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드라마로 본 시대의 감수성과 성감대

김훤주 2009. 11. 3. 15:34
반응형

<찬란한 유혹> <솔약국집 아들들> <선덕여왕>.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사람들 관심을 끌어당기는 텔레비전 드라마들입지요. 이들을 두고 끊임없이 이야기가 생산됩니다. 이야기가 생산되는 장소는 다양하답니다. 학교 사무실 공장 연구실 밥집 술자리…….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이처럼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이들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공통되는 무엇을 느낀다는 말씀입지요. "스타들에 대한 가십이나 스캔들이 그러하듯, 드라마 역시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이 공통의 화제를 제공한다. 마치 마침 그것이 없다면 할 얘기가 없다는 듯이. 드라마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연예가 뒷담화로."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 드라마가 실제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빠져 듭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세계와 전혀 무관한 허구라는 저들의 세계를 통해서만 공감하고 공유하고 분노하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할 정도로 삶이라는 것이 파편화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획일화되어 더 이상 알고 싶은 것도 없는 때문일까."

분석은 여기서 더 나갑니다. "모든 것이 속도와 경쟁으로 이뤄지는 이 참담한 시대의 문제는 인간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도 발생하는 분열과 분리이다. 이성과 감정의 분리, 사고와 감각의 분리 등, 우리 몸 안에서조차 소통·통합되지 못하는 분리와 분열의 징후들." 이런 분열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인생보다는)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드라마를 '주된' 이야깃거리로 삼지 않느냐는 되물음인 셈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는 "체제와 제도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가장 커다란 대중예술입니다. 지은이 신주진은 이렇게 봅니다. 1990년대 이래 이른바 한류 바람이 불고 방송매체와 방송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드라마에 대한 상업적 기대와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드라마를 작품으로 여기면서 분석과 비평을 하는 경향도 세어지고 있습니다.

지은이의 관심은 "드라마 안에서 시대적 변화와 대중적 심리와 욕구, 감정적 구조와 형식 등을 찾는 것"입니다. 18세기 판소리를 들여다보면 당대 현실이 보이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물음은 거창하지만 답은 빤합니다. 텔레비전은 상업방송의 메카니즘 안에 놓여 있습니다. 단지 놓여 있는 정도가 아니라, 상업주의 논리를 앞장서 실현하는 선발대 노릇까지 자임합니다.

그렇지만 드라마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와 인생도 다양한 각도로 들어가 있습니다. 드라마가 놓여 있는 상업방송이라는 틀은 운명이지요. 여기에서 작가가 자기 철학(인생관·가치관·세계관·우주관)을 구현하는 것도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은이가 하려는 작업은 이 두 운명의 마주침과 어긋남을 비롯한, 행로에 대한 파악이랄 수 있겠지요.

이런 정도 말하면 대부분은 알아채시겠지만, 이런 작업은, 대중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개입과 간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드라마가 잘 만들어진 좋은 작품인가? 어떤 드라마가 어떻게 해서 대중의 지지를 얻었는가? 그리고 그런 대중적 지지의 바탕은 무엇인가? 어떤 드라마의 대중적 성공이라는 현상에는 동시대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이것은 우리 사회에 전부를 내맡기고 살아가는 한 시대의 감수성과 나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 쾌감과 통증을 가장 절절하게 느끼는지 자기자신의 성감대에 대한 성실한 점검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드는 자본이 엄청난데도 내용이 알차지 못하거나 몸값으로 대부분 쓰여 버리는 허망함과, 아니면 중·장년층 입맛에 맞는 이른바 '안전빵'으로 채워지는 어처구니없음을 걷어내는 작업이기도 하겠지요.

"드라마라고 하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장르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애착이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담겨 있는 듯, 한계와 제약으로 얼룩진 그런 모순의 총체로서의 드라마 말이다. 그것은 잘났건 못났건 내 안에 있는 모순, 내가 지닌 증상과 징후의 연장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시대의 증상이자 징후이다."

지은이는 숱한 드라마 작가 가운데 스물아홉을 골라 네 갈래로 나눴습니다. 이야기(스토리)에 강한 작가, 캐릭터 중심으로 드라마를 쓰는 작가, 독특한 감수성으로 마니아 드라마를 생산하는 작가, 트렌드를 살려내는 장기가 있는 작가. 빠진 작가들 가운데는, 여기 들지 못해 섭섭해 할 수도 있겠지만 섭섭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뚜렷하고 일관된 작품 경향과 작가 세계를 지닌" 작가들이 아니라, "뚜렷하고 일관된 작품 경향과 작가 세계를 지닌다고 판단되는 작가들"이라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글을 쓰는 이들 가운데서도 이처럼 객관 사실과 그에 대한 인식을 뼈와 살처럼 제대로 발라낼 줄 아는 이를 저는 본 적이 없는데, 이 조그만 대목에서 저는 지은이를 믿기로 작정해 버렸답니다.

'이야기' : 김수현 vs 김정수-가부장 체제의 안과 밖, 송지나 vs 최완규-기획드라마의 시대를 열다, 이경희 vs 김규완-슬퍼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박정란 vs 박진숙-연속극의 '여성수난극복기'.

'캐릭터' : 김운경 vs 문영남-두 개의 공동체, 그리고 해체, 이선미·김기호 vs 김도우-리얼리티와 판타지의 행복한 만남, 홍자매(홍정은·홍미란) vs 홍자매(홍진아·홍자람)-성장의 유희-구조와 내면.

'트렌드' : 임성한 vs 서영명-욕망과 계략의 이중주, 주찬옥 vs 정유경-드라마에서 문학성은 가능한가?, 김영현 vs 윤선주-현대사극의 두 갈래 길, 김인영 vs 김은숙-트렌드의 세 요소-여자·일·사랑.

'마니아' : 노희경 vs 인정옥-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김지우 vs 박연선-장르 드라마의 실험과 가능성.

드라마를 좀더 재미있게, 평평하게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게 보고 싶은 이들,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면 되는지 알고 싶은 이들, 자기 성감대가 어디인지 궁금해 죽겠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싶습니다. 물론, 자기 성감대를 갖고 남의 성감대까지 드라마로 긁어주고 싶은 청년 방송작가 지망생에게도 보탬이 되겠지요.

도서출판 밈. 447쪽. 1만8000원.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