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49재가 치러진 다음날인 11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11일 아침 <한겨레>를 보니 김해 봉하 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 안장식이 진행될 때 서울 대한문 앞에서도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고 돼 있었습니다.
11일 오후 저는 동대문에서 청계천을 따라 청계광장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청계천은, 복개를 뜯어낸 뒤로는 언제나 그랬지만, (자연 하천이 아닌) 하수구치고는 아주 깨끗했습니다.
어쨌거나, 80년대 초·중반 몇 해 동안 서울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라도 산책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커다란 진전이겠다 싶었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 있기에 덕수궁을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신기전도 보고 자격루도 보고 석조전 중화전 즉조당 같은 건물도 눈에 담았다가 한 시간만에 나왔습니다. 나오는데 보니까 왼쪽이 지저분했습니다. 비도 내리고 있었지요.
종이조각도 흩어져 있고 바닥에 깔았던 비닐 같은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국화도 몇 송이 떨어져 있더군요. 그러나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 눈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호기심은 별로 일지 않았고요, 도대체 무엇이 이리 널려 있나 하는 짜증이 더 크고 많았지 싶습니다. 플라타너스 앞으로 돌아서는 순간, 가운데 노란 종이가 보였습니다.
보지 않아도 알겠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 그림이었습니다. 아래쪽에는 '내 마음의 대통령'인가가 적혀 있었습니다. '누군가 어제 추모 행사를 마치고 여기 이렇게 조그맣게나마 영정을 모셔 뒀구나…….'
앉아서 잠깐 꽃을 어루만졌습니다. 꽤 시들어 있었습니다. 제게 안타까움 같은 기운이 몰려오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앞서 을씨년스러움이 저를 먼저 찾았기 때문입니다.
꽃을 어루만지다 살짝 뒤집어 놓았습니다. 아래쪽에 있는 꽃이 조금이라도 덜 시들었겠다 싶어서 그랬습니다. 뒤집은 다음 눈길을 한 번 주고 광화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어떤 한 사람이 다시 그 앞에 멈춰 서는 기척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과 위 사진은 준비 없이 서둘러 찍다 보니 많이 흔들렸습니다.
조금 걸음을 옮기다가 뒤를 돌아봤습니다. 영정 앞에 멈춰 선 그 사람이 무엇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이도 꽃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다가 꽃 더미 아래가 위로 오도록 뒤집었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 있는 노무현 영정은 그날 하루만 해도 수백 사람 손길이 쓰다듬었을 것입니다. 거기 있는 꽃 더미도 또한 수천 차례 뒤척거렸을 것입니다.
노무현다운 영정이고, 노무현다운 꽃 더미였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앞서 유서에 대고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고 했던 뜻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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