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운동권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는 이유

김훤주 2010. 5. 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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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나라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세 종류가 있다면서, "하나는 개 같은 존재들이고 다른 하나는 개만도 못한 존재들이고, 또다른 하나는 개보다 더한 존재들"이라 했을 때 손뼉을 치면서 옳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전교조는 제가 싫어하면서도 좋아합니다. 전교조 근본 정신은 동의하면서도 실제 행태에는 어느 정도 실망을 합니다. 이번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 반대도, 대중조직이라는 한계를 인정해 그럴 수 있겠구나 여기는 한편으로, 좀더 의연하게 "너거가 하려면 해라.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전제 아래 이런 얘기를 한 번 드려 보겠습니다. 오해를 최대한으로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명단을 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4월 19일 공개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학생·보호자의 학습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지요.


앞서 15일에는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전교조가 낸 명단 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교원 단체나 교원노조 가입 현황과 관련한 실명 자료를 인터넷 등에 올리거나 언론 등에 공개하면 안 된다"고 결정했더랍니다.

당시 재판부는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 제3조 2항 "이 법에 따라 공시 또는 제공되는 정보는 학생 및 교원의 개인 정보를 포함하여서는 아니 된다"를 근거로 삼았지만 조전혁 의원은 이를 아주 보기좋게 무시했습니다.

같은 법원은 4월 27일 전교조 조합원 16명이 조전혁 의원을 상대로 낸 청구에서 같은 취지로 조 의원더러 홈페이지에 올린 명단을 지우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어기면 하루에 3000만원식 간접 강제 이행금을 내라고 결정했습니다.

조 의원은 물론 명단을 내리지도 않겠으며 강제 이행금을 물지도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30일 결정문이 전달되고 이튿날부터 강제 이행금이 물려져 5월 4일로 1억원을 넘어서자 "돈 전투에 졌다"며 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운데가 조전혁 의원. 법원 결정과 무관하게 계속하겠다는 기자회견. 뉴시스 사진.


한나라당의 화려한 이벤트는 결정문이 전달되던 날 시작됐습니다. 같은 당 심재철 정두언 진수희 등 국회의원 10명 남짓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에 동참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처럼 조전혁 의원의 명단 공개에 동참하겠다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5일 현재까지 32명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여기에는 조선일보 출신으로 진주 갑 선거구가 지역구인 경남의 최구식 의원의 이름도 올라 있습니다.

이들 의원은 조전혁 의원 혼자서 이행 강제금을 물게 할 수는 없다면서 의원들끼리 십시일반으로 모금운동까지 벌이는 한편으로 릴레이 방식으로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를 이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명단을 홈페이지에 올린 의원들을 그대로 이어가고, 이들에게 법원이 내리라고 결정하면 다른 의원이 뒤를 이어 올리고 다시 법원이 내리라 결정하면 또다른 의원이 뒤를 이어 올리는 식으로 하겠다는 얘기랍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이런 행동은, 당연히 그들이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뉴 라이트' 같은 보수 진영으로부터 호감을 샀습니다. 조 의원에 따르면 3일까지 시민 후원금이 1500만원 정도 들어왔습니다.

자유교육연합과 좋은 학교 만들기 학부모 모임은 13일 모금 콘서트를 열기로까지 했습니다. 아울러 시대정신·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 모임 등 '뉴 라이트' 계열들은 4일 성명을 내어 조 의원의 명단 공개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법률 위반만 갖고는 그이들을 비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니까요. 스스로 악법이라고 여기는 국가보안법이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같은 노동법을 어기는 경우가 적지 않지 않습니까.

어쨌거나, 조전혁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의 이번 행동은, 현행법을 어겼는지 여부를 떠나 어쨌든 자기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화끈한 행동임은 분명합니다. 법원 결정 앞에 꼬리를 내렸다면 그이들 지지자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쩌면 이런 행동이 한나라당에게 집권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네들 지지자를 한꺼번에 결집시키고, 자기네들이 바라는 핵심 쟁점을 대중의 관심사로 확실하게 떠올리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발 벗고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 아닙니까. 보기는 멀리에 있지도 않습니다. 바로 마산 수정에 있습니다. 이를 보면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는 머리가 좋지 않거나 배짱이 모자란답니다.

올 2월 24일 수정트라피스트 수녀원 원장에게서 이메일이 하나 날아왔습니다.

"드디어 전과자가 되었네요. 'World Best 사기꾼' 새겨진 노란 조끼 온 마을 주민들 함께 입고 작년 여름 서울 STX  본사 앞에서 집회를 했더랬지요. 회사가 억울하다고 저를 포함해 16명을 고소했지요. 경찰도 명예훼손만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위원장 100만원, 다른 이들은 30만원씩 벌금이 나왔네요."

수녀원 요세파 원장(오른쪽)과 오틸리아 수녀.(실비단안개 사진입니다.)


지역의 어지간한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정당이라면 STX가 'World Best 사기꾼'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검찰의 약식 기소를 거쳐 나온 법원의 벌금 약식 명령은, '조폭적인 부당한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STX와 마산시의 폭력적 수정만 매립지 진입'을 정당화하는 잘못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두 달 넘게 지난 지금껏 조용하기만 합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과 그 일당처럼 다 함께 무리지어 "우리도 STX가 'World Best 사기꾼'이라고 본다"면서 "수정 주민과 마찬가지로 STX는 고소하고 검찰은 약식 기소하고 법원은 벌금형을 매겨라"고 요구할 수 있을 텐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거기에 더해 'STX를 World Best 사기꾼으로 보는 까닭'을 잘 가려내 널리 알린다면 적어도 지역사회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쟁점으로 삼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벌금이 나올까봐 두렵다고요? 그에 대해서는 한나라당과 '뉴 라이트' 계열이 이미 정답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전체 시민들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벌이면 그만입니다.

그럼으로써 'STX 공해 공장의 수정만 매립지 진입'을 한 번 더 쟁점으로 떠올리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함도 안겨주고요…….

아~~~ 조금 전에 인터넷을 보니 '학부모 단체도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 파장 예고' 이런 기사 제목이 뜹니다. 저이들은 이처럼 확실하게 화력을 동원해 상대방 약점을 집중 공격하는 배짱과 머리가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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