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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한 컷 7

김두관 경남도지사 이런 모습 보셨나요?

며칠 전 서예가인 다천 김종원 선생을 만났습니다. 다천 선생이 옛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남해군수였던 시절, 당시 남해에서 함께 술을 마셨던 기억을 이야기하며 "그 때 김주완 기자가 사진을 찍었는데, 아직도 그 사진을 주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그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집에서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과연 있었습니다. 원래 종이사진인데, 스캔을 받아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과거 남해군수 시절입니다. 정확히 몇년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천 선생께 물어보니 90년대 중후반쯤이었다고 합니다. 1995년 처음 남해군수에 36세의 나이로 당선되어 2002년까지 군수로 있었으니 그 사이이긴 한데, 90년대 중후반 무렵이었다면 김두관 군수가 아직 마흔이 되기 전이었을 겁니다...

97년 여름, 훈 할머니를 기억하시나요?

요즘 독도 문제로 나라 안팍이 떠들석합니다. 각 정당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차원의 독도 방문 이벤트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경남 창원시는 모두들 다 방문하는 독도보다는 차라리 대마도에 가겠다고도 합니다. 물론 일본의 파렴치한 주장에 대해 규탄하는 것은 좋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합니다. 언론의 '떼거리 저널리즘' '냄비 저널리즘' 때문입니다. 또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땐 적극적이다가도 언론의 관심이 식으면 슬그머니 발을 빼버리는 사람들과 단체도 문제는 있습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언론과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한 할머니의 사진을 소개합니다. 바로 '훈 할머니'로 알려졌던 '이남이' 할머니입니다. 엿을 ..

48년 전 여름 마산은 울음바다였다

소복을 입은 아낙네들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다. 무슨 일일까? 1960년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에 의해 이승만 독재가 무너지자, 가장 먼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선 사람들은 한국전쟁 당시 재판도 없이 민간인 신분으로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사람들의 유족이었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상시적인 감시대상으로 찍혀 반강제적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들, 인민군이나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주민 전원이 몰살된 마을... 킬링필드를 능가할 정도로 이렇게 학살된 숫자가 전국적으로 최소 30만, 최대 100만 명에 이르렀다. 경남 마산에서만 해도 1681명이 바다에 수장되거나 산기슭에서 총살당했다. 무고하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전쟁이 끝..

대학생 시절의 장영달 의원과 이상익씨

마산 3·15의거 기념탑 앞이라는 건 알겠는데,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얼른 봐서 모르겠지요?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더라도 누군지를 알아보긴 쉽지 않을 겁니다. 모두 지금도 살아계신 분들이고, 각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분들이지만, 좀 오래된 사진이라 참 많이도 변하셨네요. 이 사진은 마산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대학생 7명이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다음날 찍은 것입니다. 우리 지역출신으로는 앞줄 맨 왼쪽에 앉아 있는 이상익 씨가 눈에 띄네요. 참여정부 시절 한국도로공사 상임감사를 지낸 분입니다. 그는 또 1980년 마산YMCA 간사와 총무(현 사무총장)를 지냈고, 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국본’이라고 부르던 ‘민주헌법쟁취 경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거쳐 90년대 들어 민주당과 평민당 등 야당 정치인 생활..

93년 연단에서 춤추는 고 문익환 목사

경남 마산의 열린사회 희망연대 김영만 전 상임대표가 지난 2006년 자료를 정리하던 중 우연히 찾아낸 사진입니다. 91년인지, 93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답니다. 하지만 사진을 본 독자들이 93년 경남대 한마관이 맞다고 확인해주더군요. 지금 경남도민일보 서울파견기자로 있는 정봉화 기자는 당시 1학년 새내기로 문익환 목사에게 꽃다발을 전해줬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당시 김 전대표가 상임의장으로 있던 ‘민주주의 민족통일 마창연합’이 늦봄 문익환 목사를 초청, 경남대 한마관에서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사진에선 문 목사(왼쪽)와 김영만 당시 의장이 활짝 웃으며 춤을 추고 있네요. 요즘엔 민간차원의 북한 방문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민간인이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까지 만나는 일은 ..

춤추는 권영길과 단병호, 다시 만날까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는 분열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진보가 권력을 잡으면 더 이상 진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보는 영원한 소수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단병호와 권영길이 갈라선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권영길은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다수를 택했고, 그보다 좀 더 진보이고자 하는 단병호는 탈당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진보, 그 속에서도 다시 소수진보의 길을 택한 단병호의 이후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오래 전 사무직 노동자의 대표였던 권영길과 현장직 노동자의 대표였던 단병호가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던 사진 두 장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약 17~8년 전에 제가 직접 찍은 겁니다. 아마 1990년이나 91..

전두환 현상수배 벽보 공개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전사모)이라는 단체가 대구에 사무실을 내고 전두환기념관이라는 걸 만들겠다고 합니다. 전두환 범죄기록관 또는 만행기록관, 학살기록관을 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업적을 칭송하고 전승하자는 기념관이라니 가당치도 않네요. 여기, 21년 전, 6월항쟁이 들불처럼 번진 1987년 6월 10일 경남 마산의 시내 한 건물 벽에 붙어있던 현상수배 벽보가 있습니다. 이 벽보는 당시 한 신문기자가 시위현장에서 수거해 보관하고 있던 중 6월항쟁 20주년이 되던 작년에 저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시위 참여자 중 한 분이 매직으로 휘갈겨쓴 벽보는 당시 시민들의 전두환에 대한 증오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인 강간 폭행 사기 매국'이라는 죄명과 현상금으로 '직선개헌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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