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검사 스폰서, 연아 스폰서, 차이점과 공통점

김훤주 2010. 5. 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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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스폰서 사이 공통점과 차이점

검사 스폰서가 얘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경남 지역의 한 건설업자가 지난해까지 25년 동안 부산·경남에서 근무했던 검사 가운데 57명에게 금품·향응 제공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른 뒷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만큼, 제가 거기 한 자리 걸치고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고 그것을 두고 다른 여러 이들과 함께 생각을 주고받고 싶을 따름입니다. "검사도 스폰서가 있고 김연아도 스폰서가 있다. 둘 사이에서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어떻게 같을까?"

2. 이윤 또는 특혜가 목적이라는 공통점

4월 23일치 <노컷뉴스>를 보니 김연아 스폰서가 대단하더군요. 삼성전자, LG생활건강, 매일유업, 홈플러스, 코오롱 패션, 현대차 광고 모델이고 현대차와 국민은행, 나이키는 스폰서십이고 로만손과 CJ푸드빌(뚜레쥬르), 스무디킹 등 10개는 초상권·성명권을 활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였습니다.

스폰서 검사 명단. 뉴시스 사진.


이런 김연아 스폰서는 합법이고 반면 검사 스폰서는 불법으로 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검사 스폰서는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고 김연아 스폰서는 드러날수록 좋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검사 스폰서는 푼돈으로 많이많이 되풀이됐고 김연아 스폰서는 몫돈으로 상대적으로 보면 그리 자주 되풀이되지 않았다는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적은 검사 스폰서든 김연아 스폰서든 똑같은 것 같습니다. '자본의 목적은 끊임없는 자기 증식'이라는 자본주의 일반 원리에 비춰볼 때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노릇입니다.

검사 스폰서도 이윤 또는 이득을 노렸고 김연아 스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아무 이익을 바라지 않고도 뒤를 봐주기(후원을 하기)도 했었으나 자본주의가 일반화되면서는 그렇지 않게 됐습니다.

검사에게 갖은 것을 제공한 업자를 두고는 일반적인 이윤이 아니라 특혜를 노렸다는 점에서 김연아 스폰서와 다르다고 하는 이도 있겠습니다만, 이 또한 김연아 스폰서도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김연아를 지렛대 삼아 다른 경쟁 업체보다 더 많이 매출을 올리려는 것이 김연아 스폰서의 핵심 의도일 것입니다. 김연아 광고를 통해 대중에게 더 많이 파는 '특혜'를 누리는 것 아닌가 싶다는 말씀입니다.

광고의 속성이 원래 그렇지 않으냐 하시면 할 말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상대 업체를 제압하더라도, 어떤 기발하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눈길을 확 끄는 광고가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을 독점하는 광고를 통해서라면 '특혜를 돈으로 사는 행위'라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3. 대중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 차이점

이렇게 차이점과 공통점을 놓고 보면 검사와 김연아 사이 차이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검사는 대중과 직접 연결돼 있지 않지만 김연아는 대중과 바로 이어져 있습니다.

김연아, 삼성 로고를 배경으로 한.

검사는 대중이 없어도 존재하지만 김연아는 대중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합니다. 자연인 김연아는 대중이 있으나 없으나 존재하지만 이른바 '피겨 퀸' 김연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스폰서들은 바로 이런 차이를 잘 알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검사의 스폰서는 검사에게 대중이 없다는 점을 파고 들었고, 김연아의 스폰서는 김연아에게 대중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검사에게 주어졌다는 금품·향응 그리고 심지어 성 상납 같은 것은 검사 둘레에 대중이 있다면 전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김연아가 받은 엄청난 금품은 거꾸로 김연아에게 대중이 없다면 전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대중의 있고 없음이, 이런 차이를 불러왔다고 저는 봅니다. 검사 스폰서와 검사는 비난과 비판을 받지만, 김연아 스폰서와 김연아는 비난은커녕 거의 아무런 비판조차도 받지 않는 차이도 마찬가지 대중의 있고 없음으로 갈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검사는 공권력 가운데서도 핵심인 권력이고 김연아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도 여기에 적지 않게 작용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공권력을 사유화했거나 사유화하려 했다는 점이 검사 스폰서와 검사의 치명적인 잘못입니다.

이런 점을 빼놓고 보면, 김연아 스폰서와 김연아 또한 비판받을 점이 없지 않을 텐데도 아무 바람도 불지 않고 그냥 조용하기만 합니다. 더욱이 김연아에 대한 비판은 빙빙 에두르지 않으면 아예 성립이 안 되는 분위기까지 있습니다.

김연아가 너무 많이 후원을 받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 김연아가 후원을 받는 기업 가운데 일부는 노사 관행이나 사회 활동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 따위는, 제가 잘 몰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거의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대중이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니까요.

4. "1등만 고무·찬양하는 '더러운' 대중"

이렇게 됩니다. 대중(저도 이 '대중'에 포함됩니다만)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침뱉어 욕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1등만 하면 그만이라면서 거침 없이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는 삼성을 비난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중은 '1등만 기억하는 모습'을 스스로 거리낌없이 내보입니다. 김연아만 기억하는 자기 모습이 더럽다고 여기지 못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기억하기 때문에 2등부터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습니다.

"맨 앞에는 금메달리스트들이 앉았다. 두 번째 줄에는 은·동메달리스트가 자리를 잡았고, ……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13위를 차지하며 '제2의 김연아'라는 별명을 얻은 곽민정 선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앉지도 못하고 단상 옆에 그냥 서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힘들어하던 곽 선수는 회견이 끝날 무렵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시사인> 제130호 2010년 3월 6일치에 실린 글입니다.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이 쓴 '겨울 올림픽 종합 5위가 아니라 7위가 맞다?'에서 띄엄띄엄 옮겼습니다.

이같은 3월 2일 밴쿠버 겨울 올림픽 선수단 귀국 기자회견에 대해 일부 비판이 대중에게서 나오기는 했지만, 세상이 이렇게 돼 가고 있는 데에는 대중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역 건설업자가 검찰에 낸 진정서 일부. 삼성이라면 이런 진정서를 낼 필요가 없겠지요.


5. 연아 스폰서 하면 검찰 스폰서 사실은 덮어준다?

이번 검사와 스폰서에서 지역 건설업자가 주역을 맡기는 했지만, 지역 업자는 재벌과 견주면 '새발의 피'입니다. 검찰이든 정계든 제대로 주물러 왔다고 '확실하게 검증'된 데는 '삼성'뿐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물정은 이렇게 흐릅니다.


삼성 같은 자본이 한 손으로는 숨어서 검찰 스폰서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드러내 놓고 김연아 스폰서를 합니다. 그러면서 챙기는 것은 이 손이든 저 손이든 다르지 않은 이윤 또는 특혜입니다.

김연아와 스폰서에 견줘 말해 보겠습니다. 어제 저녁 김연아에게 열광했는데, 오늘 아침 텔레비전을 보니 김연아가 삼성을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겠지요. "삼성이 잘못했어도 이런 정도는 봐 줄만하지 뭐……."

2007년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폭로 때, 2005년 삼성 전략기획실장 이학수와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의 검찰 떡값 제공 보도 때 삼성을 비판·비난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그런 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의 이중성과 자본의 이중성에 대해서 말입니다. 물론 일관성도 있습니다. 대중은 말초의 즐거움을 주로 좇는다는 면에서, 자본은 이윤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한결같습니다. 예? 아니라고요?

김훤주

삼성을 생각한다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김용철 (사회평론,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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