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야-유신의 동맹 위에 선 덕만
24일 <선덕여왕>은 미실과 덕만이 정면으로 다투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식을 하는지 여부를 두고, 이런저런 변고를 두고 미실과 덕만이 지혜를 겨루는 것입니다. 덕만이 이렇게 미실과 맞서는 배경은 따로 있습니다. 어쨌든 재미는 짭짤하더군요. 하하.
배경은 지난 주 화요일 18일 방송됐던 스토리입니다. 김유신이 가야 재건을 노리는 복야회 본거지로 찾아갑니다. 가서는 복야회 우두머리 월야와 담판을 짓습니다. 그러고 나와서, 비담 등과 함께 복야회 구성원들에게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덕만에게 복종을 맹세합니다.
담판이 잘 마무리됐다는 뜻입니다. 월야는 아버지가 가야 마지막 임금 이뇌왕(異腦王)의 아들인 월광태자로 나옵니다. 이 또한 말이 안 됩니다.(김유신은 595년 출생입니다. 월광태자 출생은 520년대로 비정(比定)됩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 월야는 김유신과 또래일 수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김유신 주도 아래 월야와 동맹이 이뤄진 것입니다.
24일 이야기는 18일 방송된 이 같은 유신-월야의 동맹이 바탕입니다. 그날 시청률이 50%를 넘었답니다. 유신이 덕만을 일러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라 외친 다음 무릎을 꿇고 "이제부터……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라며 머리를 숙이는 장면 시청률이 51.7%였습니다.
2. 실재하지 않았던 '가야 연맹'
여태껏 대충 지켜본 바로, <선덕여왕> 제작진은 사실(史實)에 대한 배려랄까 존중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월야와 김유신을 또래로 표현한 것도 그렇고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려는 대목도 사실과 많이 일그러져 있습니다.
유신과 월야가 담판하는 장면입니다. 월야가 이런 투로 말하지요. "너는 어째서 가야의 후예이면서 신라를 편드느냐?" 유신이 맞받습니다. "어차피 가야는 안 되게 돼 있다." 월야가 되묻지요. "뭐라고?" 유신은 쐐기를 박습니다. "같은 가야이면서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3. 교과서부터가 잘못돼 있으니
가야는 원래부터 '같은 가야'가 아니고 '다른 가야'였습니다. 열 개가 넘는 낙동강과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 가야는 저마다 뿌리와 줄기가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이 역사 드라마는 같은 가야를 상정(想定)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작진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교과서가 가장 잘못했습니다.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 51쪽 서술은 이렇습니다. <선덕여왕> 제작진이 '같은 가야'라 착각할만합니다.
"김해의 금관 가야가 중심이 되어 연맹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이를 전기 가야 연맹이라고 부른다. 연맹의 맹주인 금관 가야는 …… 낙동강 유역 일대에 걸쳐 있었다." "4세기 초 백제와 신라의 팽창에 밀려 전기 가야 연맹은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4세기 말~5세기 초에는 신라를 후원하는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몰락하여 가야의 중심 세력이 해체되고, 가야 지역은 낙동강 서쪽 연안으로 축소되었다."
여기 서술은 대부분 엉터리입니다만 그 가운데 으뜸은 '연맹 왕국'이라는 표현입니다. 가야 여러 나라들은 연맹(League)을 하고 조직체를 꾸린 적이 한 차례도 없습니다. 이영식 인제대학교 박물관장은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 여행> 288쪽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 국사 교과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가야를 하나의 운명공동체와 같은 '가야 연맹'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12개국 이상이나 되는 가야의 여러 나라는 서로 다른 특징으로 구분되는 역사와 문화를 이룩했고, 그리스 도시국가의 연맹처럼 함께 힘을 합해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과 싸우거나, 함께 일시에 망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250쪽 기록은 좀더 자세합니다. "후대에 김해와 고령 사람들이 스스로를 높이려고 만들어낸 자기중심의 정치적 주장대로, '가야연맹'이란 현대의 가설이 만들어졌고 한 번 만들어진 가설은 검증도 없이 사실로 둔갑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앞서 249쪽입니다.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겨우 3쪽뿐인 가야사 서술은 제목부터 '가야연맹왕국'으로 되어 있었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겨우 1쪽뿐인 서술에서 전기의 김해와 후기의 고령이 각각 '가야연맹의 맹주'였던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야 여러 나라가 …… 4세기 초에는 '포상팔국의 난'으로 불리는 가야국끼리의 전쟁도 벌였고, 5세기 초 고구려가 남침하자 고령과 함안이 따로 전쟁을 치렀으며, 결국은 신라와 백제의 침략에 따로 따로 격파되어 멸망하였습니다. 동래와 창녕은 5세기 중반, 김해는 532년, 함안은 561년, 고령은 562년에 신라에 통합되었습니다. 연맹체로 뭉쳐 함께 싸우다 망한 것이 아닙니다."
4. 실재 역사를 현재 관점에서 짜맞추는 제작진
그런데도 <선덕여왕> 제작진은 김유신으로 하여금 '같은 가야니까 마땅히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전제 아래, 그렇게 못했으므로 당연히 안 된다는 식으로 논리를 펼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야 각국은 정세에 따라 서로 관계를 주고받았고, 나아가 백제와 친하거나(신라와 싸우거나) 또는 신라와 친하게 지내는(백제와 싸우는) 정책을 썼습니다.
의사 결정과 행동의 주체는 개별 가야 국가였지, '연맹' 조직체는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야라 해도 하나로 뭉쳐 있었거나 또 뭉쳐야 한다는 당위가 통하는 상황은 아니었고요. 그러다 보니 가야 여러 나라들이 신라 한 나라에만 망한 것이 아니고 백제 침략과 회유에 망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덕여왕>에서 김유신과 월야의 담판 장면은 이래야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김유신의 김해와 월야의 고령이 형과 아우라는 동질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야, 우리가 형과 아우라고 일러주는 신화도 있잖아. 그러니 이제 힘을 모아 신라를 집어삼켜보자!' 이렇게 실재를 바탕으로 깔아도, 제작진이 연출만 잘하면 극적 효과는 크게 누릴 수 있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작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교과서 잘못이 크기는 하지만, 제작진이 교과서를 믿고 그리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대목에서도 교과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그리 봅니다. 그냥, 그렇게 하는 쪽이 쉽고 편해서 그랬지 싶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야 연맹'을 실체로 착각하는 현실에 기댄 것입니다.
<선덕여왕>이 인기는 있지만, 바로 이 면에서 아쉽습니다. 어쩌면 인기가 있어서 아쉬운지도 모릅니다. <선덕여왕>은 이렇듯 관성과 편견에 찌그러진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1400년 전 실재 역사 속으로 끌고나가 새롭게 떨치고 펼쳐 주려 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1400년 전 실재 역사를 그대로 살리는 대신, 현대인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맞춰 어거지로 짜맞추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 삼아 덧붙이면, 김해 가락국(금관가야)은 이렇습니다. 광개토왕릉비 관련 기록에 있습니다. "(영락) 10년(400) 경자에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다." "왜적이 물러가므로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 성이 곧 귀순하여 복종하므로 순라병을 두어 지키게 했다." 영락(永樂)은 광개토대왕이 독자로 썼던 연호(年號)입지요. 여기 임나가라는 지금 김해입니다.
이처럼 김해 가야는 서기 400년 왜와 함께 신라를 쳤다가 신라 후견인 고구려로부터 공격을 받아 궤멸됐습니다. 김해 대규모 고분은 400년 이전 것이고 그 뒤에는 그런 고분이 들어서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고구려 군사 5만의 공격을 받고 김해는 재기불능 돌이키지 못할 타격을 입은 것입니다. 그 뒤 100년남짓 '골골거리다' 532년 김유신 증조할아버지 구형왕이 마침내 신라에 투항합니다.
김훤주
'지역에서 본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까닭 (131) | 2009.08.29 |
---|---|
우리나라에도 인문학을 하는 도시가 있다 (17) | 2009.08.28 |
김 전 대통령 업적, 민주 평화말고 더 없나 (33) | 2009.08.25 |
경상도 40대 남자의 김대중에 대한 기억 (30) | 2009.08.23 |
고성 '소가야'는 과연 '작은 가야'였을까? (18) | 2009.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