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 두 분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제가 조문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니까 비판·비난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붙었습니다. 비판·비난을 하는 까닭을 두고 좀 생각을 해 봤더니, 본문 내용보다는 아무래도 제목 탓이 큰 것 같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목이 적절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해해 주십사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핑계삼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제목은 제가 달지 않았고요, 같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김주완 선배가 '내가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붙였습니다. 제가 처음 단 제목은 이렇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보내는 한 빨갱이의 소감'.
그렇다 해도 지금 와서 제목을 바꾸면 오히려 비겁하고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그대로 두겠습니다.(계속 욕을 얻어 먹더라도) 대신 원래 제목 아래 이렇게 한 줄 덧달아 봅니다.
1. 나는 마음이 차가운 편인가
제가 마음이 차가운 인간인지 한 번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차가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영수 영부인이 돌아간 1974년 저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세상이 뒤집어진 것 같았고 아이들도 많이 울었고 가르치시던 선생님도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느낌은 들었지만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갔을 때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특별한 정치의식이 없지만 그 때도 저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돌아갔다고 울먹거리는 친구들이 저는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이렇게 두고 보면 제가 마음이 따뜻하지 못하고 차가운 편인 것은 사실이지 싶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이 돌아갔을 때는 울지도 않았고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타고 난 천성이 그런 모양입니다.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2. 무관한 이에게는 조문하지 않는다
@경남도민일보
조문에 대해 제 기준은 이렇습니다. 서로 알고 지낸 사이라면 조문을 합니다. 알고 지내는 사람과 관련이 되는 사람이라도 당연히 조문을 하겠지요. 또는 제가 못 견디게 존경하는 인물이라면 조문을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인이라면 때에 따라 아무 관련이 없어도 조문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저랑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닙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식구들과도 저는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같은 당원인 적도 없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두 분을 저는 존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일개 기자 나부랭이일 뿐이지 공인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와 달리,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는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대학 1학년 1학기 때, 김대중 대통령 막내아들 홍걸과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넓게 잡으면 동기 동창이 되는데, 그이는 그해 여름방학 미국으로 쫓겨나는 아버지와 동행했습니다. 그 뒤로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요.
그래 문상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을 해 봤는데, 결국은 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같은 학과였지만 한 학기 내내 말 한 마디 주고받은 기억조차 없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줄 몰랐고, 나중에 알고 나서도 저는 성격이 소심해서 그 친구를 두고 속으로만 안쓰러워 했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갔으면 당연히 문상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홍걸과 제가 친구라고 하기에는 만난 시간이 너무 짧았고, 서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멀었습니다.(물론 그이가 무슨무슨 비리에 엮여 구속됐을 때 제가 옹호하는 글을 쓴 적은 있습니다만.) 그래서 저는 문상을 가지 않았습니다.
3. 김대중 서거 뒤 계속 혼란스럽다
김대중 대통령 돌아가고 나서, 저는 계속 혼란스럽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딱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이를 저는 중도 우파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속내는 아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 분이 지녀 온 가치와 정책을 그 분 살아온 인생 역정과 함께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나부랭이는 아예 견줄 수도 없지만 그 이는 그야말로 진짜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평화·양심을 위해 애썼습니다. 이것이 좌와 우를 나누는 지표는 아니지만 분명 반파쇼였고 그만큼 서민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이가 집필한 <대중경제론>은,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는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불균형 발전 이론을 바탕 삼아 중화학 공업을 위주로 이른바 '조국 근대화'를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밀어붙일 때, 그래서 그밖에 다른 경제이론은 강단에서조차 말하기 어려운 시점에 대중경제론이 나왔다고 저는 압니다. 여기에는, 재벌 위주가 아니라 서민대중과 중소기업을 살리는 경제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를 두고도 박정희가 김대중을 좌경 용공으로 몰았는데, 내용은 좌익과 전혀 무관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순전히 저 혼자만의 짐작이지만, 김대중이 실제 생각은 이보다 훨씬 더 민중 가까이 와 있으면서도 당시 상황 때문에 표현을 좀 부드럽게 하고 좌익으로 몰릴 수 있는 생각은 일부러 빼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김대중 대통령 생전에 하지는 않았고요, 돌아가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그이 생애를 다시 한 번 떠올리고 훑어보면서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한 후배와도 얘기를 해봤는데, 그 친구도 저랑 마찬가지로 굉장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어쩌면 그 이 가치관이 우리 짐작보다 훨씬 더 민중지향적이었겠다는 말씀입지요.
김대중의 민중지향적 풍모가 돋보인 대목은, 며칠 전 <한겨레>가 잘 정리한 바처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 실행, 통합 의료보험의 실현이었습니다. 부자 편을 들면 우파로 보고 가난뱅이를 편들면 좌파로 보는데, 국민기초생활 보장과 통합 의료보험은 가난뱅이에게 좀더 많이 몫을 나누는 것이고 이를 김대중은 본인 의지로 관철했습니다.
저랑 무관하고, 친구 아버지라 하기도 적당하지 않고, 존경하는 인물도 아니고 해서 김대중 대통령 조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거 뒤 일대기(一代記)를 대충으로나마 정리해 보니 그 분 평생 감당했던 악전고투와 민중을 위하는 마음씀이 새삼 커보였고(잘못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심정으로 글을 썼는데 그만 말썽이 나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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