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6일 저녁 경남 마산시 양덕동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서익진 경남대 교수 초청 강연 '마산, 새로운 길을 찾다'가 있었습니다.
이날 저는 늦게 참여한 데다 무엇이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졸기까지 해서 제대로 내용을 챙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정신으로 들은 부분만 해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늦었지만 몇 자 적어 올립니다.
제 일터가 있는 마산이 제대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는 데 더해,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하는 서익진 교수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던 까닭도 있습니다.
서 교수는 자기가 쓴 책 <마산 길을 찾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현재의 창원 중심부까지 편입시켰던 마산은 명실상부 전국 7대 도시의 명성을 얻었다. …… 마산은 1980년대 말까지 국가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가장 급속히 성장했던 지방 중소도시들 중의 선두주자였다."
"일제 때부터 번창해왔던 양조업과 주류업이 지역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가 1960년대 시작된 공업화를 계기로 마산은 아시아 최대의 단일 공장이란 명성을 얻었던 한일합섬을 위시해 경남모직, 한국철강 등 유수 토착 대기업들이 뿌리를 내렸고, 1970년대 초부터는 개도국의 외자특구 성공사례로서 지금도 많은 개도국들이 벤치마킹 하러 즉 한 수 배우러 오는 마산자유무역지역과 더불어 급속하게 성장했다."
서익진 교수 이날 강연 요지는 마산은 문화도시로 새로 태어나야 하고 과거 영광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자연 경관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문화도시로 새로 태어나는 보기로 꼽은 것이 섬유박물관이었습니다. 한일합섬이 시대 흐름에 따라 문을 닫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한 모퉁이에 섬유박물관이라도 지었으면 한결 나았으리라는 얘기였습지요.
"지을 땅이 어디 있느냐고?" "왜 없어요?" 서익진 교수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너머 있는 한일합섬은 한 때 한국 산업 발전을 선도하면서 단일 공장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답니다. 이것이 문을 닫으면서 어떻게 된 셈인지 땅이 통째로 영리업체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공장용지에서 주거용지로 용도 변경이 되면서 한일합섬은 앉은 자리에서 어마어마한 이익을 남기게 됐어요. 땅값이 크게 차이가 나니까. 이렇게 공공기관의 결정에 따라 개인(자연인 또는 법인)이 이득을 얻게 되면 공공을 위해 그 일부를 내어놓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했어요."
"가까이에 사례가 있습니다. 마산 신포 매립지인데요. 여기 매립 공사를 현대에서 했습니다. 매립 공사를 마치고 아파트를 짓고 하면서 매립한 일부를 공공 용지로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일합섬터 저렇게 될 때 누구누구가 시정 책임자로 있었는지, 그이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짐작할 수 있지요."
서 교수는 그러면서 유럽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시아에 공업을 빼앗기고 유럽 공업 도시들이 텅텅 비어 버렸습니다. 다른 용도로 개발한다는 핑계로 없애지 않고 어떤 경우는 30년 동안을 그대로 놓아뒀다가 박물관·공연장 등으로 재생을 시켰습니다. 공업도시가 바로 문화도시로 다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라면 쪽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면서 이런 것은 왜 안 따라 하나 몰라."
이어서 공업으로 번성했던 과거를 하루빨리 떨쳐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히면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산 공무원들 보면 '대기업을 어떻게 유치할까'에 목을 맵니다. 그런데 떠나가는 공장을 어떻게 잡습니까. 조건이 안 돼서 떠나는 건데……. 마산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땅이 없어요. 그러니까 대기업 유치에 목을 매다는 이상 매립이 불가피합니다. 바다와 만나 움푹움푹 들어간 데마다 매립해 주욱 바르게 하는 수밖에는요."
그러나 매립은 절대 살 길이 못된다는 얘기를 서 교수는 했습니다. 오히려 자연 경관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 교수의 책 <마산 길을 찾다>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천주교 마산교구 가톨릭교육원이 난포만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만이 매립되어 공단이나 조선소가 들어선다면 가톨릭교육원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한려수도 파노라마는 어떻게 될까? …… 마창대교, 진해만, 거가대교, 칠천도, 진동만 등 동서사방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날 강연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양에서는 도시에서 전망 좋은 데는 절대 건물을 짓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뷰 포인트(view point)를 곳곳에 확보하는 겁니다. 이게 밥먹여 주고 일자리 늘린다는 걸 그이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산은 추산공원에 가 서도 아이파크 스카이라인에 막혀 바다가 제대로 안 보입니다."
이처럼 마산에 대규모 공장 용지로 쓸만한 땅이 없다는 사정에 더해 시대가 바뀌어 상공업으로는 마산이 살 수 없다는 점을 서 교수는 부림시장 상권이 죽은 까닭을 들어 덧붙여 설명을 했습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부림시장이 경남 대표 도매 상권이었습니다. 동대문에서 만든 물건들 부산 도매상인들이 가져오고 마산 부림시장 상인들은 부산 가서 물건 떼어 오고 그러면 서부경남 소매 상인들이 다시 마산 부림시장에 와서 물건 사서 가져가 팔고……. 그 때는 이게 합리적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중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이문을 남겨도 서울까지 가서 거래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비용보다는 적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통은 물론 통신까지 엄청나게 발전해 그런 것이 성립되지가 않지요. 그러니까 부림시장은 도매상권으로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는 되살아날 수 없습니다."
마산·창원·진해의 통합에 대해서도 말을 걸쳤습니다. 참여한 사람 가운데 묻는 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의 후퇴이고 통합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은 것은 맞지만 통합에 찬성한다고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한편으로 다양성과 연대에 있고 그 바탕은 공동선인데, 도시가 셋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연담이 안 돼요. 다른 나라에서는 공단(公團)이 생겨서 자치단체가 열 개 스무 개가 되더라도 쓰레기라든지 교통 문제는 공동으로 처리가 되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안 되요. 현실적으로……. 무조건 통합을 해야 연담이 이뤄진다."
"통합이 되면 마산이 진해·창원과 견줘 비교우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따져 그것을 살리는 쪽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짐작건대 문화·역사·자연에 마산의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특성을 잘 살린 정책을 추진하고 또 연담까지 되면 오히려 마산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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