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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영화 군함도를 보니 전두환 정권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 폭력성의 뿌리 어린 시절에 대한 나의 기억은 폭력과 동행하고 있다. 개인적인 폭력이 물론 많지만 집단적인 폭력도 있었다. 10대였던 70년대는 물론 20대였던 80년대도 한국 사회는 폭력이 지배했다.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폭력도 많았고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짊어져야 했던 폭력도 공존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하는 폭력은 특정 집단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경우였다.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당하는 폭력은 당연히 개인의 몫이었다. 군부독재정권에 대항했기 때문에 당하는 폭력도 어쩌면 개인의 몫이었다. 대항을 포기하면 폭력도 멈추기 때문이다.한국 사회 구성원이면 무조건 당해야 하는 폭력이 있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 나라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냥 태어난다. 그 결과로 당해야 하는 .. 더보기
이은상과 김춘수, 그리고 반야월 1. 문인의 사람됨, 대중가수의 사람됨 2012년 9월 20일로 기억되는데요, MBC경남의 라디오광장에서 같은 방송국의 김상헌 기자랑 둘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친일 이력이라는 말로는 크게 모자랄 정도로 전쟁 참가 선동으로 부역을 한 반야월이 소재였습니다.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이은상과 그 시비가 떠오르고, 둘을 한 번 비교·대조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 이렇게 끄집어내 봤습니다. 대중가수와 문인, 반성·사과한 사람과 반성·사과는커녕 인정조차 안한 사람,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어떻게 보면 문인이라는 인간이, 학자라는 인간이 대중가요 가수보다 훨씬 못합니다. 반야월 이야기를 하던 당시 ‘꽃’의 시인 김춘수를 설핏 비교해 봤는데요. 그이는 본인의 친독재 행적을 인정하고 반성했지만 그 뒤에 .. 더보기
조선일보는 평기자가 고문을 쥐고 흔든다 틀린 사실이 많았던 김대중 칼럼 김대중이라는 조선일보 고문의 4월 19일치 칼럼 '장지연상을 반납해야 하나?'에는 잘못이 많습니다. 4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장지연 건국훈장 서훈 취소가 부당하다는데요, 사실 관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잘못이 가장 큽니다. 그이는 장지연 서훈 취소가 "한·일 병탄 후 지방에 내려가 현실에 부응하는 몇 편의 글을 썼다"는 데 있다면서 "서훈 취소를 의결한 김황식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장지연이 지방언론에 썼다는 다른 글이 얼마나 '매국적'인지 읽어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이의 글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논리 구사는 마음대로 하지만 사실 관계까지 흐뜨리지는 않는 인사로 알았는데, 이번 글은 전혀 그렇지 않고 잘못된 사실이 바탕.. 더보기
김태익이라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경우 언론(인)이란 말과 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사람)이고 분명하지 않거나 혼동 또는 혼돈돼 있는 사실을 뚜렷하게 나누고 가지런하게 질서를 잡는 일(사람)입니다. 물론 그런 일(사람)을 조선일보에서 기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차치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김태익이라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4월 12일치 조선일보에 쓴 글 '보훈처 서훈심사위가 궁금하다'는 장지연(1864~1921)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 취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이는 정부의 서훈 취소를 두고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내세운 '장지연은 친일파'란 주장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셈"이라고 했습니다. 또 김태익이라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같은 글에서 "장지연은 말년에 일제의 식민통치를 두둔하는 글을 몇 편 쓰기도 했.. 더보기
김대중이라는 조선일보 고문의 경우 장지연 서훈 취소가 부당하다고? 김대중이라는 조선일보 고문이 '위암 장지연상'을 받은 적이 있는가 봅니다. 그이가 2011년 4월 19일치 조선일보에 '장지연상을 반납해야 하나?'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여기서 그이는 4월 5일 국무회의에서 장지연에게 주어졌던 건국공로훈장을 박탈한 데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이는 그 글에서 "(장지연이 1905년 썼다는) '시일야방성대곡'은 지금 읽어도 가슴이 메어져 온다"면서 "장지연 선생이 한·일병탄 후 지방에 내려가 현실에 부응하는 몇 편의 글을 썼다는 것이 '친일'의 근거가 됐다고들 하는데 나는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 한 편만으로도 그 분은 당대에 남을 항일지사였고 민족언론인이었음을 …… 증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지연 서훈 취소가 부당하다는 말인데, 그이가.. 더보기
서훈 취소된 장지연, 그는 죄가 없다 한 때 대한민국 언론인의 사표(師表)였던 장지연(1864~1921)은 그 친일 행적이 2003년 3월 1일자 자매지 을 통해 처음 공개됐습니다. 학계에서는 장지연 친일 관련 조사와 연구가 전부터 있었지만 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6개월남짓만인 지난 달 국가보훈처가 장지연에게 주어졌던 서훈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에 1915~17년 썼던 그이의 글 가운데는 친일로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1917년 6월 8일치 '봉송이왕전하동상(奉送李王殿下東上)'에서 "내선 인민이 친목으로 사귀어 장애를 풀어 없애고 일체 간격이 없으니" "일선(日鮮) 융화의 서광이 빛나리라"고 한 대목이 있습니다. '내선'은 '내지(內地=일본)'와 '조선'을 뜻하.. 더보기
장지연은 왜 친일지식인이 되었나 장지연은, 변절한 적이 없다 1864년 태어나 1921년 세상을 떠난 장지연이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장지연을 두고 항일에서 친일로 변절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사상 측면에서 보면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뀌었다고 보는 근거는 바로 1905년 을사늑약을 비판하는 장지연의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에 실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일본에 맞섰지만 나중에 경술국치를 겪고 합방이 되니 일제 통치에 협력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지연은 처음부터 ‘친일’이었습니다. 장지연이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에 빠져 있었음은 그동안 우리 역사학계가 밝혀놓은 뚜렷한 사실입니다. 러일전쟁이 한창인 때인 1904년 장지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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