. 대운하든 4대강 살리기든 잘못의 뿌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으면 지금 이런 일은 충분히 겪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비난·반대하려면 먼저 자기자신의 지난 날 선택에 반성부터 해야 맞습니다. 이명박을 찍은 사람은 찍은 스스로를 반성해야 합니다. 이명박을 찍지 않은 사람조차도,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을 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이명박을 찍지 않도록 하지 못한 역부족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 이명박 같은 후보를 찍지 않겠노라 다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만큼이라도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4. '낙동강 살리기' 반대 운동에 힘이 없는 까닭

어쨌거나, 정부가 '낙동강 살리기'를 빙자해 벌이는 낙동강 토목 사업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착공식을 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공사가 진행돼 왔으며 그것은 낙동강 모든 구간에서 거의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준설선.


시민사회는 이 토목공사를 막을 힘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지금 부산지방법원에 걸려 있는 '낙동강 소송'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 힘 관계를 보면 그것은 속도 문제뿐일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낙동강 소송은 4월 2일 부산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문형배 부장판사) 심리로 처음 진행됐습니다. 낙동강 소송이란 '4대강 사업 위헌·위법심판을 위한 국민소송단'(국민소송단)이 국토해양부장관·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을 상대로 낸 '하천공사 시행계획 취소 소송'을 이릅니다.


재판부는 이날 심리에서 원고(국민소송단)와 피고(정부)의 증인심문을 통해 4대강 사업에서 제기된 쟁점과 그 쟁점에 대한 찬반 양론을 다섯 시간 동안 다뤘으며 19일 함안보와 달성보에서 현장 검증을 거친 다음 5월 7일 두 번째 공판을 진행합니다.


국민 여론은 정부의 4대강 살리기에 반대가 많지만 시민사회 진영의 반대운동에 그다지 힘을 많이 실어주는 정도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런 데는, 사람들이 낙동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지 싶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낙동강을 제대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가능하지 않은 꿈 같은 이야기라 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꿈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살리기를 빙자한 엄청난 토목공사를 막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얘기는 간단하답니다. 사람들은 낙동강을 일러 '영남권 1000만 주민의 젖줄'이라 합니다. 낙동강은 단순한 '젖줄' 이상이지만, 젖줄이라는 사실만이라도 우리가 똑바로 새기고 있다면 정부가 저렇게 낙동강을 난도질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말로는 젖줄이니 생명줄이니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고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낙동강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자기네가 낙동강에다 대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무슨 짓을 해 왔는지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부터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둘러보고 있는 지율 스님이 증인입니다.

지율 스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2009년 12월 14일 마산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원을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정부는 낙동강 공사를 2008년 12월부터 멈춘 적이 없습니다. 함안보가 2009년 12월 착공식을 했는데, 사실은 2009년 4월에 이미 다 돼 있었습니다. 철근은 바로 꽂을 수 있도록 규격에 맞게 잘린 채로 와 있었고 축대도 길도 다 만들어져 있었어요. 다만 눈에 보이는 보(洑)만 쌓지 않고 있었을 뿐이지요.


안타까워서 대운하 반대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얘기를 했는데, 대운하 사업을 안 한다는 정부 발표도 있고 해서 그러는지 이 분들조차 믿지를 않는 거예요. 저는 제 발로 걸어들어가 제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고작해야 자동차를 타고 와서 제방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지나가면서 보니까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지요.


사람들이 강으로 오지를 않아요. 오지 않으니까 강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지요. 제가 걸으니까 자동차 타고 돌아보는 것과는 다르지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이런 게 죄다 보이는 거예요."


지역 주민이 대다수가 말로는 낙동강이 젖줄이고 어쩌고 하면서도 실은 낙동강을 제대로 모르고, 앞장서 운동을 하는 이들조차 낙동강에서 정부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몰랐으니까 낙동강 살리기를 빙자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반대하는 운동에 큰 힘이 실릴 수가 없는 것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낙동강이 걱정된다면, 신록이 우거지는 좋은 철을 맞아 놀러 가고 싶은 데도 많겠고 그렇게 해도 나쁘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는 낙동강 현장을 한 번쯤 둘러볼 일이겠습니다. 아니면 낙동강도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경을 품고 있는 터이니 그 절경을 찾아도 좋겠습니다.

5. 낙동강의 발원지는 황지 하나뿐일까?

먼저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낙동강의 발원지는 강원도에 있는 황지 하나뿐이지는 않다는 것이랍니다. 사전에 나와 있는 발원(發源)의 뜻 '흐르는 물줄기가 처음 생김'을 새겨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의 황지는 낙동강의 여러 발원지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고, 다만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멀리 있다는 것만 다른 발원지와 다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남강이 시작하는 데도 낙동강의 발원지고, 밀양강이 시작하는 근원도 낙동강의 발원지입니다.

굳이 이렇게 말해두는 까닭은, 사람들이 보통 낙동강이라 하면 황지에서부터 낙동강 하구언까지 직선으로만 여기는 생각이 굳어져 있고, 이 굳은 생각이 낙동강을 풍성하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황지가 여러 발원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발원지라고 여기고 이로 말미암아 낙동강 본류로 스며드는 숱한 하천과 개울을 낙동강과 동떨어진 무엇으로 여기기까지 한다는 얘기입니다.

황강 상류에 세워진 합천댐이라든지 남강 상류에 들어선 남강댐, 금호강 상류의 영천댐 밀양강의 밀양댐 등등은 낙동강과 무관한 듯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낙동강이 가난해진 것은 낙동강 본류에 들어선 임하댐과 안동댐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울러, 낙동강 강물이 더럽다면 그것은 황지에서 샘솟아 흘러나오면서 거치는 구비에서만이 아니라 낙동강과 합류하는 모든 하천이나 실개천이 들판과 마을과 공장을 흘러나오면서 더러워졌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6. 낙동강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1

이런 낙동강이 달라지면 삶도 덩달아 달라지는 보기를, 우리는 엉뚱하게도 낙동강 물줄기가 조금도 스치지 않는 경남 사천의 남해 바닷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재첩 전쟁'입니다. '재첩 전쟁'의 당사자는 사천시 곤양면 석문 마을과 서포면 조도 마을 주민입니다. 곤양천이 바다와 만나는 아래에 조도 마을이 있고 그 위쪽에 석문 마을이 있는데 재첩잡이 어업권은 처음부터 조도어촌계에 있었습니다.

남해 바다에서 고기잡이가 썩 잘 되던 옛날에는 재첩잡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조도 어촌계는 공짜 또는 공짜에 가까운 한 해 1만~1만5000원 입어료만 받고 석문 마을 사람들에게 재첩을 잡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으니까 문제가 됐습니다. 2001년 봄 조도 어촌계가 석문 마을 부녀회에다 "우리가 재첩을 잡을 테니까 더 이상 재첩을 잡으러 오지 말라"고 통보한 것입니다.

다툼이 격렬해졌습니다. 괭이나 삽을 손에 쥐고 뛰쳐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두 마을 주민들은 서로 행정기관에 항의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아 법원으로 들고 갔습니다.

법원은 어쩔 수 없이 정식 어업권이 있는 조도 마을 주민 손을 들어주면서 어업권이 미치는 범위를 곤양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 아래로 정하고 '분계선'을 쳤습니다. 2004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왼쪽 위 흐릿하게 보이는 말뚝들이 '재첩분계선'이다.

'재첩 분계선'을 당겨서 찍었습니다.


이게 어째서 낙동강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원인이 남강댐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강댐에 남강물을 모아두다 보니 여름철 큰비가 내릴 때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한꺼번에 물을 쏟으면 남강 하류는 물론 낙동강 하류까지 홍수가 지기 때문입니다.

사천은 낙남정맥 남쪽에 있고 남강댐은 낙남정맥 북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낙남정맥을 허물고 남강댐을 가화천과 이어붙였습니다. 가화천은 낙남정맥에서 물줄기가 시작돼 사천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입니다. 이렇게 산을 허물고 이음으로써 남강댐 방수로가 됐습니다.

방수로를 통해 바다로 흘러든 민물은 고기와 재첩 양쪽에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름철이면 한 번씩 신문 방송에 보도가 나오는 것처럼, 남강 방류수가 사천만으로 쏟아지면 바닷물 소금기가 크게 떨어져 바다물고기보다 민물고기가 더 많아지는 이상한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사천만이 바다물고기가 살기에 좋지 않은 환경으로 바뀌었고, 그러니까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조도 마을 주민들의 소득이 줄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재첩은 방류수 덕분에 사는 범위를 넓혀 가면서 더욱 잘 자라게 됐습니다. 재첩은 바닷물과 민물이 뒤섞이는 지역에서 자랍니다. 방수로로 민물이 쏟아지니 재첩이 사는 영역이 늘어나고 재첩이 더욱 잘 자라게 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입니다.

사정이 바뀌니까 곤양천 하류의 재첩잡이가 중요 소득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태 석문 마을 사람들에게 거의 공짜로 재첩을 잡게 해 줬던 조도 마을이 재첩잡이 어업권 '환수'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사이 좋았던 이웃끼리 머리 터지게 싸우는 슬픔과 아픔 또한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성격이 비슷한 보기는 합천에도 있습니다. 합천에는 황강이 있고 합천댐이 있습니다. 황강은 원래 합천읍부터 낙동강과 만나는 청덕면 적포리까지 하류가 강바닥이 주변보다 높은 천정천(天井川)이었습니다. 황강이 이런 천정천이다보니 주변 농지에는 언제나 물이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합천댐이 생기고 나서 상류에서 흙과 모래·자갈들이 내려오지 않는 반면 자연히 쓸려내려가거나 모래 채취를 계속 하는 바람에 바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황강과, 황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따라 이뤄져 있는 습지들도 함께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2006년에는 다릿발(橋脚)이 허공에 뜨는 바람에 남진교라는 멀쩡한 다리 하나를 부수기도 했습니다. 남진교 다릿발을 땅 밑 3.5m 넘게 심었는데 합천댐이 생기고 나서 바닥이 7m가량 낮아져 버리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닥이 낮아짐에 따라 지하수위도 함께 낮아져 주변 토지의 성격이 달라졌고, 그 바람에 일부러 돈 들여 만든 다리가 쓸모가 없게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7. 자연은 파괴조차 자연스레 해야 한다

경남대학교 이상길 역사학 교수와 함께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신석기시대 습지 유적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논들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양·배수장 신축 공사를 하다가 자취가 드러나 2004년 11월부터 국립김해박물관이 발굴을 한 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8000년 전 소나무 쪽배라든지, 사람 것으로 보이는 똥 화석, 망태기, 멧돼지가 그려진 토기, 목탄(木炭)과 나무칼, 돌화살촉, 그물추, 도토리 저장 구덩이 따위가 나와 옛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지표로 인정되는 장소랍니다.

당시 이상길 교수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자연을 얼마나 자연스레 이용했는지를 설명해 주면서 모든 인간의 역사는 바로 자연 파괴의 역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물론 옛날에도 자연 파괴의 주체는 인간이었으므로 옛 모습에 비춰 앞으로 자연과 어떻게 교섭·관계해야 좋은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지금 벌어지고 있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 같은 것들은 자연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람을 위해서도 결코 좋지 않습니다.

낙동강에서는 그것이 바로 댐과 인공제방입니다. 지금 우리는 인공제방으로 물길을 막고 또 댐을 만들어 갖다 붙이고 있습니다.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가 이를 입증합니다. 루사가 김해 한림면 시산들판을 덮친 때는 2002년 8월 10일 아침입니다.

낙동강이 지류인 화포천으로 역류하면서 쌓았던 제방이 터져버린 것입니다. 1959년 '사라' 태풍 이래 43년만에 겪는 최대 규모였는데, 22일까지 13일 동안이나 물이 빠지지 않는 난리를 치렀습니다.


같은 해 함안에서도 둑이 터졌는데 정부는 이렇게 되자 김해와 함안에서 제방을 고치고 높이는 숭상(崇上) 공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듬 해 태풍 매미가 닥쳤을 때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이래 한 번도 터진 적이 없는 창녕 대대제방이 뻥 뚫려 버렸습니다.

얼마나 거세었던지, 당시 대대 마을 사람들은 "한밤중이었는데, 물이 메뚜기가 떼지어 날아드는 소리를 내면서 수직으로 서서 달려들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강물은 흐름입니다. 흐름은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에너지는 어떤 식으로든 발산이 돼야 합니다. 발산은 가장 약한 부분을 틈타고 나옴으로써 이뤄집니다.

모든 둑을 제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도 가장 약한 한 군데는 있게 마련이지요. 김해를 막으니 창녕이 터져버린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랍니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끝나면 가장 북쪽 상주보에서 가장 남쪽 함안보까지 새로운 댐이 모두 여덟 개가 생깁니다. 정부는 이를 두고 홍수 피해 예방에 크게 보탬이 되리라 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맞지 않는 얘기랍니다.


댐이 홍수 예방 기능을 하려면 비가 오기 전에 미리 비워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오히려, 홍수가 지는 데 따라 서둘러 물을 빼면 홍수 피해를 가중시킬 개연성이 더 크다. 그래서 이것은 홍수만 보더라도 올바른 대책이 아니다.


이상길 교수는 엣날 사람들의 '자연스런 자연 파괴'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했습니다. 마산 진동리 청동기 유적을 보기로 들었습니다.

"자연제방 위에 주거지를 마련해 살면서 배후에 있는 습지에는 논을, 모래가 쌓이는 하천가에는 밭을 만들었다. 또 습지에 있는 물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썼다. 강가 습지 활용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함안보 같은 댐은 더 이상 안 됩니다. 오히려 이미 있는 인공제방조차도 허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옛날에는 습지였다가 농경지로 바뀐 땅들을 다시 습지로 돌려야 합니다.

강가 사람들은 증언한다. "옛날에는 습지에서 논농사도 많이 했다. 강물을 통해 흘러드는 유기물질이 많아 땅이 기름지기 때문에 홍수가 들지 않는 다른 논과 달리 3년에 한 번만 거둬도 수확이 많고 일손이 많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쌀이라면 수매도 잘 받아주지 않으니 하지 않지만."

화포천 이 모습도 지금은 망가져 있겠지만 언젠가는 본디 모양으로 돌이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율 스님이 2008년부터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살리기를 기어이 하고야 말 기세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기록은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지율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 필생의 이 토목공사 사업을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낙동강을 원래 모습으로 되살려 '자연스런 자연 파괴'를 할 수 있도록, 그 근거가 되는 자료를 마련해 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조금은 느긋하게 반대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훤주
 ※ <오늘의 문예 비평> 2010년 여름호에 발표한 글을 조금 가다듬었습니다. 6월 2일 지방선거 이전 시점에 작성됐지만 따로 손보지는 않았습니다.

사하촌모래톱이야기제3인간형외(20세기한국소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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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정한 (창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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