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율스님 "수레를 움직이려면 소를 때려야"

김훤주 2010. 7. 1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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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관통 반대를 위해 2003년 2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300일 넘게 청와대 등에서 단식을 벌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지율 스님.

그러다가 2003년 10월 제기한 도롱뇽 소송이 대법원에서 기각되던 2006년 6월을 전후해 경북 영덕 산골 토막(土幕)으로 들어갔던 지율 스님.

1. 2009년 3월 다시 나타난 지율 스님

그런 스님이 2009년 3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 지율 스님은 조선일보 상대 10원 소송과 김종대 헌법재판관(도롱뇽 소송 항고심 담당 재판장)에 대한 소송 등 재판에만 신경 쓰며 세인의 눈에 띌까 엎드려서 조용히 지내왔습니다.

지율 스님은 2008년 12월 이후 대운하든 4대강 살리기든 어떤 명분으로든 공사가 멈춘 적이 없는 낙동강 일대를 오르내리며 파괴 현장을 카메라에 담다가 2009년 11월 경북 상주 농촌 빈집에 자기 한 몸을 내려놓았답니다.

지율 스님은 이 때부터 1년 작정을 하고 '낙동강 숨결 느끼기'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상주에서 안동까지 1박2일 낙동강 순례길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더러 강가로 와서 안으로 들어가 보고 아래로 내려가 보라는 취지입니다.

"공사는 2008년 12월 이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경남 함안보가 2009년 12월 착공식을 했으나 준비는 2009년 4월에 다 돼 있었어요.

땅에 박을 철근도 잘려 와 있었고, 축대도 길도 다 돼 있었습니다. 다만, 이른바 보(洑)라고 할만한 것만 쌓아 놓고 있지 않았을 뿐이랍니다.
 
이런 사실을 얘기했지만 운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그이들은 강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돌아보는 것과 걸어서 들어가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지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강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다 보입니다."

2. 3월 29일 앞서 열린 낙동강 사진전

지율 스님의 이런 문제의식은 '낙동강 순례'에서 멈추지 않고 '낙동강 사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이전과 이후를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사진전이랍니다.

3월 29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나무갤러리에서 '낙동강 숨결 느끼기 사진전-Before & After'를 열었습니다.

창원 본포 나루터에 있던 강가 주막 자리는 시멘트 제방이 차지하고, 초록빛 수풀이 우거졌던 구담 습지는 메마른 준설토가 뒤덮고, 머리 허연 농부가 갈아 먹던 밭은 콘크리트 칠곡보로 바뀌었습니다.

과연 강을 살리는 짓인지 아닌지 한 눈에 알게 해주지요. 전시 이틀째인 3월 30일 나무갤러리를 찾았을 때 지율 스님은 이미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지율 스님이 툭, 한 마디 내뱉었습니다. "어제는 아무도 안 오시더니 오늘은 이렇게 몰리네요." 저는 빙긋, 웃었습니다.

3. 낙동강 사진전에서 나눈 얘기들

- 취지랄까 계획이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 낙동강이 무엇일까요? 정권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사진에 모든 게 들어 있어요. 해답은 아닙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장을 알리는데, 알려야 하는데, 과거를 갖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제도 'Before & After'로 정했습니다. '오늘에 감춰진 내일'이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Before & ~ing'라 해야 맞겠지만 그러기에는 슬퍼요.
(지금 눈뜨고 보는 수 말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아 슬프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부제에는 이런 뜻도 있어요. 선택이 여기서 끝나지는 않는다는 거지요.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말입니다. 다음(after)을 보는 것입니다. 사진도 전시회도 어차피 과정이니까요.

(이런 것이 바로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조계사에서 하는 사진 전시회는 어제 오늘 이틀로 마무리짓고요, 제가 중이고 근본이 여기니까 절간에서 시작은 하는 겁니다. 곧바로 이어서 열 군데에서 전시에 들어가요. 명동가톨릭문화관, 서울대학교 학생회, 부산·대구·광주·청주·상주·수원, 그리고 원불교에서도 전시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경남낙사모-지율 스님 낙동강 생태 예술 사진 경남 지역 순회 전시 추진 모임-도 취지가 같습니다. '오늘에 감춰진 내일'-과거 기록화가 바로 미래 설계도가 되는 이런 낙동강의 해괴망칙한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려는 애씀입니다. 경남낙사모가 지난 금요일에는 낙동강 일대를 순례했습니다.)

- 동영상도 있고 사진도 있던데, 촬영과 편집, 자막 처리, 음악은 어떻게 하셨어요?

△ 원래 제가 기계치(痴)예요. 그런데 절실하니까 다 배워지더라고요. 영상·음악·편집을 직접 다 했지요. 처음 천성산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완전 아날로그였어요.

대전 대덕연구단지라든지 창원 낙동강유역환경청까지 달랑 자료 하나 얻으려고 아침 일찍 내원사를 나와 하루종일 걸려 찾아가곤 했습니다. 알고 보니 모두 인터넷에 있는 것들이었는데.

문서도 글을 손으로 다 쓰고, 필요한 책이 있으면 그것도 일일이 책방까지 찾아갔어요. 지도 하나 구하려고 수원 국립지리원까지 찾아간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아날로그가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인터넷을 뒤져 손쉽게 알아내고 구하고 하는 게 아니라 발품을 팔아 손으로 얻고 하니까 정성이 들어갑니다. 같은 것을 하나 알아도 클릭 몇 번으로 아는 것보다 더 깊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요, 세상 모르고 살았을 때가 그립고 좋고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부대끼는 사이에 들어가는 정성이 다른 모든 것을 물리치는 힘이 됩니다. 그런 것이 없이, 클릭 몇 번만으로 알아지는 모든 것들은 아무래도 가볍고 날릴 수밖에 없습지요. 십분 공감합니다.)

시사인 김은남 기자와 인터뷰하다 저를 보고 아는 척을 하고 있습니다.


- 사진전 이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제가 제기한 소송이 몇몇 있는데요, 올해 재판이 대부분 끝이 날 겁니다. 김종대 헌법재판관 상대로 낸 소송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도롱뇽 소송 등으로 반대운동을 벌여 왔던) 천성산 관통도 올해 10월에 된다고 하고요. 그러면 일단 마무리되는 것이지요.


운하 문제는, 4대강도 운하지요, 지금까지는 천성산과 같은 연결 위에서 제가 활동을 해 왔지만, 반대 운동을 하는 분이 저 말고도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밖으로 드러나는 사회 활동은 하지 않고 대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어요. 앞으로 한 10년 정도는 기록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현장을 말입니다. 그런데 현장을 본 게 참 죄스러워요. 현장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눈물이 납니다.

(보지 않았다면, 몸을 상해 가면서 나부댈 까닭이 없을 텐데, 싶습니다. 지율 스님을 보면, 양산 내원사에 있을 때 천성산 산감(산지기)를 소임으로 맡으면서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산지기 노릇을 제대로 하다 보니 산을 망가뜨리는 이런저런 힘들을 알게 되고 부딪히게 됐고 그러면서 스님이 이렇게 '개고생'으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 기록을 하는 목적은요?

△ 지금 이렇게 파헤치고 망가뜨리지만, 나중에 복원을 하려 할 때 당시 모습이 어떠했다 하는 자료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남기는 거지 지금 당장 4대강 살리기 사업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막는 건 아닙니다. 막는다고 막아지지가 않잖아요?

낙동강이 지금 허물어져도 곧 복원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록을 기록으로만 여기고 남기지는 않는 것이지요.

저는 지금 상황을 위기라고 보지 않아요.

상황이 이럴수록 기회다,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 상황을 통해 반전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대중의 환경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고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마구잡이로 보를 만들고 강을 파헤치고 나면 올 여름에 당장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나빠졌는지를 당장 사람들이 느끼게 되니까…….

-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복원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 나무가 베어지고 자연이 파괴되는 앞에 서면 참 힘들어요. 왜 그럴까 가만 생각해 보면, 구석기 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생존 방식이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흙과 나무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온 '지구적 본능'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파괴 앞에 허물어지고 있어요. 낙동강은 생생한 현장입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무슨 일이 얼마나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면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지구적 본능'을, 망가진 낙동강이 일깨울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지구적 본능이라, 듣는 이에 따라서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간단하고 작은 진리입니다. 내가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기대야만 살 수 있다, 그리고 사람도 누구 또는 무엇인가에게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놓아야 한다…….)

- 방해는 없었는지.

△상주보 순례 도중 어느 건설 현장을 지난 적이 있습니다. 이튿날 관계자들이 "어제 저희 구간 다녀가셨다고 들었다"면서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거의 실시간으로 위치 추적이 다 되고 있다고 봅니다. 상주에서 직접 추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장이 아닌 서울에서 지시가 내려가고, 그러면 곧바로, 이를테면 5분 안에 출동이 되고 하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현장에서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 사진전을 하는 이유랄까 기대 효과는요.


△ 사람들 분노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아요. 반대지요. 다만 깨닫게 하고 싶지요. 사실 관계를 바르게 알리고 싶은 거지요. 알면 행동하고 행동하면 바르게 살게 됩니다.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욕을 하는 거예요. 정부를 비난하는 거지요. 낙동강이 저렇게 처절하게 짓밟히는 것은 우리가 낙동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옛날 누군가가 말했다지요. 나의 무지(無知)를 아는 게 참 앎이라고요. 우리한테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그 분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어요. 그것도 결국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지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으면 그 분이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겠어요?

(우리가 낙동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을 망가뜨리려는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이 얘기는, 수레가 굴러가지 않는다고 해도 어찌 수레에다 매질을 하고 있을 수 있겠느냐는 시원한 폭포수로, 조금 있다 우리 머리 맡에 쏟아집니다.)

망가진 낙동강 현장 사진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는 지율 스님.


- 전시회 사진 패널은 모두 몇 개나?

△ 35개인데 모두 100만원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100만원 실제 제작비를 내면 모두 드립니다. 전시용이지요. 필요한 지역에서 개인이든 단체든 가져가서 많이 알리면 좋겠어요.

그러나 아무한테나 드리지는 않아요. 운동하는 방식이나 성향을 보고 지나치다 싶으면 드리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데 이명박 반대를 세게 하는 단체에는 사람들이 잘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나요?

누구든지 와서 보고 '생각을 하게 해야 하는데' 너무 딱딱하고 세게 나가면 문을 열고 들어오기가 어렵잖아요? 찬성하는 사람들한테도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 사진 관련 다른 작업은요?

△ 사진집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려면 손이 많이 가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거든요. 4월 말이 되면 다시 낙동강 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사진을 잘 찍어서 정리를 해야 하거든요. 대신 간단하게 녹색평론사에서 40쪽 짜리로 조그맣게 리플릿 형태로 책 <낙동강-After & Before>이 나옵니다.

전시회도 서둘러 했어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사진을 보더니 "이게 제일 급하다. 사진을 갖고 낙동강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두르게 됐습니다. 조그만 책도 제가 손수 했어요. 보름 사이에 책을 편집해 내야 했어요.


- 낙동강이 쉬울까요, 천성산이 쉬울까요


△ 낙동강이 운동을 하기는 더 쉽다고 봅니다. 천성산보다는 엄청 쉽습니다. 천성산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낙동강은 모든 사람이 다 알아요. 새만금 간척도, 천성산 관통도 지역으로 국한이 되기는 마찬가지지요.

천성산이나 새만금은 잘못되면 재앙이 일단은 해당 지역으로 한정되지만 낙동강은 재앙을 모든 사람이 다 겪게 됩니다. 그리고 전국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쉬워도 저지를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4. 망가진 현장을 원래 모습 그대로라 여기면 끝장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지율 스님이 2009년 12월 14일 마산 수정만을 찾았을 때 했던 얘기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수정만은, 아시는 이는 아시겠지만, STX중공업 조선기자재 공장 진입을 두고 주민과 행정기관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또다른 '현장'입니다.

당시 주민과 함께 진입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원에서, 같은 성직자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강의를 듣고 공명을 하고 싶어서 지율 스님을 불러 모셨는데, 그에 앞서서 수정만 매립지 현장을 함께 둘러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지율 스님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예전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마을입니다. 옛날 모습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뒷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매립돼 있는 이것이 자연인 줄 알겠구나……." 
기억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던 셈입니다.

5. 기억을 통해, '수레'가 아닌 '소'를 때리는 지율 스님

아마도 '기록'이 중요하고, 그 기록을 많이 알려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번 사진전시회의 취지와 이 얘기가 다르지 않다는 데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에 떠올랐으리라.
기록은 기억을 거쳐 사람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지율 스님이 전에는 천성산에서 정권 같은 위엣것들을 움직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옛날을 뼈저리게 돌아보면서 낙동강에서 농민이나 노동자나 학생이나 일반 시민 같은 아랫것들을 움직이려 합니다.

"불교에 이런 설화가 있습니다. 소가 끄는 수레가 있는데 딱 멈춰 움직이지 않습니다. 수레를 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레를 때려야 옳겠어요, 소를 때려야 옳겠습니까? 수레를 때리는 것만큼 어리석고 멍청한 노릇이 없겠지요."

이명박은 수레일 뿐 소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수레를 움직이는 소는, 우리 사회 대중 말고는 달리 없습니다.  대통령은 수레가 될 수 있을 뿐이고 수레를 움직이는 힘은 대중에게 있다는 이 깨달음이 저는 참 좋습니다.

6. 드러나지 않을 때가 더 무서운 지율 스님

스님은 당시 10월부터는 밖으로 드러나는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 5월부터 바깥으로 나다니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당겨진 까닭은 스님이 몸을 내려놓고 있는 경북 상주 현장 사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시일만 앞당겼을 뿐 스님이 바깥으로 나타내지 않고 원래 하려던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 줄로 압니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활동은 저 말고도 할 사람이 많잖아요. 저하고는 체질도 안 맞아요. 저는 표면에 드러나는 대신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고 그리고 그런 것을 정리하는 작업을 할 참입니다."

저는 이런 지율 스님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지율 스님을 그렇게 감시하고 통재하려는 까닭을 뚜렷하게 알게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앞에 나서서 떠드는 사람이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모든 운동의 바탕이 되는 현장을 기록하고 뒷날에 남기는 이런 사람이 겁이 나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대는 사람은 그냥 자기 할 일을 다하고 나면 소리도 없이 사라지지만, 이렇게 바탕을 기록해 놓으면 누군가 그것을 보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갈수록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 계간지 <오늘의 문예 비평> 2010년 여름호에 실었던 글을 많이 다듬었습니다.

지율숲에서나오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지율 (숲,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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