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교사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세대 차이

김훤주 2009. 10. 1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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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2년 국민학교 3학년 때 경험

학교 선생님들 폭력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세대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고는 조금 놀랐습니다. 제 경험을 떠올리고 저보다 열대여섯 아래 사람들의 기억을 듣고 제 딸의 경험을 보태니 그랬습니다. 감수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세대 차이도 있겠지만, 개인 차이 또한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1963년 생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크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1972년입니다. 자습을 시키고 있는 담임 선생님께, 나름대로 반장이라는 의무감에서 저는 조용하게 시켜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무 달라짐이 없기에 다시 가서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갑자기 화를 내시더니 "이런 건방진 자식이!" "니가 나한테 뭐라고?!" 하시면서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팼습니다. 마구 내리치는 주먹질과 발길질에 조그만 저는 어찌할 도리 없이 "잘못했습니다."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픽픽 쓰러지면서 오줌을 지렸고, 결국 매질은 얼굴이 피칠갑이 되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2.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의 기억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두 여성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한 사람은 국민학교 2학년 때 일을 얘기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 둘을 벌 주면서 마주 세운 다음 서로 뺨을 때리게 했습니다. 다음은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입니다. 처음 아이들이 살살 때리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면서 제대로 때리는 시범을 보였겠고 그 뒤로 아이들은 죽기살기로 서로 때렸겠지요.

다른 한 사람은 이런 일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입니다.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갖고 온 선물을 교탁 위에 다 모아 경쟁을 시키듯이 했다고 합니다. 누구는 무슨 선물 누구는 무슨 선물 이렇게 아이들 모두에게 일러줬답니다. 그러고는 선물을 가져 오지 못한 아이들은 남겨서 벌청소를 시켰다지요.

게다가 선생님이 싫은 심부름을 골라서 시키고 날마다 선생님의 젖은 수영복을 빨고 말리고 걷어오는 일까지 시키더라 했습니다. 선생님이 하도 이러니까, 이 사람 어머니가 생삼을 사서 먹을 수 있도록 갈아서 병에 담아 갖다 드렸답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께서 "이런 거 안 먹어요. 도로 가져 가세요." 이랬답니다. 하하.

3. 2004년 초등학교 4년이 본 교사 폭력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마지막 제 딸 이야기입니다. 올해 중3인 우리 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같은 반 아이를 때리는 장면을 봤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이미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치면서 "안 그치나!" "안 그치나!" 이랬답니다. 우는 아이를 때려서 그치도록 만드는 마술을 부린 것입니다.

4. 세대에 따라 차이나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

제가 말씀드리려는 바는 이런 선생님의 폭력이 아닙니다. 그런 폭력에 반응하는 아이들의 자세랄까 태도입니다. 저부터 말씀드리자면, 행여 믿지 않으시는 이도 없지는 않겠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은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저를 개 같이 폭행했던 선생님도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선생님이라면 무조건 존경을 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여성 둘은 선생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다운 선생님에 대해서는 존경을 했지만 선생님답지 않은 선생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저하고 크게 다르다고 여깁니다.

마지막 딸 얘기입니다. 때리는 선생님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했습니다. '어떻게 우는 사람을 때려서 그치게 할 수 있지?' 상식에 맞지 않게 때리는 선생님은 이상하고 싫은 대상일 뿐입니다. 딸에게 선생님은 이미 존경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교사 폭력을 보고 사라질 그런 존경심이 이미 없었던 것입니다.

5. 이런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영화 두사부일체 포스터.

저는 국민학교에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지금 30대 초반 사람들은 이런 말을 심각하게는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스승은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실제로 밟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떨어져 걷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딸은 이런 얘기를 전혀 듣지 않았거나 아니면 웃으며 들었을 것입니다.

이리 말하면, 전통 농경 사회에서 자본주의 산업 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겪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획일주의와 가부장제와 집단주의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획일주의와 가부장제와 집단주의의 힘에 맞서는 다른 힘이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70년대 초반은 박정희 군사독재 아래에 획일주의와 가부장제와 집단주의가 가장 굳건하던 시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는 군사독재가 완연히 무너지고 새로운 시기로 옮겨가던 때였습니다.

94년 생인 우리 딸은 2001~2006년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군사 독재는 완전 사라졌습니다. 부조리한 권위와 권력이 약할 때입니다. 말하자면, 획일주의와 가부장제와 집단주의에 맞서는 힘이 상대적으로 세었던 시대입니다. 이런 차이가, 교사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세대 차이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니 저는 한편으로 흐뭇합니다.

왜냐고요? 지난 시절 민주주의와 가치의 다양성과 인권을 내세우면서 획일주의와 가부장제와 집단주의에 맞서는 데 저도 작으나마 힘을 보탰기 때문입니다. 보탠 결과 우리 딸이 아버지랑 달리 초등학교 시절을 '쩔어' 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진전 등이, 교사 폭력 자체를 뿌리뽑아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처럼 교사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변화'는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도 저로서는 새삼스럽습니다. 물론 이명박을 보면, 우리가 한 번 더 잘못하면 아주 옛날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스미기도 합니다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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