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신 관변단체와 구 관변단체

기록하는 사람 2008. 2. 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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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산진보연합이 '08년 마산시 사회단체보조금 지원사업 개선방안 제안'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요컨대 구(舊) 관변단체에 너무 많은 돈이 지원되고 있다는 거였다.

한국예총 마산지부와 문인협회, 사진작가협회, 연극협회, 미술협회, 노인회, 새마을,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등이 작년에 받은 돈만 3억여 원에 달했다. 특히 3대 관변단체(새마을,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와 노인회 등에는 경상경비라고 할 수 있는 운영비까지 지원되고 있었다. 이들 단체 외에도 운영비를 지원받은 단체는 24개가 더 있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산진보연합 회원이 마산시청 앞에서 사회단체 보조금 지급을 공정하게 하라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단체 운영비' 지원 사라져야

흔히 관변단체냐, 시민단체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운영비 지원 여부를 꼽는다.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운영비까지 지원을 받아야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면 '비영리민간단체(또는 시민단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단체는 지원을 해주는 관(官)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관변단체(官邊團體)'라고 부른다. 과거 독재정권이 민(民)을 통제하고 계도(啓導 : 가르쳐 이끄는 일)하겠다는 발상에서 만든 단체가 그것이다.

따라서 진보연합이 그런 단체에 대한 편중지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진보연합의 제안 중 '단체운영비 지원단체의 기준 설정'이라는 부분이 영 못마땅하다. 아예 사회단체 보조금 명목에서 '단체운영비'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단체는 '민간단체'도 아니고 '사회단체'도 아니며 '시민단체'도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이 만들었던 국민운동지원법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하고, 그들 구(舊) 관변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도 완전히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 외에 새롭게 운영비 지원을 받는 신(新) 관변단체가 있다면, 그 역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나는 운영비뿐만 아니라 사업비 지원을 받는 단체 또한 그들이 '시민단체'라고 자칭하는 게 못마땅하다. 주지하듯 시민운동은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의 대안운동처럼 시작됐다. 이 덕분에 그동안 '정권타도'에만 집중돼 있던 과제를 각 지역과 분야별로 구체화했고, 풀뿌리 현장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많은 시민운동가가 정권의 품이나 정치권으로 들어갔고, 남아 있는 시민단체들도 정부나 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으면서 '준 관변화' 했다. 11년 전인 1996년 NGO 이론가인 정수복은 21세기 시민운동을 전망하면서 "(공적자금 지원을 받는) 사회운동단체가 정부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관변단체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 우려가 나온 뒤 김대중 정권 들어 2001년 1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제정됐다. 이 법의 제정에 앞서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전국 76개 시민단체가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이랬다.

"정부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의 제도는 민간단체의 재정자립성을 흔들 우려가 크다. 시민사회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 현실에서 이 같은 방식의 지원은 정부 지원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킬 것이며 나아가 민간단체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자율성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따라서 이 법에 의한 정부의 직접 재정지원은 민간단체의 활동을 역으로 통제,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막상 이 법이 시행되자 문제를 제기했던 시민단체들도 저마다 지원신청서를 냈고,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사업비 지원을 받았다. 이후 그 지원규모는 계속 늘어만 갔고, 심지어 상당수 단체는 아예 정부가 수행해야 할 사업을 위탁받아 인건비 등 경상비까지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하고 있다.

'정부보조단체'로 부르자

그래서 나는 이런 단체를 '정부보조단체'쯤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정부가 해야 할 공익사업을 보조적으로 수행하는 단체라는 뜻이다.

그런 '정부보조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팸플릿이나 자료집에는 반드시 지원받은 예산의 액수와 명목, 지원기관을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행사는 행정자치부의 ○○○지원사업에 따라 ○○○항목의 사업비 ○○○만 원을 ×××단체가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는 내용을 밝히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원된 금액에 비해 터무니없는 부실프로젝트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내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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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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