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봉사단체 잔치에 '망해야 한다'는 방명록

김훤주 2010. 1. 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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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승용차를 탈 줄 모르는 아이

제게 자가용 자동차가 생긴 때가 1995년이었습니다. 엑셀 92년형이었는데 운전면허를 따기도 전에 선배가 자기 친구한테 받았다면서 활동하는 데 써라고 제게 안겼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중학교 다니는 한 친구를 만난 것은 그 뒤가 되겠습니다.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그리고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는데, 어찌어찌 알게 돼서 그 친구를 데리고 어디 놀러를 갔습니다.

아침에 그 친구 사는 창원 대방동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고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 서 있는 앞에 가서 차창을 내리고 "어이 ○○야, 타." 이랬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한참을 우물쭈물거렸습니다. 보다 못해 제가 내려서 "왜 그러냐?" 물었겠지요.

이 친구가 대답을 했습니다. "어떻게 타요?" 아, 이 친구는 승용차를 타는 방법-정확하게 말하자면 승용차 문을 여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시내버스만 줄창 타고 다녔을 따름이고 자가용 승용차는커녕 택시도 한 번 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친구한테 참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고는 그만이었습니다.

2. 짜장면을 먹을 줄 모르는 아이

친애하는 후배 설미정 선수는 달랐습니다.

설미정은 1999년부터 형편이 딱한 아이들과 어르신을 '오로지' '민간의 힘'으로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설미정의 이런 도움은 이른바 우리 사회의 복지 안전망이 받쳐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 일이 시작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1999년 어느 날 어찌어찌 해서 설미정 선수가 가난한 집 아이를 만났습니다. 배가 고프다 하기에 별 생각 없이 짜장면을 주문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짜장면이 배달이 돼 왔는데도 제대로 먹지를 못하더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배달돼 온 짜장면을 양념과 비빌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한 번도 비벼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설미정 선수는 아마 울었을 것입니다. 그 길로 설미정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설득하고 이웃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밑반찬을 장만해 주고 여건이 안 좋아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고 밥해 먹을 쌀이 없는 어르신들에게 쌀을 장만해 드리고 즐거움이 적은 어르신들에게 이런저런 즐거움을 드리기를 11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3. '꽃들에게 희망을'의 열 돌 생일 잔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모임이 '꽃들에게 희망을'입니다. '꽃들'은 관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습니다.(사파민원센터 2층에 조그만 공간을 사무실로 쓰고 있는데, 이것이 관의 지원이라면 지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꽃들'은 해당 지역 민간의 자발성에만 기댑니다. 한 주일에 한 번 밑반찬을 장만해 배달하는 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런저런 가게를 하는 집에서는 물품을 받습니다. 시간이 나는 사람들에게서 배달을 맡깁니다. 가게도 하지 않고 시간도 없는 이들은 한 달 5000원이나 1만원으로 거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쌀을 갖다 주는 이들도 무척 많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감사패를 받은 회원들.

잔치 풍경. 자유롭습니다.

이런 '꽃들에게 희망을'이 2009년 12월 11일 창원 상남동 삼원회관에서 '열 번째 생일 잔치'를 크게 열었습니다. 이 잔치 또한 구성원들의 자발성에만 기대었습니다.

떡을 하고 밥을 내고 갖은 음식을 만들고 행사장 안팎을 이리저리 장식하고 한 데 더해 열 번째 생일 기념 동영상까지 만들어 틀었지만 실비 수준에서만 돈이 들었습니다. '꽃들' 회원들이 저마다 품과 물건을 내놓았던 것이지요.

4. '꽃들'이 망해야 하는 까닭

저는 이 '생일 잔치'에 '찍새'로 동원이 됐습니다. 사진 찍을 사람이 없다면서 저더러 행사 사진을 좀 찍어달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날 행사에 꼼짝없이 참여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갖은 사진을 다 찍었습니다.

찍다 보니 방명록에도 눈길이 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담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지요. 축하한다는 평범한 인사가 대부분이었는데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꽃들은 망해야 합니다."

꽃들은 망해야 한다는 방명록. 실명으로 적었어요.

망해야 한다는 방명록을 남긴 진영규-상윤 부자.

그러나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방명록에 이 글을 남긴 사람의 평소 지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꽃들'은 알다시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적용을 받는 이들에게는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아주 어렵게 살지만, 제 구실 못하는 부모(또는 자녀)가 부양 책임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든지 하는 이런저런 사유로 나라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꽃들'은 이들을 도울 뿐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세상이 되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든 국민으로서 누려야 마땅한 '기초생활'을 보장받게 되면 '꽃들'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할 일이 없어지면 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단체가 하루라도 일찍, 서둘러, 망해 사라지기를 함께 빌었습니다.

한 번 찾아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 - http://www.hope4u.or.kr/

열 번째 생일 잔치 동영상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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