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뒤풀이문화, 서울과 타 지역 사람들의 차이

기록하는 사람 2009. 7. 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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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안에 거미줄이 쳐지는 주당이지만, 오래 마시진 못한다. 통상 밤 12시가 넘으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서 도망가버리는 스타일이다.(물론 대개 술값은 내고 간다. 그 정도 양심은 있다.)

아무래도 나이탓인듯 싶다. 어른들껜 송구한 말이지만, 40대 중반이 넘고 나니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 노래방까지 가게 되면 다음날 맥을 못춘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대전에 블로그 강의를 갔다가 무려 새벽 4시에 가깝도록 마시는 일이 발생했다. 주최측인 충청투데이가 하룻저녁에 두 개의 강의를 잡는 바람에 11시가 넘어 뒤풀이가 시작된 탓도 있다. 그래도 새벽 두 시쯤에는 마칠 것으로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17일 충청투데이 블로그 강좌.


감자탕집에서 시작된 뒤풀이는 내가 예상했던 두 시가 되어도 끝날 줄을 몰랐다. 아무도 가자는 사람이 없었다. 20여 명이 모두 그랬다.

내가 조바심이 나서 주최측인 충청투데이 권도연 기자에게 "아무래도 주최측이 나서서 정리를 좀 해야겠는데요?"라고 찔렀다. 그러나 권 기자도 죽치고 않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열기에 쉽게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마신 대전의 무서운 사람들

결국 세 시가 가까울 무렵 내가 벌떡 일어서면서 "자~ 이제 일어나죠."라고 큰소리로 말해버렸다. 그렇게 하여 겨우 뒤풀이를 파하고 나왔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2차를 가자는 것이었다. 주동자들은 30대 초반의 여성블로거들로 보였다. 멀리서 온 몇몇 블로거들 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했다.

밤 11시 넘어 시작된 뒤풀이는 새벽 3시까지 갔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자러 가야겠다."며 빠질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충청투데이 기자들이 예약해둔 모텔을 안내해주겠다면서 또 따라붙는 것이었다. 말은 그렇지만 실제론 모텔에 들어가기 전에 맥주라도 한 잔 더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그들을 설득해 2~3명을 돌려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우희철 전 기자와 홍미애 국장이 남았다. 우희철 기자는 이리저리 주변 술집을 찾다가 대부분 문이 닫힌 것으로 확인되자 슈퍼에서 캔맥주를 사들고 나왔다.


결국 슈퍼 앞 간의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 자리도 내가 먼저 일어나면서 파할 수 있었다. 그대로 있었다면 우희철 기자는 날밤을 샐 태세였기 때문이다.(그나 저나 홍 국장은 집에서 쫓겨나지나 않으셨는지 걱정이다.) 헤어지려는데 그들은 다음날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한다. 그것도 손사래를 쳤다. 알아서 가겠다고, 신경 쓰지 마라고….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마신 사람들. 정말 무서운 이들이다. 누구인지는 짐작해보시라.


4시가 넘어 잠이 들었더니, 오전 9시 30분에 눈이 뜨였다. 옆 침대를 보니 비어 있다. 함께 자기로 했던 마루(김현욱) 님이 오지 않은 것이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마루 님이었다. 그는 대전역 근처인데, 지금까지 마셨단다. 결국 날밤을 샌 것이다. 아직도 함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단다. 정말 굉장한 사람들이다.

대체로 서울 이외의 지역에 가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이달 초 전남 여수에서도 그랬다. 여수에선 나이가 지긋한 50대 어른들과 함께였는데, 그 분들과는 저녁 9시부터 시작한 술자리가 새벽 두 시까지 이어졌다. 그것도 내가 먼저 일어서자고 제안함으로써 파할 수 있었다.

그 때도 그 분들은 모텔까지 잡아주고, 다음날 점심 때 다시 모텔에 나타나 여수의 이곳 저곳을 관광까지 시켜줬다. 이처럼 서울 아닌 지역에 가면 대체로 비슷하다. 아직 삶의 여유와 인심이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

여수 사람들.


서울 사람들이 어쩌면 불쌍하다

그런데 서울은 이런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

서울 사람들은 공식행사가 끝나면 대개 헤어지기 바쁘다. 멀리 다른 지역에서 서너 시간씩 버스를 타고 온 객(客)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서울에서도 뒤풀이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개 10시나 11시, 늦어도 12시 안에는 끝난다.

내가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회의가 하나 있는데, 그 모임은 아예 뒤풀이도 없었다. 네 시간이 넘게 걸려 서울에 도착, 서너 시간 회의를 하고 나면 저녁시간이 된다. 그런데 저녁도 함께 먹지 않고 그냥 헤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서울역이나 강남터미널에 가서 혼자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사먹은 후 마산으로 돌아오는 차를 탔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반복됐다. 참다 못한 내가 회의석상에서 한 마디 했다.

"서울 사람들은 깍정이라더니, 역시 그런 것 같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어렵게 온 사람들이 많은데, 회의만 마치고 그냥 돌아가려니 참 허무하다. 회의 마치면 저녁시간인데, 밥이라도 함께 먹고 헤어지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나. 밥값이 없어서 그런다면 각자 갹출하면 될 것 아닌가?"

그 후부터 그 모임은 꼬박꼬박 저녁을 먹는다. 물론 서울이라고 해서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정운현 테터앤미디어 대표와는 새벽까지 마신 적도 있다.) 내 경험상 대체로 그렇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언론노조 지부장을 할 때도 그랬다. 언론노조 본조에 있는 간부들도 다른 지역에 오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다. 그런데 정작 서울에서 회의를 하면 서둘러 찢어지기 바빴던 것이다. (지금 언론노조는 미디어 악법 저지에 바빠 술 마실 틈도 없겠지만….)


지금까지 이야기는 순전히 주관적인 내 경험과 느낌이다. 이걸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뜻도 없다. 서울은 전국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이라 자연스레 그리 된 것이라 이해하는 마음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 서울이란 곳이 사람 살기에 팍팍한 곳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오히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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