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청 동인 시집 <여울 떠나는 잎새>
소년은 휴지통을 뒤져 점심을 해결했다
휴지통을 뒤지는 건 당당한 일이므로
소년은 맥도널드나 롯데리아 봉지에서 햄버거나 포테이토를 꺼내
뱃속에 채워넣었다
어느 국립대학교 인문대 앞에서 본 풍경이다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다가 문득 보게 된
야구모자 눌러쓴 소년의 늦은 점심
소문이 꽃향기처럼 훅 몰려왔다
신인류의 탄생설까지 나왔고
모든 추측은 아름답게 신화화 되었다
어느 누구도 그를 걸인이거나 노숙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강의실 오르는 계단은 심하게 구겨져 있었고
무덤처럼 견고하게 입을 틀어막고 있어야 할 휴지통은
여기저기 내부를 쏟아내고 있었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생수를 주워 뚜껑을 열었다
딸깍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침전물이 없는 순수한 지하암반수가
그의 목구멍을 시원하게 흘러내려갔다
아프리카를 꿈꾸는 건 어쩌면 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우리의 땅을 그리워해야 한다
먹을 게 많아서 저리 뚱뚱해진 휴지통이
누군가의 한 끼 밥이 되는 것을
걸인의 배가 자꾸 부풀어 오르는 것을, -박서영 '신인류의 식사' 전문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끝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짐작은 충분히 되지요만, 그렇게 짐작하는 일이 전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쾌한 것은 아니지만, 가볍거나 맑거나 밝거나 따뜻하거나 아늑한 무엇과는 거리가 멀답니다. 어쩌면 뻔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읽으면서 숨이 턱, 한 번은 막혔습니다.
문·청 동인 열 번째 동인집 <여울 떠나는 잎새>에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김승강·박서영·성선경·성윤석·송창우·윤봉한·이승주·이주언·최석균이 동인입니다. 제가 지역과 전국의 문학에 이른바 정통해 있지는 않지만, 지역과 전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작법이나 시풍에서 비슷함이나 같음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좋게 말씀하자면 다양합니다. 다채롭다고 하기는 조금 어렵겠고요. 하하.
'발간사'를 보니 '경남'이 동인을 묶는 끈이었네요. "경남에서 나고 자랐거나 학창시절을 보냈거나 현재 경남에 살고 있는 시인들".
이번에 나온 문·청 동인집은 '내 기억 속의 마을'과 '문·청 2009년 다시 읽고 싶은 시' 둘을 기획특집 삼아 앞뒤에 뒀습니다. 그러고 가운데에 '동인 신작시'를 실었습니다.
'다시 읽고 싶은 시'에는 이정록 '청혼' 강가람 '화석 물고기' 손택수 '은유' 윤병무 '졸음운전' 김행숙 '가까운 위치' 김기택 '떠는 사람' 배한봉 '장엄한 저 꽃 만져보려고' 이수명 '사과의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동인들이 볼 때 좋은 작품이라고 꼽으신 것이겠지요.
기억에는 공간 또는 장소와 시간이 함께 담깁니다. 그런 '내 기억 속의 마을'에는 동인들의 작품과 문학평론가 김대성의 산문이 실렸습니다. 저는 이 기획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제게는 평론가의 글 첫머리가 다른 시편들보다 훨씬 '짙게' 다가왔습니다. 해당 기획의 전체 느낌을 '확'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연인의 몸을 더 이상 만질 수 없게 되었을 때, 떠나버린 연인의 몸을 떠올리기 위해 내 몸 여기 저기를, 연인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을 찾아 손 끝으로 천천히 쓰다듬어본다.
손끝 따라 퍼지는 감촉에 집중하다 우연한 자리에서 폭발하는 강렬한 전율은, 산산조각이 나버린 감정들의 잔해만 남기고 손끝은 이내 망연자실한 채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같은 글에서, "그곳을 스쳐지나가고 있을 때 우리는 그제서야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취지 문장도 얼핏 봤는데, '개구라' 같으면서도(글쓴이에게는 좀 미안하네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그럴 듯했습니다. 아주아주.
도서출판 해성. 103쪽. 8000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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