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당산마루에 순점이 젖가슴 같은
보름달이 솟아오르는구나
영농후계자 꿈꾸며 농고를 졸업하던 그해
비닐하우스 한우 사육 열 마지기 농사로
다복하게 살아보자던 순점이 맹세는
보리밭 토주 냄새에 취해 비틀거리고
사람들 마음이 썰렁한 왕산리 밤이
더 없이 적막하구나
세범이도 병달이도 도회로 떠나고
깨꽃같이 젊은 날들을
군대에 보내고 돌아오던 날
반기는 것이라곤
마산으로 간 순점이 소식뿐
수소문을 한들 찾으랴만
찾는다고 한들
농부 아내가 되어주랴만
그날처럼 오늘 밤에도 싱싱한 살냄새와 함께
당산마루 가득 보름달이 떠오르는구나
이제는 고향산천 부모형제 모두 버리고
마산으로 도망하고 싶은
의령댁 큰아들 60년생 달수.
---'달수' 전문(성기각 시집 <통일벼>, 열음사, 1989년)
손전화로 찍은 사진이라 좀 흐립니다. 미안합니다.
5월 5일 창녕문인협회가 소벌(우포늪) 들머리에서 문학의 밤 행사를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의 시를 읽는 차례가 있었습니다. 재미나는 발상이었습니다. 아내가 남편 시를 읽고 남편이 아내 작품을 읽었습니다. 성기각 시 '달수'의 주인공 배달수는 그 시를 읽었습니다.
배달수는 자기를 두고 소를 돌보는 목동은 아니고 소를 사육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농부는 아니라는 말이고 그러니까 규모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축산업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성기각이 '달수'에 대해 말했습니다. <창녕문학> 제34집에 실린 평론 '생태시生態詩에서 인간을 건지다'를 통해서입니다. 직설화법으로 '몽매한 시인들'을 나무라는 글입니다.
"투박하고 거칠 뿐만 아니라 생태시라 칭하기엔 별미쩍은 구석이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얼핏 보잘 것 없는 시골 젊은이가 겪는 갈등을 허투루 흘리지 않고 있는 이 시야말로 인간 생태가 어떠한가를 용케 짚어낸 것이라 자찬한다."
이어집니다. "꽃 본 나비, 물 본 기러기처럼 운우지락을 나누고 싶은 것은 생명체가 지닌 본능이며 아름다움이다. 이 시에서 '달수'와 '순점이'가 갖는 욕망과 갈등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삶터에서 자연적 이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성기각의 이런 말은 생태시를 펑퍼짐하게 이해하는 다른 여러 시인들에 대한 비판과도 뜻이 통합니다. 이런 표현에 성기각이 하고자 하는 말이 다 담깁니다. "나비가 나고 들 때 펄럭이는 것은 아름다운 날개가 아니라 살기 위한 맹목적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성기각은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이니 생태계이니 운운하면서 시구 하나 만질 때마다 취생몽사 꽃 향기를 풀어내고, 문장 하나 짚을 때마다 푸드덕 날아오르는 새 소리에 감탄할 일만은 아니다. 풍류와 문묵文墨이 멋스럽다고 생태시에 가당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못 되는 시인들이 너나없이 생태시라는 음습한 늪에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정체도 모르면서 남들이 장에 간다하니 거름 지고 따라나설밖에 없는 우수마발을 우리는 도처에서 본다.
그렇게 욱여드는 시인들은 모두 비단으로 싸기엔 구린 구석이 너무 많다. 무른 땅에 나무 박듯 고민한 흔적도 없는 시들을 읽으며, 우리는 왼고개를 친다. 염기厭忌를 느끼게 하는 조잡함 때문이다."
생태 또는 생태시가 대세를 이루다 보니 걸맞게 쓰려고 갖은 자연 풍경을 끌어들이지만 거기에는 진정 생태에 대한 배려나 고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흉내만 내고 있다는 얘기입지요. 참 오랜만에 시원한 글을 읽습니다. 저도 이 날 상을 하나 받고 덕분에 꽃도 하나 건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꽃인지 못 물어봤습니다. 아시면 좀 일러주시지요.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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