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지역신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기록하는 사람 2010. 2. 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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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역신문의 경제면이나 문화면, 스포츠, 연예면에서 자기 지역과 무관한 기사와 사진을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야말로 자질구레한 동네 소식과 사람들 이야기로 채워야 한다고 본다. 전국적인 정치 뉴스도 칼럼을 통해 이야기 하는 정도면 족하다.

마산 월영동의 한 마을에 누군가 풀어놓은 개 한 마리가 똥을 싸고 돌아다녀 아이들이 무서워하고 주민들이 불편해한다는 뉴스, 산호동 삼성타운 아파트 앞 교회가 인근 주택 몇 채를 구입해 헐고 주차장 조성공사를 시작했다는 뉴스, 양덕동 시장 앞 횡단보도가 없어지는 바람에 시장 상인들이 장사가 안 돼 울상을 짓고 있다는 뉴스, 시민단체 간사를 맡고 있는 한 노총각이 마침내 배필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뉴스 등이 주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부음(訃音)'도 그렇다. 그냥 상주들의 이름과 빈소, 발인일시 등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고인의 삶을 짧게나마 알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 소업마을 김종경 씨가 5일 오후 2시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故) 김종경 씨는 옆 동네인 퇴래리 신기마을에서 1남 5녀 중 셋째딸로 태어나 18세 때 협동조합 직원이던 배호열(작고) 씨와 결혼, 2남 2녀를 낳아 키웠다. 고인은 34세 때 일찍이 남편을 잃었으나 시부모를 모시고 시누이 세 명을 출가시켰으며, 네 자식을 어렵게 길렀다.

고인의 둘째 아들 배종룡씨는 "항상 조용히 일만 열심히 하시는 전형적인 농촌 어머니셨다"면서 "한달 보름 전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고추밭과 참깨밭을 걱정하셨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배종철(농업)·종룡(김해여중 교사)·태선(주부)·원주(주부) 씨가 있다. 빈소는 김해시 삼계동 조은건강병원 영안실 특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오전 수시, 장지는 김해시 한림면 선영이다. 연락처 : 011-591-4365(배종룡)"

위의 기사는 실제 <경남도민일보>에 실험적으로 실린 것이다. 아쉬운 건 아직도 기자들이 이런 식의 기사쓰기를 낯설어한다는 것이다. 출입처인 관공서 위주의 기사 가치판단에 익숙한 탓이다. 그리고 실제 이런 기사가 독자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도 전면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던 차에 며칠 전 한국신문협회가 펴낸 <지방신문 특화전략-북유럽 4개국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책을 보고 무릎을 쳤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지역일간지들의 지면이 내가 생각하던 그것과 똑 같았던 것이다. 그 나라 신문들은 지역주민들의 일상, 출산, 결혼, 사망과 같은 대소사를 크게 다루는 퍼스널 페이지가 많고, 심지어 1면에 평범한 한 중년 남성의 생일에 관한 기사를 내고, 7면에 그의 삶에 관한 장문의 기사로 연결한다.


이런 퍼스널 페이지는 1면 열독율(99%)에 이어 1위(85%)라고 한다. 노르웨이의 한 신문은 아기에서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생일까지 축하메시지와 함께 얼굴사진을 싣고 있었다. 그런 신문들은 모두 탄탄한 흑자경영을 하고 있었다. 실제 독자들도 그런 기사를 재미있어 한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북유럽 독자들과 한국 독자들은 다르지 않냐고? 지역주간지인 <남해신문>과 <남해시대>, <옥천신문>의 성공비결이 이런 동네밀착보도라는 점을 보면 한국 독자들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유명 정치인이나 엘리트층에 대한 뉴스는 TV나 인터넷에도 널려 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는 오직 지역신문에서만 볼 수 있다. 서울일간지는 죽어도 지역신문은 살아남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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