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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집회 2

촛불집회에서 '지역'이 사라진 까닭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꾼 큰 항쟁들은 모두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시작되었거나, 지역의 항쟁이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됐고, 기미독립만세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된 곳도 충남 천안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 친미정권이었던 이승만을 무너뜨린 1960년 4.19혁명은 2.28대구학생데모와 3.15마산의거에서 시작돼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시신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또 박정희 독재의 종말을 고한 79년 부마민주항쟁과 80년대 반독재투쟁의 불씨가 된 광주민중항쟁 역시 '지역'이 중심이었습니다. 87년 6월항쟁도 서울이 중심이긴 했으나 6월 14일 서울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

촛불, 중앙일보와 사진 비교해보니

27일 밤에도 서울 태평로에서는 어김없이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프레스센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집회현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우연히 중앙일보를 봤더니 제가 찍은 것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 1면에 나왔더군요. 그런데 시민들이 앉은 자리가 너무 듬성듬성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28일에 비해 27일은 참여한 시민의 수가 훨씬 작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 눈대중으로 봐도 중앙일보의 사진만큼은 아니었는데,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찍은 사진을 찾아서 대조해 봤습니다. 분명히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포커스로 찍은 것 같은데, 중앙일보의 사진에서 훨씬 참가자의 숫자가 적어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사진에 대해 문외한입니다. 전문가님들, 사진의 비밀을 찾아주세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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