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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책이 두 권 있습니다. 모두 책에 관한 책입니다. <커버 투 커버-책 읽는 여자>(로버트 크레이그 지음, 나선숙 옮김)와 <책 읽어 주는 남편-책꽂이에서 연애편지를 꺼내다>(허정도 지음). 하나는 소설이고 하나는 아닌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책 읽기를 통해 형성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 읽는 여자 = "타냐, 나도 당신처럼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요. 하지만 '체험'하는 만큼의 기쁨은 아니에요. 진짜 사랑, 진자 두려움, 진짜 분노, 진짜 기쁨이 아니란 말이에요. 책 읽는 건 구경이에요. 나랑 같이 있으면 사랑과 기쁨을 느끼게 해 줄게요. 분노와 슬픔도." 책과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알고 사랑하게 된 칼과 타냐. 소설 대단원에서 칼이 타냐의 책을 불태우면서 하는 얘기랍니다.
이어지는 타냐의 생각과 행동. '내가 이 집에서 혼자 경험한 행복은 지극한 만족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보다 알차고 보람 있는 행복이 있다. 일과 타협과 분노로부터 생겨나는 행복. 타인의 결점을 묵인해 주는 보상으로 찾아지는 행복. 그리고 나에게는 칼밖에 없다.' '나는 (불태우려던 칼에게서 받아뒀던) 쥐고 있던 책을 불길에 던졌다. 휘익 바람이 일어나 연기와 재가 튀었다. 눈이 맵고 기침이 났다. 얼굴을 씻어야 했다. 칼은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손을 잡아 이끌고 우리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물아홉 살 영국 여자 타냐는 스무 살 이후 책에 빠져 살아 왔습니다. 10년간 책에 묻혀 살았던 것입니다. 이 같은 타냐의 10년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홀로 된 이웃 할머니에 대한 생각도 그랬습니다. '한때는 일과 섹스와 분주한 나날들이 삶을 채웠으리라. 누군가의 연인이었고 항상 곁에 있어주는 동반자였다. 그런데 이제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죽음과 진배 없는 일이다. 다른 한 사람에게 자신의 삶과 사랑을 모두 바쳤는데 그가 죽음으로 자신을 배신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타냐의 삶은 소설 속에서 적당한 속도감과 알맞게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나타납니다.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라든지, 사무치게 사랑한 이와 그냥 허망하게 헤어진 일이라든지……. 좋아했던 아빠가 죽으면서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내 가족은 아빠와 함께 죽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과거가 없고, 가족도 종교도 없었다. 정치는 어차피 관심 없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았다. 친한 친구도 없고, 심지어 애완동물이나 키우는 식물도 없다. 나는 내가 아는 다른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물론, 참, 이런 것도 자유라 할 수 있을는지 미심쩍기는 하지만.
타냐가 결혼을 않고 책에 파묻혀 지내는 까닭은 단순하답니다. '사랑은 결국 비극으로 끝날 뿐인데 어째서 사랑을 쫓아가야 하는가?'이지요. '어렸을 때의 환상이 대부분 깨어지고 그편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음에도,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이미 결혼을 했거나 평생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되는 나이라는 관념이 박혀 있었다. 서른에는 뒤돌아설 수 없고, 앞을 볼 수도 없다.'
그런데도 타냐는 소설 마지막에서 '칼의 손을 잡고' '우리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책 읽기가 단순히 양식과 위안을 주거나 현실에서 벗어나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줍니다. '파괴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런 영향력의 구체적인 국면은 소설 읽는 재미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학수첩. 446쪽. 1만2000원.
◇ 책 읽어주는 남편 = 결혼한 지 30년 된 부부입니다. 아내가 눈이 아팠습니다. 아내를 위해 남편이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쌓았더니 사람 키보다 더 높아졌답니다. 남편이 책을 읽으면서, 아내가 남편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들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어주고 또 듣게 되면서 이들 부부는 당연히 같이 느끼고 같이 행동하는 범위와 시간이 커졌습니다. 부부는 나란히 책방에 가서 서로 의논하면서 책을 고르고 함께 읽은 다음에는 책에 대한 소감도 둘이 나눈답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이런 대화는 유형 무형으로 이어지지요.
책 읽기-듣기를 통해 둘은 추억이 어린 옛날로 돌아가기도 하고 함께 만들 수밖에 없는 미래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방식을 반성하기도 하고 서로 생각과 행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면서 소통을 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그리고 종종, 부부는 서로 마주볼 뿐 아니라 어느 한 방향을 함께 바라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다잡는 대목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부부의 눈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보람이 느껴지는 구석은, 이렇게 책을 읽고 듣고 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으리라는 데 있습니다.
30년이나 같이 살아 놓고도 뭐 더 알고 말고 할 것이 있다고? 이렇게 묻는 이가 있다면 그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했어도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기 십상입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볼 때 100% 그렇습니다. 사람의 내면이란, 파도 파도 끝없이 갖은 광물이 쏟아지는 광산 같은 것이거든요.
"휴가차 아이들이 제 부모가 책을 읽고 듣고 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지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너희 부모가 이렇게 지내고 있다, 하고 짐짓 태연한 척했습니다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글쓴이는 120권을 아내에게 읽어줬답니다. 이 가운데 20권을 읽은 기록을 여기 담았습니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리진> <능소화> <히말라야 도서관> <마지막 강의> <바리데기> <아름다운 마무리> <친정엄마> <까칠한 가족> <지상에 숟가락 하나>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4>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라틴 화첩기행> <잡식동물의 딜레마> <연을 쫓는 아이> <나무열전> <조선의 프로페셔널> <오 하느님> <백범일지> <강산무진>.
글쓴이 허정도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남짓 동안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삶이, 이렇게 깊어지고 넓어질 수도 있네요. 예담. 248쪽. 1만원.
김훤주
◇책 읽는 여자 = "타냐, 나도 당신처럼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요. 하지만 '체험'하는 만큼의 기쁨은 아니에요. 진짜 사랑, 진자 두려움, 진짜 분노, 진짜 기쁨이 아니란 말이에요. 책 읽는 건 구경이에요. 나랑 같이 있으면 사랑과 기쁨을 느끼게 해 줄게요. 분노와 슬픔도." 책과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알고 사랑하게 된 칼과 타냐. 소설 대단원에서 칼이 타냐의 책을 불태우면서 하는 얘기랍니다.
이어지는 타냐의 생각과 행동. '내가 이 집에서 혼자 경험한 행복은 지극한 만족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보다 알차고 보람 있는 행복이 있다. 일과 타협과 분노로부터 생겨나는 행복. 타인의 결점을 묵인해 주는 보상으로 찾아지는 행복. 그리고 나에게는 칼밖에 없다.' '나는 (불태우려던 칼에게서 받아뒀던) 쥐고 있던 책을 불길에 던졌다. 휘익 바람이 일어나 연기와 재가 튀었다. 눈이 맵고 기침이 났다. 얼굴을 씻어야 했다. 칼은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손을 잡아 이끌고 우리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물아홉 살 영국 여자 타냐는 스무 살 이후 책에 빠져 살아 왔습니다. 10년간 책에 묻혀 살았던 것입니다. 이 같은 타냐의 10년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홀로 된 이웃 할머니에 대한 생각도 그랬습니다. '한때는 일과 섹스와 분주한 나날들이 삶을 채웠으리라. 누군가의 연인이었고 항상 곁에 있어주는 동반자였다. 그런데 이제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죽음과 진배 없는 일이다. 다른 한 사람에게 자신의 삶과 사랑을 모두 바쳤는데 그가 죽음으로 자신을 배신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타냐의 삶은 소설 속에서 적당한 속도감과 알맞게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나타납니다.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라든지, 사무치게 사랑한 이와 그냥 허망하게 헤어진 일이라든지……. 좋아했던 아빠가 죽으면서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내 가족은 아빠와 함께 죽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과거가 없고, 가족도 종교도 없었다. 정치는 어차피 관심 없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았다. 친한 친구도 없고, 심지어 애완동물이나 키우는 식물도 없다. 나는 내가 아는 다른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물론, 참, 이런 것도 자유라 할 수 있을는지 미심쩍기는 하지만.
타냐가 결혼을 않고 책에 파묻혀 지내는 까닭은 단순하답니다. '사랑은 결국 비극으로 끝날 뿐인데 어째서 사랑을 쫓아가야 하는가?'이지요. '어렸을 때의 환상이 대부분 깨어지고 그편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음에도,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이미 결혼을 했거나 평생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되는 나이라는 관념이 박혀 있었다. 서른에는 뒤돌아설 수 없고, 앞을 볼 수도 없다.'
그런데도 타냐는 소설 마지막에서 '칼의 손을 잡고' '우리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책 읽기가 단순히 양식과 위안을 주거나 현실에서 벗어나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줍니다. '파괴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런 영향력의 구체적인 국면은 소설 읽는 재미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학수첩. 446쪽. 1만2000원.
◇ 책 읽어주는 남편 = 결혼한 지 30년 된 부부입니다. 아내가 눈이 아팠습니다. 아내를 위해 남편이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쌓았더니 사람 키보다 더 높아졌답니다. 남편이 책을 읽으면서, 아내가 남편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들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어주고 또 듣게 되면서 이들 부부는 당연히 같이 느끼고 같이 행동하는 범위와 시간이 커졌습니다. 부부는 나란히 책방에 가서 서로 의논하면서 책을 고르고 함께 읽은 다음에는 책에 대한 소감도 둘이 나눈답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이런 대화는 유형 무형으로 이어지지요.
책 읽기-듣기를 통해 둘은 추억이 어린 옛날로 돌아가기도 하고 함께 만들 수밖에 없는 미래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방식을 반성하기도 하고 서로 생각과 행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면서 소통을 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그리고 종종, 부부는 서로 마주볼 뿐 아니라 어느 한 방향을 함께 바라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다잡는 대목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부부의 눈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보람이 느껴지는 구석은, 이렇게 책을 읽고 듣고 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으리라는 데 있습니다.
30년이나 같이 살아 놓고도 뭐 더 알고 말고 할 것이 있다고? 이렇게 묻는 이가 있다면 그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했어도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기 십상입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볼 때 100% 그렇습니다. 사람의 내면이란, 파도 파도 끝없이 갖은 광물이 쏟아지는 광산 같은 것이거든요.
"휴가차 아이들이 제 부모가 책을 읽고 듣고 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지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너희 부모가 이렇게 지내고 있다, 하고 짐짓 태연한 척했습니다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글쓴이는 120권을 아내에게 읽어줬답니다. 이 가운데 20권을 읽은 기록을 여기 담았습니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리진> <능소화> <히말라야 도서관> <마지막 강의> <바리데기> <아름다운 마무리> <친정엄마> <까칠한 가족> <지상에 숟가락 하나>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4>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라틴 화첩기행> <잡식동물의 딜레마> <연을 쫓는 아이> <나무열전> <조선의 프로페셔널> <오 하느님> <백범일지> <강산무진>.
글쓴이 허정도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남짓 동안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삶이, 이렇게 깊어지고 넓어질 수도 있네요. 예담. 248쪽. 1만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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