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저녁 8시가 살짝 넘었을 때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 무슨 일?" "언제 들어오세요?" "글쎄 많이 늦지는 않겠는데, 11시까지 가지." "히~잉 지금 오실 수 없어요?" "안 되는데, 노벨 문학상을 우리나라 사람이 못 받아서 말이야." "노벨문학상이 뭐예요?" "아니야, 그냥 농담이야. 이따 보자."
올해 중3인 우리 딸이 이렇게 손수 전화를 걸어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보는 일은 참 드뭅니다. 보통은 문자를 보낼 뿐이지요. 이렇게 일찍 들어오라고 닦달하는 일은 더욱 드뭅니다. 보통은 몇 시까지 들어오는지 문자로 묻고 그냥 '예' 그럴 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때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술을 한 잔 마시고 꽤 취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11시를 넘기지는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제 방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딸이 "히~잉" 이러면서 엄청나게 큰 검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 보는데, 'HAPPY BIRTHDAY'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제 생일이었습니다. 아침에 미역국을 먹기는 했지만, 저는 이내 그 날이 제 생일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며칠 전 우리 딸 현지한테, "아빠 생일인데 뭐 선물 같은 것 없냐?" 물었지만, "없어요. 히히~" 하는 말을 듣고는 또 아무 생각 없이 정신을 놓았습니다.
그날 밤 딸은 이랬습니다. "술 안 마시고 바로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 깜짝 놀라게 하려고 26일부터 준비했는데……." 저는 이랬지요. "아, 그래? 미안하다. 아빠가 아무 기대도 안했거든. 섭섭하다든지 이런 생각도 안했고 말이야. 정말 놀랐는데!!!" 그랬습니다. 전지 절반 크기 종이에다 '하트'를 가득 오려 붙였습니다. 생일 축하 편지 앞면.
생일 축하 편지 안쪽.
오려 붙이는 데도 갖은 정성과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더해 '하트'를 붙인 안쪽에다 빈틈없이 빽빽하게 딸이 제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적어넣었습니다. 저것을 저렇게 쓰고 붙이고 하느라 팔도 많이 아팠을 것 같고 이래저래 구도를 잡느라 애도 많이 썼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무심했습니다. "아빠 생일 선물 없냐?"고 지나가는듯이 한 번 물어놓고는, 무심하기만 했습니다. 우리 딸이 무엇 하나 눈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딸은 '깜짝 선물'을 위해 아빠 눈을 피해 '하트'를 붙이고 글을 썼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하트'를 오리고 남은 빨간 종이 조각을 보고는 '또 어질러 놓았네'라고만 여겼습니다. '하트' 오리고 남은 종이 찌꺼기.
아빠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아빠 즐겁게 하려고 몰래 자기 방에서 '하트'를 붙이고 하얀색 펜으로 글씨를 썼을 딸을 생각했습니다. 딸한테 이번 자전거가 생겼습니다. 잘 그렸지요? 하하.
딸은, 아빠가 "아빠 생일인데 선물 같은 것 뭐 없냐?" 이렇게 묻기 전부터 '하트'를 오리고 붙이고 글씨를 썼습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딸 방에 늦게까지 커져 있는 불을 보고 "쓸데없이 있지 말고 일찍 자라."고만 했습니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돌아오기를 딸이 기다리던 그 순간에, 무심하게도, 무슨 의논할 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술잔을 부딪히고 있었던 제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아빠 생일날 저녁을 같이 지내려고 하는 딸의 심정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고마웠습니다. 아빠조차도 잊고 지나가버린 생일을 우리 딸 현지가 이렇게 감동적으로 기념하고 축하해 줬습니다. 게다가 지금 공부하러 서울 가고 없는 오빠랑 연락해서 그럴 듯한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다고 하니 제 무심함이 참 한심해졌습니다. 저는 이틀이 지난 지금껏 현지가 써준 커다란 생일 축하 편지를 읽고 또 읽습니다.
편지 내용은 우리 현지가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 했습니다. 부끄럽다고요. 자기 사는 얘기, 아빠한테 바라는 얘기,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다는 얘기, 친구들이랑 지내는 이런저런 얘기, 자기랑 친한 애들이랑 주고받은 얘기들이 촘촘하게 적혀 있습니다.
따로 장만했다는 선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택배가 늦어진다는 연락이 왔다고 하는군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딸이 오히려 "선물이 때 맞춰 왔으면 너무 좋았을 텐데……." 아쉬워합니다. 저도 무엇이 올지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 딸 '만세'입니다. 우리 아들도 '만세'입니다. 부러우시죠?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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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글씨가 참 좋네. 아빠보다 훨 나은 것 같습니다.
부럽네요.
그렇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
어쨌거나 저는 팔불출입니다. 자식 자랑이나 하고 다니고... 흐흐.
감동!!!
고맙네...... 한 번 보기는 해야 할 텐데...... 내가 별 일 없는데도 바빠서리,,,, 이번 주에 짜장면은 꼭 같이 먹으러 가자. ^.^
눈물이 나려합니다. 감동입니다. 부럽습니다.
고맙습니당~~ 하하.
무엇보다 따님의 진심과 정성이 느껴져서
억만금보다도 값진 선물이었을 것 같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제가 걸맞게 마음쓰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이런 글 볼 때마다 나도 빨리 장가가서 아이낳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듭니다
아~~이번 가을은 또 어떻게 독수공방해나갈지ㅜ.ㅜ -33세 예비노총각
흐흐~~ 고맙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서두르지는 마세여. 좋은 여자 만나야 예쁜 딸이 생기니까요. 흐흐.
미안합니당~~
그저... 부럽습니다..ㅜㅜ
후우....
....ㅠㅠ...
고맙습니당~~ 제가 딸한테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
우와ㅠ_ㅠ ,,,정말 정성이네요,
감동 많이 받으셨겠어요 ㅠㅠ
그럼요. 감동 그 자체였습지요. 흐흐
너무너무 예쁜 딸을 두셨군요!!
고맙습니다. 하하. 증말 예쁩니다.~~~
따님이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내리사랑이라 했지요..
소장님, 고맙습니다. 살아가는 힘이기도 하지요.^.^
따님 너무 예뻐요.
저도 너무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이 있는데 딸이 아무래도 더 아기자기하고 키우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요, 딸이 자기 오빠를 제일 무서워한답니당~~
참 부럽네요. 역시 '아들'보다는 '딸'이 좋다는 말이 실감나구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힘겨운중에도 웃을수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것 같네요.
저 선물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현지는 천사와 다를바가 없었을거에요.
이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저는 아들도 똑같이 좋아효. 하하~~~
딸이 크니까 저런 짓(?)도 하네요.^^
난 몇 년을 키워야 하나~^^
팔불출이어도 좋으니 따님, 아드님 이야기 자주 올려주세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당~~ 팔불출 소리 좀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늦었지만 생신 축하드립니다.
이쁜짓을 많이 하는 따님이군요.^^
이래저래 바빠 잠시 접속했습니다.
건강하셔요!
고맙습니다. 베푸시는 배려에 늘 몸둘 바를 모릅니다. Orz...
전 질투가 많이 났어요.. 예전에 현지를 우리집에 데리고 와서 '딸'삼아야 했었는데...
아~~ 부러워라...
어떤 분이실까~~~ 얄궂게도 남의 딸 가로채려 하시는 분이~~~~~~.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현지아빠~
Happy birthday to you~
짝짝짝...
훅~
케잌 한 조각 보내주십시요...
고맙습니다. 축하해 주셔서요.(사실 축하받을 인생은 아닙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보내 드릴 케이크가 없어서요.(생일 케이크는 딸 생일에 생겼습니다. 하하.)
두분 기자님의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등록해두고 자주 들러 읽곤 하던 독자입니다. 언론인의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시는 두분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따님이 너무나 예뻐서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좋으시겠습니다...
그리고 카드 만든 솜씨를 보니까 색깔 감각이랑 손놀림이 보통이 아닌데요. 그림 재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따님, 아드님 자랑 많이 해주십시오. 듣기만 해도 좋습니다.
아, 생신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두 번째 자랑을 바로 이어서 하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