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종친회 사칭한 책장사에 속지 마세요

기록하는 사람 2008. 5. 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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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지역번호가 찍힌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해김씨 종친회'라는데, 나이 지긋한 분의 목소리였습니다. 제 성(姓)이 김해 김가이며 제가 신문사 부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더군요.

'종친회 사업으로 책을 발간했는데, 안내문을 보내드릴테니 잘 좀 검토해달라'는 겁니다. 책이 아니라 안내문을 보낸다니 별 부담없이 '알겠다'고 하고 끊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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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의 이름과 안내문의 단체이름 등이 제각각입니다.

그로부터 한 이틀 후 택배로 책상자가 왔습니다. 내용물을 보니 비디오테잎 두 개와 하드케이스의 책 한 권이 들어있더군요. 보내 주겠다는 안내문도 함께 있었습니다.

'김해김씨약사편찬위원회'라는 명의로 돼 있었는데, 본문에는 엉뚱하게도 '김씨보감편찬회'에서 발간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책에는 '한국성씨사료연구원'으로 되어 있더군요.

도대체 어느 단체의 이름이 맞는지 정체불명이었습니다. (이후 반송해달라고 보내온 팩스에는 '김씨편찬위원회'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편찬회'와 '편찬위원회'는 엄연히 달라야 하는데, 그 구분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도 조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존의 자료와 사진들을 대충 짜집기해서 만든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책값은 15만 원이었는데, 돈을 보낼 계좌번호도 적혀 있더군요.

이 때부터 부쩍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서울에서 종친회라며 전화가 왔더군요. 역시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그 분은 "책은 잘 받았느냐"며 "요즘 종친회 재정이 어려운 데 잘 좀 생각해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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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안내문 안에서도 단체 이름이 서로 다르네요.

저는 "무슨 안내문을 보낸다더니 책을 덜컥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며 조심스레 따졌죠. 그래도 그 어른은 점잖은 목소리로 "잘 좀 생각해주시라"는 겁니다. 나이 드신 분에게 자꾸 따지기도 뭣 하고 해서 그 정도로 끊었습니다.

종친회에 연락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김해김씨 종친회를 검색해 전화를 했습니다. 종친회장님을 연결시켜 주시더군요. 그 분께 이 책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대뜸 "그 책 절대 사지 마십시오. 우리 종친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 종친회는 최근에 어떤 책도 발간한 적이 없습니다"라는 겁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군요. 전문적으로 그럴듯한 단체의 명칭을 사용하면서 이런 책을 내고 판매하는 업체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종사하고 있는 언론계의 각종 '00기자협회'에서 펴낸 책도 판매대행사에서 기자협회의 이름을 사칭하며 반강제로 구입을 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다시 전화가 왔더군요. 어떻게 하시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단호한 마음으로 "책을 사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반송해달라더군요. 반드시 우체국 택배로 보내달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몇 시간 후 반송 안내문이 팩스로 들어왔더군요. 그리고 한 시간 전 우체국 택배 직원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반송비용 5000원은 제가 부담해야 한다는군요. 돈을 드리면서 "이런 반송 사례가 많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거 족보 책이죠?" 하며 "예 제법 됩니다. 김해 김씨가 하도 많으니까 이런 장사도 되는 모양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책 반송을 마친 후 바로 이 글을 씁니다. 혹시 진짜 우리 종친회인 줄 알고 차마 거절을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15만 원을 보내는 피해자들이 있을까봐 제 경험을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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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디오 테잎은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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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사 아저씨의 말로는 이런 책 반송이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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