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정치인 간담회, 사회자의 역할은 뭘까?

기록하는 사람 2009. 12. 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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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파비 님이 오늘 아침 '강기갑 대표 블로거 간담회 질문통제에 유감'이라는 글을 올리셨네요. 저도 어제 있었던 간담회 내용을 정리해 기사로 출고해야 할 시간이지만, 이 글에 대한 답변부터 먼저 올려야 겠다는 생각에 급히 씁니다.

어차피 블로그는 '주관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해온 저로서는 자기가 보고 경험한 것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쓴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은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 '객관 저널리즘'인 신문기사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재미도 있겠죠.

하지만 그날 간담회에서 사회를 봤던 저는 이 글로 인해 졸지에 블로거의 '질문통제'나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군요. 그래도 뭐 거기에 대해 '반박'까지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사자는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다만 간담회 상황을 어느정도는 '객관적'으로 알려드리는 게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분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사회자의 역할은 모든 참석자에게 골고루 질문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통제'를 해주는 것입니다. 준비된 질문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할 수 있도록 하려면 한 사람이 많은 시간을 쓰는 데 대한 제지가 필요합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블로그 간담회.


간담회에는 모두 7명의 블로거가 질문자로 참석했습니다. 한 명이 하나씩만 해도 7개의 질문입니다. 게다가 직접 참석하진 못했지만 질문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정해진 두 시간 안에 준비된 질문만 해도 빠듯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준비된 질문 중 2개는 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선 한 명이 하나씩의 질문을 먼저 한 뒤, 시간이 남으면 추가 질문 기회를 드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비 님의 첫 질문 때까진 그게 잘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파비 님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연이어 두 번째 질문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것까지 제지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두 번째 질문과 답변이 꼬리를 물고 논쟁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사회자의 권리로 다른 질문자를 위해 제지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파비 님은 두 개의 질문을 했지만, 구르다 님과 천부인권, 이윤기, 실비단안개 님 등은 하나의 질문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블로거는 아니지만 참석했던 정성인 기자도 아예 질문을 못했죠. 그런 상황을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기까진 '객관적인 상황'을 알려드린 것입니다만, 파비 님의 질문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생각'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심회 사건의 경우, 파비 님에겐 진보정당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한 다른 분들에겐 아예 알지도 못할뿐더라 별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진보정당 안에서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저도 그 사건에 대해선 파비 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만, 블로거 간담회 자리에서 일심회 사건에 대한 강기갑 대표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마치 '당신이 내가 싫어하는 주사파들과 같은편인지 아닌지 이 자리에서 확인하겠다'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자칫 '사상검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90년대 초반의 어느 시기에 마산의 한 운동권 단체가 경상대 경제학과 장상환 교수 초청강연을 열었습니다. 그 운동권 단체는 장 교수가 쌀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을 강력히 성토해줄 것을 바랐지만, 강연 내용은 주로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주최측 간부가 장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통일이 우선입니까, 민중생존권이 우선입니까?"

그 말을 들은 장 교수는 굳은 표정으로 약 10초간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더군요. 사람들의 눈이 장 교수의 입으로 쏠렸습니다. 이윽고 장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통일도 우선이 아니고, 민중생존권도 우선이 아니다. 다만 자네처럼 그렇게 물어보는 놈들이 사라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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