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교사 운동에서 환경운동·언론운동으로

김훤주 2010. 1. 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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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 계룡초등학교 변영호 선생이 있다면 사천에는 곤양중학교 윤병렬 선생이 있습니다. 변영호는 거제 민물에 사는 물고기랑 잠자리랑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연구 조사로 엄청난 성과를 올렸습지요.

'찾아가는 환경교육'이 싫다는 선생님
이번에는 잠자리로 전문가 뺨친 변영호

둘 다 지역 생태를 지키는 구실을 단단히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지만, 활동하는 내용이나 형식에서는 당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변영호가 생태 조사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는 편이라면 윤병렬은 그보다는 사람과 활동 분야를 널리 아우르는 편이라는 점이 다르답니다.

-고향이 사천이신지요?

△곤양 출신입니다. 지금은 사천시 곤양면이지만, 옛날에는 사천과 다른 별도 행정 구역인 곤양군이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데 이런저런 인간 관계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어 좋습니다. 학교도 곤양중학교나 사천중학교가 아닌, 조금 벗어나 있는 축동중학교를 나왔는데 이 또한 자유로운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데는 이런 인간 관계가 아주 중요합니다.

-교직 생활은 언제 시작했는지요?

알고 보니 65년생이셨습니다.

△91년 거제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사회·환경·도덕 교사 자격증이 있다. 전교조 활동 때문에 교장한테 밉보여 곧바로 울산과 통영으로 쫓겨났다가 1999년 사천으로 들어왔습니다. 11년째입니다. 규정상 이태 뒤에 사천 밖으로 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환경운동은 언제부터일까요?

△99년 사천환경운동연합이 창립됐습니다. 99년 전교조운동에 대해 회의 같은 것 하고 있었는데요. 전교조 사천지회 연대사업부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종명 사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한테 넘어가 어찌하다가 환경련 환경 교육 분과를 맡게 됐습니다.

시민 생태 조사·교육이라든지, 탐조, 학교 연계 프로그램 등을 했습니다. 학교 연계 프로그램에서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결국 사람이 문젠데요, 그것을 뛰어넘는 조직이 참 잘 안되더라고요.)

-학교에서는 어떤 생태 프로그램을 했는지요?

△환경운동연합이나 생명의 숲에서 강사를 모시는 생태 소풍을 보기로 들 수 있겠습니다. 나무 잡고 애벌레가 돼서 버티기, 누워서 하늘 보기, 우두커니 바람 소리 듣기, 박쥐가 돼서 나방으로 변신한 친구 잡기 등등. 할 때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지만 나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습지체험반이나 환경반 같은 동아리를 만들어 서포 갯벌이나 사천만 일대, 곤양천 일대 조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는 토요일 전일제 등을 활용해 '광포만 주변 습지를 찾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광포만 매립이 현안이 된 적이 있습니다.
 
△생태 프로그램을 한 학생들이 집에서 이랬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광포만 갯벌은 다 죽어서 쓸모가 없어, 이제 매립해야 돼" 하면 아이들이 "아닌데요. 살아 있던데요. 가 봐서 알아요"라 대답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여주고 몸소 느끼게 하는 것이 최곱니다.

어쨌든 지난해와 올해는 광포만 일대를 조사하고 사진찍고 교육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또 알릴 일이 있으면 널리 알려 눈길을 끌게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일단 매립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데 내년 6월 지방 선거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역 환경을 지키는 활동을 통해 얻는 보람은?

△글쎄, 술 친구가 많이 늘어났다?(웃음) 고향을 지키는, 좋은 사천을 물려준다는, 자식들한테 부끄럽지 않다는….

또, 지역 역사나 문화를 좀더 깊이 알고 느끼는 보람……. 보기로 매향비를 들 수 있습니다. 사천에는 하나뿐인 보물인데(국보는 없습니다.), 고려 우왕 당시 향을 갯벌에 묻었다는 비석인데,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나는 침향을 묻었다면 지금은 이것이 금보다도 더 값진 물건입니다. 한 번 찾아보자는 생각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문을 보면 4100명이 계를 모았다고 돼 있는데, 이 규모라면 상당한 권력자가 중심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요? 사천 출신인 이순 장군이 그런 권력자일 수 있습니다. 당시 최영 장군 등에 이어 서열 3위였는데 갑자기 중앙 정치에서 사라진답니다. 낙향을 했다고 가설을 세우면, 이순 장군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아 보자는 꿈을 꿨을 수 있겠지요.

당시 매향 작업을 하고 매향비를 세우는 일을 한 데가 어딜지 짐작해 볼 수도 있는데, 문달암(文達庵) 절터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까지 있었는데 사방 10리 크기였다고 합니다. 이런 데를 발굴하면 좋겠다 싶습니다만.

-2008년 <뉴스 사천(news4000.com)>이라는 인터넷 신문을 만드는 데 적극 힘을 쏟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교조 활동과 환경운동을 제각각 10년씩 했습니다. 활동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성 언론의 행태를 보면서 새 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술김에(웃음) 창간 준비 자금 1000만원을 냈고요, 전체 후원독자 250명 가운데 100명 정도를 모았습니다. 대표이사는 '시민의 권력'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시민을 소외시키는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지역에 먼저 집중하고, 거대 담론이 아닌 작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느티나무' 필명으로 시민기자도 하고 있습니다. '산·들·바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코너 연재를 맡았습니다. '실화 : 제비가 물고 온 금반지'라든지 '뉴스 사천 신문사에 들어온 뱀 이야기' 등등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사로 쓰는 겁니다.

(해설 :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방송을 보면, 지역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지역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어쩌다 다뤄지는 것은, 서울 사람들 보기에 이상하고 재미있고 엽기스러운 것들뿐입니다. 그러니까 서울 신문·방송에서 지역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러니까 또 이야기가 있고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에서는 이를 알리는 매체가 제 구실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천도 비슷하지요. 윤명렬은 그런 기자를 두고 '웰빙기자'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우나 하고 싶으면 사우나 하면 되고, 술마시고 싶으면 술마시면 되고, 기사 써야 하면 적당하게 남의것 베끼거나 보도자료 받아 쓰면 되고. 이를 깨는 노릇을 하는 매체를 윤병렬은 만든 것입니다.)

-활동 내용을 보고서로 내기도 했는지?

△세 차례 냈습니다. 학생 교재용 보고서도 냈고, 500부를 만들었는데 교장이 처음에는 허락해 놓고는 나중에 막는 바람에 배포가 중단됐습니다. 6년 전에는 사천만 조류 보고서를 냈습니다. 3년 전에는 교보생명환경문화재단 지원으로 '광포만 생태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종포갯벌. 아름답습니다.


크리스마스인 2009년 12월 25일 윤병렬 교사를 만나 사천 일대를 돌며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노례마을 저수지 등을 다니면서 최근 1700 마리가량 한꺼번에 찾은 천연기념물 원앙을 찾아보다가 마지막에는 사천만 갯벌의 일부인 용현면 종포 갯벌에 들렀습니다.

종포 갯벌에서 윤 교사는 보이는 새들의 이름을 주워넘겼습니다. "청둥오리 가창오리 흰물떼새 민물도요 흰뺨검둥오리 개구리매 바다직박구리 청다리도요 청머리오리 고방오리 알락할미새……." 여기가 새들이 많이 옵니다. 먹을거리가 많아서 그렇지요. 먹을거리가 많다는 얘기는 생태계가 살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리 말하다가 조그맣고 하얀 갈매기가 몇 마리 날아오자 갑자기 말소리가 가라앉았습니다.

"검은머리갈매깁니다. 멸종위기종이지요. 성격이 '까칠'하기 때문이랍니다. 성질대로 먹이를 먹지, 다른 갈매기처럼 주는 먹이는 먹지 않아요. 람사르협약 습지 등록 기준 가운데 이런 게 있어요. '멸종위기종의 전 세계 개체 수 1% 이상이 살면 람사르 습지로 등록해야 한다.' 전 세계 검은머리갈매기가 1만 마리 남짓입니다. 사천만에 150마리가 삽니다. 1.5%입니. 사천만이 그만큼 생태가 좋아요."

스코프에 얼굴 묻은 이가 오인근.


종포갯벌 가까운 데 집이 있는 오인근 사천환경운동연합 의장이 가세했습니다. 오인근 의장과 윤병렬 선생이 번갈아가며 말 잇기를 합니다.

"물고기 산란처이면서 어린 고기 서식지 노릇도 하는 잘피가 사천만에 자랍니다. 보기 드문 청게나 고급 어종인 혹돔 참가오리 감성돔 농어 참숭어 이런 게 많습니다.

(저를 돌아보면서) 낚시 할 줄 알아요? (전혀 못한다고 하니까) 기자님(으~~윽)도 여기서는 낚을 수 있어요. 낚시바늘 물려서 대나무 막대기만 넣어도 낚입니다. 초보 낚시꾼이 별 장비 없이도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데가 여깁니다. 사천만에서 나고 자란 물고기들이 남해안 일대로 퍼져 나갑니다. 사천만이 사라지면 남해안 물고기도 확 줄어듭니다."

"통영·거제에서 굴 양식을 하는데 그 종패도 여기 사천만에서 붙여 갖고 간답니다. 저기 대달아 놓았잖아요. 저기 다닥다닥 붙여서 통영·거제 가서 양식하는 겁니다. 인공 종패가 아니고 자연에서 난 그대로를 말입니다. 물이 깨끗하고, 밀물 썰물이 알맞아 산소가 충분하고, 민물이 들어와 염도(鹽度)도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쳐도 엄청납니다. 이런 데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매립할 생각을 하나 모르겠어요." 

오인근 의장은 2009년까지만 의장직을 수행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음 의장은 윤병렬이 맡습니다. 교사운동을 넘어 환경운동과 언론운동을 지역에서 온몸으로 밀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보기 드뭅니다.

아마 '자유인'이라서 이럴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이날 하루 인터뷰하는 내내 이랬습니다. 즐기며 하는 운동, 웃으며 하는 운동,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자리를 윤병렬은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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