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휴직을 하고 지난 3일 돌아왔습니다. 휴직 중에는 작정을 하고 제가 일하는 공장에는 아예 발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달 남짓만에 돌아와 보니 제 책상 옆에 있는 이 녀석 난초가 꽃대를 밀어올린 끝에 꽃을 터뜨려 놓았습니다. 여기 이 난초에 대해서는, 사연을 2009년 11월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습지요.
관련 글 : 죽은 뿌리와 산 뿌리가 한데 얽힌 난초
(http://2kim.idomin.com/1279)
저는 무심하게도 새로 출근한 첫날에는 난초가 꽃을 피웠는지 몰랐습니다. 성큼 집어들고 수돗가에 가서 물을 한 차례 줬는데도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튿날 알아차렸습니다.
알아차리고는, 꽃에다 코를 대고 냄새를 빨아들였습니다. 짙은 향내가 듬뿍 묻어나더군요. 아, 정말로 좋았습니다. 가슴 깊숙한 데까지 향기가 스며들었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에, 후배한테 부탁은 하고 갔지만, 누가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고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문득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공자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대목입니다. 배경이 좀 '거시기'하기는 합니다. 하하.
"배우고 때 맞춰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이 가운데서도 마지막 문장,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주인이 자리에 없는 동안 꽃을 피우는 바람에 이 난초는 누구에게서도 알아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난초는 꽃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를 거두지 않았고 남이 알아주든 말든 제 자리에 그윽하게 있으면서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발현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난초를 매화 대나무 국화와 아울러 사군자라 하는 까닭을 오늘 제가 나름대로 알게 됐습니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런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아름다움이, 난초의 실체였습니다.
이런 마음이면, 공자가 나이 일흔이 돼서야 이르렀다는 그런 경지-'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아무 거치적거림이 없었어라(상스럽게 말하자면 '꼴리는 대로 하고 돌아다녀도 아무것도 어긋나지 않았어라') 從心所慾不踰矩' 하고도 그다지 멀지 않다는 생각까지 더불어 해 봤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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