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고개만 조금 들어도 눈맛이 좋아진다

김훤주 2010. 1. 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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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거나 하는 일이 참 드뭅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렇게 됐습니다. 머리를 누가 짓누르지도 않는데, 제 풀에 겨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사실은 고개를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키보다 위에 있는 물건 따위에 눈길을 두는 경우가 적어졌습니다. 눈길을 자기 키와 같거나 낮은 데에 두다 보니 맨날 마주하는 것이라고는 다 똑같습니다. 사람 얼굴, 담장, 건물 아랫도리, 가로수, 가로등…….

그러나 어쩌다 고개를 들면 새로운 사물이 보입니다. 한낮에 고개를 들면 쨍하고 깨질듯이 팽팽한 맑은 하늘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런저런 모양을 갖춘 구름 떼가 뭉글뭉글 보이기도 합니다. 밤중에는, 달이나 별이 즐겁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연물이 아니더라도, 고개를 들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더 있다는 사실을 지난 11월에 알았습니다. 서울에 갈 일이 있었는데,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거렸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까 눈맛이 엄청나게 좋아지더군요.

광화문 앞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외벽과 서울시청 리모델링 공사 가림막에서 그런 눈맛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땅바닥에다 눈길을 꽂아뒀다면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하루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외벽입니다. 여기에는 일제 침략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안중근 의사의 초상과 손바닥이 내걸려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걸려 있구나 하고 지나갔을 텐데, 빤히 쳐다보니 뭔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그냥 단순하게 선이나 색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슨 설치 미술처럼 조그만 다른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 설명을 봤더니 홍보를 위해 특별히 만든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 손바닥은, 나라 안팎을 돌며 우리나라 사람(1만6000명이라던가?) 손바닥 도장을 찍어서 형상화했고요, 안중근 의사 초상은 마찬가지 우리나라 6000명 남짓 사람 얼굴을 합성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선수나 유인촌 선수 언론관련법 처리하는 것 보면 상종 못할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까지 못하도록 가로막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제가 전체주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이런 작품에서 그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기서 받은 느낌이 산뜻하고 좋았습니다. 고개를 들지 않았으면 누리지 못했을 눈맛입니다.


이것은 서울시청 리모델링 공사 가림막을 밑에서 바짝 붙여 찍은 사진입니다. 멀리서 볼 때 하늘하늘 아른거리는 것이 빛을 톡톡 되쏘고 있어 무엇인가 싶어 가 봤더니 이랬습니다. 이것도 하늘을 향해 올려다보니 느낌이 색달랐습니다. 

이날 이 색다른 경험을 한 뒤로, 저는 고개를 높이 들고 사는 보람이 이런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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