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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나는 김지하 시인이 좀 조용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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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4일인 지난 3월 19일은 김지하 시인의 예순아홉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김 시인은 이날 서울에서 시집 <시삼백> 출간을 맞아 밥집으로 기자들을 불러 얘기를 나눴습니다.

'시삼백(詩三百)'은 <시경>의 다른 이름이라 합니다. 이번에 알았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공자가 <시삼백>을 예순아홉 일흔 되던 나이에 펴냈다면서 자기 시집 제목을 이리 잡은 데 대해 '오마주'-존경의 뜻을 담은 따라하기라 한 모양입니다.

김 시인이 이렇게 '이벤트'를 해대니까 이튿날 서울 일간 신문들은 한꺼번에 관련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김 시인이 소유한 문학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 줍니다.(저는 김지하의 <시삼백> 작명이 오마주가 분명 아니라고 짐작합니다.)

김 시인은 아무래도 나서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또 이를 통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얘기하기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을 즐겨 까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20일치 한겨레 신문 기사.

물론 김 시인이 이번에 시집을 내면서 '노무현과 일당들'에게 다시 독설을 쏟아 내기는 했지만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국민을 배신했다" 정도로 그쳤으니까요.

하지만, 지난 해에, '평소 아는 기업인으로부터 소액 용돈으로 1000만 원을 받았다고 자백한'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를 감싸면서는 비교·대조가 필요없을 정도로 심하게 했습니다요.

2009년 9월 26일치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천만원짜리 개망신'에서 민주당을 향해 "자기들이 대권 후보로까지 밀었던 사람을 천만원으로 잡아먹겠다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라며 "지우지 말기 바란다. 그래! 한마디로 '×' 같아서 이 글을 쓴다"고 비난했습니다.

'똥묻은 개'를 감싸 안으면 자기도 '똥칠갑'이 된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지, 그것도 입에 개거품까지 물고 '× 같아서'라는 쌍말까지 해대면서 '씹어돌렸습니다.'

앞서 2008년 10월 어름에는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기고한 '좌익에 묻는다'를 통해 "촛불을 켰을 때 비웃음을 일삼던 정의의 홍길동이들이 …… 촛불을 횃불로 바꾸어 버리려 했다", "간단히 말하라. 이용해 먹으려 했던 것이다"고 터무니없이 나무랐습니다.

운동을 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는 이들이 당시 벌어진 촛불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것은 아주아주 당연한 일임에도, 그리고 어떤 세력이든 자기 생각대로 방향을 잡아나가려고 애쓰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마치 그것이 무슨 죄악이나 되는 양 여기며 이 따위로 입질을 했습니다.

게다가, 김 시인이 1991년 노태우 정권 아래 학생들 자살이 잇따르자 5월 5일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하는 기고문을 낸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든 자살을 두고 잘하는 일이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 시인이 여기서 한 말이 통째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이는 당시 그런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았던 '죽음의 손길'에는 '시인의 눈길'을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균형도 맞추지 않았고 본질도 외면해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저는 중국 사상가이면서 문필가인 '노신' '선생'이 자꾸 떠오릅니다. 스승 노신께서는 청년들에게 '지도자라는 것들'을 믿지 마라 이르셨습니다.

그이들이 앞에 나서 이리로 가야 살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고 떠들고 저쪽은 틀렸고 자기가 맞다고 떠드는데, 그런 헛소리에 전혀 흔들리지 마라 하셨습니다. 진짜 진리나 살길을 아는 이에게는 저렇게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진짜 진리나 살길이 어디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진리를 향해 살길을 따라 이미 실천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지금 앞에 나서 떠드는 이들은, 더욱이 남 공격에 핏대 세우는 이들은, 진리가 어디 있고 살길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김지하 시인이 이런 노신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마산의 '창동 허새비' 이선관 시인이 생전에 씁쓸하게 일러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70년대 김 시인이 결핵으로 마산에 요양하러 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이선관 시인이, 뇌성마비로 비틀린 육신을 끌고 시집 <기형의 노래>(1969)를 들고 병문하러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려온 이야기에 기가 막혔답니다. "어떤 병신이 지 시집을 들고 찾아왔대." 김 시인의 오만과 독선이 어느 정도인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대목입니다.

물증이 마산문학관에 있습니다. 김지하 시인이 난초를 친 위에 붓으로 써 보낸 편지입니다. "말은 삶. 그런 말 할 리 없음. 했다면 술 때문일 것이매 나의 십년 단주로 보아 용서 바람. 이선관 시인께 임오년 여름." 임오년은 2002년, 그러니까 8년 전입니다.

그러므로, 김 시인이 자기가 싫어하는 상대방을 두고 얘기하면서 비수를 꽂아대는 입질을 멈추지 않는 것은, 어쩌면 체질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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