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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내가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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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마찬가지로 조문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휴대전화를 타고 "그 분 돌아가셔서 무척 슬프다"는 문자가 누군가에게서 들어왔다. 나는 답글을 적었다. "나는 그리 슬프지 않은데. 별로 관계도 없고. 그리고 자연사고, 연세도 높으시고."

김 전 대통령 국장이 치러지기 전날인 22일 여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이튿날 돌아왔다. 우리가 자동차를 세워둔 여수시청 한쪽 구석에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일행은 거기 들러 향을 사르며 조문을 하고 왔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서 <한겨레>와 <민주당보> 한 장씩을 얻어와 펴 놓고 읽었을 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마음이 따뜻한 수많은 사람들이 평소 김대중이나 노무현과 아무 인연이 없이 살았으면서도 그이들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무 서슴없이 나서서 때로는 생업조차 팽개치고 함께 슬퍼하며 장례를 거들기도 했다는 사실을. 그러나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2. 김대중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진 김해 진영읍 봉화산 정토원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이 함께 놓여져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특히 김대중은, 나를 비롯해 진보정당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걸림돌이었다. 김대중은 노동자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국 노동당을 본받아라."고 했다. 힘이 없을 때는 자유당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힘을 기른 다음 독립한 영국 노동운동처럼 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따른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당장 집권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런 회유(공작이랄 수도 있겠다. 아시겠지만, 공작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는 필요했다. 김대중의 품으로 들어가지 않은 진보진영 사람들은 대부분 쪼그라들었고, 김대중 품으로 들어간 진보진영 사람들은 다시는 독립을 꿈꾸지 못했다. 이렇듯 우리는 김대중 앞에서 초라했다.

92년과 97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은 독자 후보를 내세우기는 했으나 제대로 취급을 받지는 못했다. 진보 후보 운동을 벌인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지지자들에게는 협박의 대상이었다. "너것들 때문에 우리 선생님 떨어지게 되면 가만 두고 보지 않겠다!" 우리가 감당할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능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독자 후보를 내세운 진보진영의 목표는 정치적 독립이었다. 숫자로 셈하자면 1등 당선자와 2등 낙선자 사이의 표차보다 단 하나라도 더 많이 표를 얻는 데 있었다. 92년 대선 때는 김대중과 진보진영 모두 실패했고, 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만 목표를 이뤘다. 김대중은 당선됐지만, 진보진영은 정치적 시민권을 인정받기 위해 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3. 빨갱이가 이어받을 김대중 업적은 무엇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하고 나서, 평소 그이를 일러 "뺄갱이 새끼"라고 "거짓말쟁이"라고 거리낌 없이 입을 놀리던 이들조차 추모·애도한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이명박 대통령 같은 이는 절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슬퍼할 이가 아닌데도 그렇게 하고, 그것은 한나라당의 대다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이들은 평화와 통일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열심히 일했고 그 분야에서 업적이 많이 나왔다고 말하면서 애도·추모한다. 그이들은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회복지 부문에서 어느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진전을 이룩한 사실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평화와 통일은 실제 별 부담이 되지 않고 때로는 정치 수사(修辭 = rhetoric)로도 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반면 복지는 집권 세력에게 당장 부담이 된다. 이번에도 이른바 '4대강 살리기'를 위해 복지 예산을 사실상 줄이는 '쿠데타'를 그이들은 단행했다. 그이들에게 복지는 있으면 던져주고 없으면 안 줘도 그만인, '시혜(施惠)'일 뿐이다.

이전 대통령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진전은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2000년)에 있다. 김대중은 이 법 제정으로 사회복지의 기본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 바로잡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있던 법률은 이름이 생활보호법이었다.

생활보호법에서 생활보호대상자들은 소득이 없거나 적은 영세민으로 국가가 보호하는 이등 국민이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모든 국민은 '일등 국민'이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초 생활'을 보장받는 권리 주체라고 못 박았다. 아무 권리도 없이 보호 대상이기만 하던 인간들을 주권자로 전복시켜 바로잡은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97년 생계비 지급을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는 37만 명이었으나 2001년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는 155만 명으로 네 배 넘게 늘었다. 금액도 한 달 평균 13만8000원에서 20만4000원으로 많아졌다. 그러나, 숫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등 국민'의 '권리 회복'을 통한 '복지의 개념 정리'였다.


눈앞에서 진행되는 복지의 축소를 보면서, 부자만 위하는 지금 정권이 저지르는 복지 개념의 본말전도(本末顚倒)를 보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한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한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평생 빨갱이로 매도당한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진짜 빨갱이들이 이어받아 지키고 더욱 펼쳐 나가야 할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김훤주

※ 월간 <전라도닷컴> 2009년 9월호에 실은 글을 다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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