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을 두고 ‘제2의 경주’라고도 합니다. 규모나 내용으로 보면 둘은 비교 대상이 못 됩니다. 그러나 경주와 견주는 그것만으로도 창녕이 지닌 가치와 의의가 크다는 얘기가 됩니다. 신라·백제 문화보다 훨씬 덜 알려진 가야문화가, 500년대 들어 신라·백제의 각축 사이에서 거점 노릇을 했던 창녕에, 지나간 역사의 보석 같은 흔적이 되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창녕은 태백산맥을 등으로 삼고서 서쪽으로 낙동강 건너 고령·합천, 남쪽으로 같은 창녕의 영산과 밀양·함안 등 주변 지역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요지랍니다. 창녕을 확보하면 낙동강 본류를 가운데 두고 함안의 안라가야와 고령의 대가야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이 가야 진출의 교두보로 창녕을 병합하고 척경비를 세운 까닭이 여기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