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그 여자가 사창가로 돌아간 까닭

김훤주 2009. 10.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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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캄보디아의 버림받은 여자아이

아주 어려서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한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산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외할머니가 차례로 떠나갔습니다. 아이는 다섯 살 어름이었습니다. <다시 찾은 꽃목걸이> 얘기입니다.

"숲은 벌목되고 있었고 마을에 남은 오두막은 12개뿐이었다. 한 가족이 커다란 오두막 한 채에서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내 오두막은 없었다. 다른 가족이 없던 나는 혼자 그물 침대 위에서 자야 했다."

"키 작은 야만인처럼 살았다. 아무데서나 잠자고, 먹을거리가 있으면 바로 먹어치웠다. 내 보금자리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결국 아무 데도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고아는 그리 드물지 않다. 놀랍게도 아주 흔한 일이다."

언제 태어났는지도 잘 모릅니다. 1970년 아니면 1971년이리라 짐작할 뿐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이름도 없이 '야'나 '꼬마'라 일컬어졌습니다. 아홉 살 또는 열 살 때 이 아이를 처음 '소유'한 50대 할아버지는 '아야'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태인가 뒤에 초등학교에 어찌어찌 들어가면서 성(姓)이 맘(Mam)인 한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소말리(Somaly)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이 선생님은 나중에 양아버지로서 이 아이 하는 일을 훌륭하게 거듭니다.)

소말리는 '원시림에서 잃어버린 꽃목걸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맘 소말리는 소말리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모습에 꼭 맞는 이름처럼 느껴져서였습니다. 학교에서 이 아이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소유권자'는 건재했습니다. 소유권자는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가슴이 커지자 가슴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이를 부려먹기도 했고 돈을 벌어오게 하고 마구 때리면서 학대도 계속했습니다.

2. 10살남짓 나이에 강간당한 여자아이

소유권자는 밀린 빚을 대신해 아이를 중국인 아저씨에게 보내 강간을 당하게도 했습니다. "나는 아저씨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마치 아저씨가 다리 사이를 칼로 베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저씨는 줄무늬 사탕 몇 개를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다음에 소유권자는 군인에게 아이를 넘겼습니다. 아이는 열넷 즈음 군인은 20대 중반. 마지막 말은, "이 사람이 네 남편이다"였답니다. "남편이 화가 나면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 했다. 겁을 주려고 소총을 내게 쏘기도 했다. 남편의 총질에도 곧 익숙해졌다. 내가 죽은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강간할 때면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군인들 시체 처리를 많이 하는 병원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동료 뽀우이가 있었습니다. "같은 고아였고 자기를 때리는 삼촌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도 삼촌에게 강간당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남편에 대해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남편이 내 다리 사이를 아프게 한 것도 모든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병원에 있던 남자들은 우리를 괴롭혔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 폭력을 가했다. '당신은 아주 못 생겼으니 내가 같이 자 준 것만도 다행인 줄 알아.' 그에게 당한 강간도 그 말만큼 치욕적이지는 않았다. 쓰레기가 된 느낌이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자아이

소유권자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국경지대에 남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유권자인 할아버지는 프놈펜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는 소유권자에게 돈을 건넸습니다. 아이는 혼자 남았습니다. 열다섯 살 어름이었습니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었다. 전직 군인이고 다리가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목발을 짚고 다녔다. 목발로 날 때린 뒤 강간했고 그 뒤에는 경비원 두 명이 같은 짓을 했다."

"지하실로 날 데려갔다. 뱀과 전갈 같은 동물이 있었다. 완전히 깜깜한 작은 방인데 하수도 냄새가 났다. 날 묶어 놓고는 몸 위에 뱀을 풀었다." "그 뒤부터 난 손님을 받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4. 벗어났던 그 지옥으로 돌아간 성노예

소말리는 진짜 우연하게, 프랑스 구호단체의 도움 등으로 10년남짓만인 1993년 생지옥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소말리는 이 지옥 속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다시 찾은 꽃목걸이>는 소말리가 왜 그 지옥으로 돌아갔는지 까닭을 일러준답니다.

소말리가 구한 아이들. 퍼플레인 제공 사진.


"난 그 여자아이들을 알고 있었다. 그 애들은 바로 나였다. 나는 그 애들의 삶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아픈데도 그날 저녁부터 손님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강간을 당해야 하는 아이들을 밤마다 떠올렸다. 아이들이 갇혀 사는 지금 생활, 이제 나와는 거리가 먼 길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난 아이들이 어디 있을지 알고 있었다. 아이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방식도 알고 있었다. 말보다는 공존하는 느낌이 더 중요했다.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를 만나면 이해하는 눈길이 오가게 된다. 난 아이들과 공통점이 있었고 아이들은 나를 믿었다."

"내가 받은 벌도 혹독했지만 요즘 받는 벌은 훨씬 가혹하다. 전기 고문 한 번을 빼고는 대부분 매질 아니면 본인이 두려워하는 뱀 같은 것으로 벌을 받았다. 이제는 두개골에 못이 박히는 일도 눈에 띈다. 사슬에 묶여 전선으로 매를 맞는다. 여자아이 몇몇이 하수구에서 죽은 채 발견된 적도 있다. 쇠사슬에 묶인 채 불에 탄 여러 여자아이 시신도 발견됐다."

"10대 소녀 프로스는 왼쪽에서 보면 웃는 모습이 아주 예쁘다. 하지만 오른쪽에서 본 프로스는 눈이 없고 흉칙하다. 두 번째 중절수술이 끝났을 때 좀 쉬게 해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포주가 눈을 파낸 것이다. 포주는 아이를 내다 버렸다."

'원시림에서 잃어버린 꽃목걸이' 소말리는 잃어버린 꽃목걸이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탈출한 성노예 대부분은 상처를 다스리며 조용히 살지만. 소말리는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AFESIP(비참한 환경에 있는 여성들을 위한 활동을 뜻하는 프랑스어 머리글자) 단체를 세웠습니다.

5. 한 해 100만 명이 성노예로 팔려가는 별, 지구

마찬가지 소말리가 구한 아이. 좀 처연해 보입니다만.

그동안 4000명가량을 사창가에서 벗어나게 도왔지만 처음에는 아무 힘도 없고 포주들의 비웃음거리일 뿐이었습니다. 포주들은 살인 협박도 모자라 2006년 당시 열네 살이던 소말리의 딸을 납치해 강간하기까지 했습니다. 소말리의 활동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지요.

대부분은 상황이 이쯤 되면 도망쳤겠지만, 소말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겪었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덫이 거기 있는 줄 아는데, 어떻게 혼자 도망칠 수 있어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는 한 해에 100만 명정도 여성이 성노예로 팔려간답니다. 그이들은 소말리가 겪었던 그런 지옥이나 그보다 더한 지옥을 겪습니다. 소말리가 '잃어버린 꽃목걸이'를 되찾으러 손잡고 나서자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같은 지구에 살면서, 우리는 이 손을 맞잡지 않고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책 말미에 연락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AFESIP, #23, Street 315, Sangkhat Beoung Kak 1, Khan Tuol Kork, Phnom Penh, Kingdom of Cambodia 입니다.

전화·팩스는 855-23-884-123 이고요, 전자 우편은 Somaly.mam@afesip.org 입니다. 이에 앞서 책부터 한 권 사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소말리 경험의 힘이겠다 싶은데, 아주 쉽게 잘 읽힙니다. 퍼플레인. 280쪽. 1만2000원.

김훤주

다시 찾은 꽃목걸이 - 10점
소말리 맘 지음, 정아름 옮김/퍼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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