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손지갑에 박혔을 안타까운 손톱 자국

김훤주 2009. 10. 12. 11:03
반응형

요즘 들어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겉옷 걸치지 않고 나가면 오소소 소름이 돋습니다. 오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날씨가 달라지다 보니, 여름에 예사롭던 풍경도 이제는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했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풍경입니다.

이 사람은 어제 아침 여덟 시 즈음 일 나가는 길에 중국집 철가방을 실은 오토바이가 앞에 지나가더라 했습니다.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하얀 철가방이 담겨 있고, 운전하는 아저씨 뒷자리에 모자 눌러쓰고 목도리 두른 아줌마가 타고 있더라 했습니다.

쌀쌀한 아침에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요? 아저씨는 어디 중국집이나 분식집에서 음식 배달을 하고, 아줌마는 아무래도 가내 공업이나 마찌꼬바 같은 작업장으로 일을 나갈 것입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요. 바람 새롭게 차가운 서슬에 퍼렇게 질려나갈 입술…….

저랑 만난 그 사람은, 자꾸 궁금증이 이어지더라 했습니다. 전에는 뭐 했을까, 결혼한 사이 같기는 한데 아이는 있을까 없을까, 있으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요즘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할머니랑 손주가 같이 사는 조손(祖孫) 가정이 많다던데…….

같은 날 저녁에는 또 해안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봤다네요. 어둑어둑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토바이 한 대에 셋이 탄 것은 분명했답니다. 앞에 남자 어른이 운전하고 가운데 어린아이를 끼워 안은 다음, 뒤에서 여자 어른이 앞엣사람 허리를 꽉 붙들었더라 했습니다.

여름이면 예사로 보였을 장면입니다. 가을이 되니까 여러 사람들이 감상적(感傷的)이 되나 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여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장면이나 얘기도 가을이 되니 무거워집니다. 마음 속 추위가 날씨보다 먼저 들어왔나 봅니다.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창원 반송시장에는 족발을 아주 맛나게 해서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가게에 들러 아내랑 아들이랑 집안 식구끼리 먹으려고 하나 샀답니다. 얼마냐 물어보고 가장 비싼 1만5000원 짜리를 주문했다지요.

주문하고 보니 자기 앞에 아줌마 한 명이 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데 다녀와도 시간이 되겠다 싶어서 조금 위쪽 과일 파는 데에 가서 토마토랑 사과를 5000원 어치씩 사서 돌아왔습니다.

와 있는데 칼질하는 아줌마가 작은 하나를 다 썰어 포장하더니 기다리는 아줌마한테 주지 않고 진열하듯 앞에 놓더랍니다. 그러고는 다시 칼질을 해서 아줌마한테 줬습니다. 제가 만난 이 사람은 궁금했지요. 왜 앞에 썬 족발을 아줌마한테 주지 않았는지가요.

주지 않고 진열하듯 놓아 둔 족발을 가리키며 물었답니다.

"이거는 전시용인 모양이죠?" "아니오." "그러면 왜 안 주고 그래요?" "아줌마가 6000원 짜리 시켰다가 1만원 짜리로 바꿔서 그래 됐어요."

제가 만난 그 사람은 마음이 뜨끔했답니다.

'내가 1만5000원 짜리 사는 것 보고 아무래도 먼저 주문한 6000원 짜리가 식구들 먹기에 적겠다는 생각을 했겠다' 싶었답니다. 그게 무슨 대수냐, 자식 남편한테 4000원 어치 더 갔으면 그것으로 됐지, 하고 제가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랬습니다.

"그래 대수 아니지. 망설이는 시간도 우리 생각과 달리 짧았을 수도 있고. 4000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 큰 차이도 없겠지. 그렇지만 속셈을 하는 동안 비싸지도 않은 손지갑에 손톱 자국이 여럿 냈을 생각을 하니 그냥 마음이 그렇네. 아니면 1만5000원 짜리로 바꾸든가……."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