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숨어있는 친일파에 면죄부 될라

기록하는 사람 2008. 5. 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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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한국언론재단 19층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마침 다른 일로 서울 갈 일이 있기도 했지만, 기자로서 역사적인 자리에 꼭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최측의 발표와 브리핑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 순서가 왔다. 다른 기자들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재빨리 손을 들었다.

"오늘 발표한 4800여 명의 친일인사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면죄가 되는 겁니까?"

친일 인명 발표가 반갑지만 않은 이유

사실 그동안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우려를 떨칠 수 없었던 게 바로 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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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국언론재단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4800여 명의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김주완

제 아무리 편찬위원회의 전문가들이 철저히 조사했다 하더라도 증거자료 확보가 어려워 누락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단지 확인되지 않았을 뿐임에도 '친일파가 아니다'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자료나 규명되지 않은 친일조직도 엄청 많다.

강제동원, 그 중에서도 '위안부' 동원 관련자료는 일본이 끝까지 딱 잡아떼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병·징용대상자를 동원하는 데 앞장선 조선인 친일·부왜인사들은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조선인으로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서 공로 포상을 받은 사람과 내역도 '개인정보'라는 엉뚱한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흔히 밀정이라 불리는 촉탁원들의 신상도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고, 일제 말기 경방단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동원과 식량공출, 놋그릇·놋수저 징발 등에 앞장선 조선인 간부들의 이름과 그 조직의 구성과 운영도 제대로 밝혀진 바 없다. 이들은 일제총독부의 직원록에도 등재되지 않아 확인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번 4800여 명에서 제외된 친일파들 중 상당수가 서울이 아닌 지역의 토호들로 추정된다. 서울은 그마나 당시 신문보도도 많았고 자료확보도 용이하지만, 지역의 경우 당시 지역신문 기사에 대한 색인작업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실제 내가 사는 마산에서도 친일혐의는 뚜렷한데, 이번 발표에는 빠진 사람들이 여럿 있다.

이에 따라 친일·부왜인사가 분명하지만도 단지 편찬위원회가 자료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빠진 사람이 4800명보다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이번 발표 명단을 보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역시 꼭꼭 숨겨놓은 자신들의 '엑스파일'에만 있는 친일파들의 명단이 이번 발표에서 빠진 걸 보고 속으로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선 안 된다. 8월에 인명사전을 발간한다고 하지만, 사전이 나온 이후에도 조사는 계속되어야 하고, 추가로 확인된 친일인사에 대한 사전의 증보작업도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바로 이게 경남의 지역신문 기자가 서울까지 가서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다행히 질문을 받은 주최측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행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말해 두고자 한다"며 "실제 여기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보류 중인 명단도 적지 않다"고 대답했다.

지역 친일 토호 중단 없는 조사를

예를 들어 통영 출신의 유치환도 거기에 해당된다.

편찬위원회는 "최근 만선일보에 실린 유치환의 친일 논설이 추가로 확인되었으며, 협화회 근무도 간접 기록이긴 하나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면서 "친일 혐의가 있는 유치환의 시 세 편(수, 북두성, 전야)의 성격에 대해 국내와 만주의 관련 전문학자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 중이며, 정밀한 분석 결과를 수렴하여 편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치환도 유치환이지만, 조사인력과 자료의 한계로 누락된 지역토호 친일인사들에 대한 중단없는 조사를 부탁드린다.

원래 사전이라는 것은 한번 펴냈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 수정·증보판이 나와야 하고, 그걸 위한 상시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밝혀주기 바란다. 나 역시 우리 지역의 숨어있는 친일인사들을 찾아내는 데 기꺼이 힘을 보탤 생각이다.

2008/05/01 - [이런 저런 생각/김주완/김주완 자료실] - 친일파 명단서 경남 연고자 찾아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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