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4대강 살리기'가 '성역'이라는 KBS 기자

김훤주 2009. 10. 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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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직전, KBS 본부에서 일하는 기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론에서도 '4대강 살리기'는 성역이라서요." 저는 한 순간 좀 무슨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경남도민일보>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를 두고 완전 엉터리라고 전혀 거리낌 없이 비판하거든요.

그런데 좀 생각해 보니 아마 그 기자는 자기 공장 얘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몸 담고 있는 한국 방송 KBS를 두고 '언론'이라 한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KBS 뉴스에서도 다루기가 힘들었습니다"고 했습니다. 다른 신문·방송은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졌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각을 세워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4대강 살리기를 바로 비판하지는 못하고, 이를테면 '아름다운 강길을 보전해야 한다', '보를 쌓으면 이 아름다운 강길이 사라진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합니다."

KBS 사장 이병순.

"그렇지만 그래도 뉴스에서 몇 차례 다루기는 했습니다. 각을 세게 세우지는 못했지만요. 정권이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생명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사장 바뀌고 나니까 많이 힘듭니다."

"물론 나름대로 하고는 있습니다. 사람은 그대로이거든요. 위에서는 통제를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기자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고 하면서 '위에서 하는 통제'와 함께, '그대로인 사람이 하려는 나름'을 주워섬겼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나서, KBS에서 정연주 사장 몰아내고 이병순 사장 심고 나서 KBS가 보도 태도나 관점이 많이 바뀐 줄을 진작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KBS 기자한테 속사정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야릇했습니다.

위에서 통제하는 데 대해 저항하고 비판하지 못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했습니다. 자기 공장 안에 세력 다툼으로만 그치는 문제라면 불쌍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지 않습니까. 이른바 4대강 살리기는 나라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존망과 바로 이어지는 아주 커다란 문제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마치 개인이나 KBS만의 문제로 좁혀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이는 그냥 "다양한 시각 차이가 있다"고 했고, 그것은 어느 시각이 옳고 어느 시각이 그른지를 제대로 따지지 않는 변명밖에 되지 않으니까 저는 좀 얄미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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