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명박보다 더 무서운 것은 관성

김훤주 2009. 3. 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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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하면 저는 근육이 떠오릅니다. 물론 자연인 이명박은 전혀 근육스럽게 생기지 않았습니다만. 이명박의 힘은 근육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근육은 머리랑 제대로 연결이 돼 있지 않습니다.

종합적인 사고와 판단 아래 근육이 움직이지는 않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분법에 따라 움직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나마 옳으냐 그르냐, 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도 않은 것이, 돈 되냐 안 되냐, 또는 내 편이냐 아니냐, 입니다.

어쩌면 아메바 같은 진짜 단세포 생물들이 화를 내겠습니다만, 정말 이해 관계에 단세포적으로 충실합니다. 물론 그래서 고마운 점도 있습니다. 지배계급의 본질을 아무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는 것 말입니다.

시위 진압도, 이명박식은 노무현이나 김대중식하고 다릅니다. 이미지로 처리한다면, 김대중이나 노무현 진압은 이리저리 이야기나마 주고받고 애써 웃기라도 하면서 하는 진압이고 이명박은 싹 입 닫고 눈 내리깔고 하는 진압입니다.

이명박과 히딩크와 이명박 아들과 이명박 사위(왼쪽 뺨만 보이는 인간). 2002년 7월 3일. 돈도 안 되는데 이런 장면을 왜 연출했을까요? 오마이뉴스 사진입니다.


이명박과 이명박 정부에는 소통이 없습니다, 라고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소통이 없으니까 모든 것이 작전이 됩니다. 미디어 관련법 처리도 작전이고 용산 철거민 진압도 작전입니다. 촛불시위에 대한 부활 백골단도 작전입니다.

이명박 하면 저는 돈다발이 떠오릅니다. 재벌 건설회사 사장을 지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김경준이라는 사람이랑 한 때 죽이 맞아 회사 차리고 돈번다고 돌아다녀서도 그렇습니다. 재산 헌납한다 해놓고도 당선되니까 이태가 지나도록 아무 말 없는 데서도 그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몇 차례 구설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 자동차 운전수를 자기 소유 건물 관리회사 직원으로 위장 취업시켰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저는 그 때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명박은, 문제의 위장 취업이 왜 문제가 되는지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명박의 머리는,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판단하는데, 거기에다 옳느냐 옳지 않느냐는 문제가 입력됐으니 문제라는 소리였습니다.

이명박의 지금 머리는 아마도, 정권 유지에 보탬이 되느냐 여부, 자기를 포함한 지배계급에게 이익이 되느냐 여부로 모든 것을 판단할 것입니다. 여태까지 이명박 정부 들어 추진한 모든 정책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무서운 것은요, 이명박의 정권 유지하고 지배계급의 이익 도모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제가 신문에 몸담고 있기에 신문법과 방송법을 보기로 들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신문법은 신문의 방송 겸영을 금지하고 있습니다.(이것은 합헌 판결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송법은 재벌의 방송 진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이 금지를 모두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가 크게 반대하고 시민사회도 함께 반대하는 조항입니다. 신문의 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진입은 조중동과 재벌들의 짝짓기로 현실화될 것입니다. 조중동은 콘텐츠를, 재벌은 돈다발을 아마 출자할 것입니다.

조중동은 재벌과 한 몸이 되고 여론 독과점은 더욱 심해집니다. 신문과 방송의 정권과 재벌 편들기도 더욱 심해집니다. 미디어의 공공성과 다양성은 갈수록 사라집니다. 특히 방송 매체는 영리 추구를 위해 선정성과 상업성을 더욱더 띠게 됩니다.

정권 유지에도 보탬이 되고 재벌을 비롯한 지배계급의 이익에도 복무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미디어판이 이렇게 짜이면, 자본으로서는 아마, 영구 집권이 가능해질는지도 모릅니다. 유권자 대다수의 정신세계를 상당 부분 장악·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명박의 힘은 이처럼 자본의 이익을 직설적으로 대변하고 관철하려는 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자본을 키우고 그 힘을 다시 정권 유지를 위해 끌어오고 하는 식입니다.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무한 확대 재생산이 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명박의 힘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입니다. 배제하고 차별하고 차단하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부자에게 보탬이 되면서 동시에 가난한 이에게는 도움이 되는 그런 힘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한계들이 지금 당장 작동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부자에게는 가진 것을 덜 내놓게 하는 힘이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가진 것 또는 가져야 할 것을 빼앗아가는 힘입니다. 이렇게 빼앗은 것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나눠주는 힘입니다. 부자들 사이에는 서로 배려해 주는 포용력이 있지만 그런 포용력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무섭습니다. 그러나 무섭기로 따지자면 저는 이명박보다 더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관성입니다. 아시는대로 관성은,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 하고 가만 있는 것은 계속 가만 있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따위들의 힘은 자본의 팽창을 바탕으로 계속 세어지고 있습니다만, 
가난한 이들 따위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점점 더 가난해져서 그렇다는 측면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갈수록 분자화 원자화돼서 잘아지고 공통의 문제에 대해 관심도 가지지 않아 그렇다는 측면이 더 큽니다. 점점 더 그렇게, 아주 빠른 속도로 가고 있습니다.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언론노조가 그렇습니다. 지난해 12부터 올 1월까지, MBC만 파업을 했습니다. 그나마 CBS는 동참하고 SBS는 응원이라도 했습니다. KBS는 뒤늦게 따라붙었습니다. 그러나 신문 쪽은 아예 참담했습니다. 지역신문들의 지면파업(파업이라기에는 지역 신문 따위의 낯이 간지럽지만)이 체면은 세워줬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가진 이들, 지배집단, 저 이명박 정권의 힘이 갈수록 세어져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 지배당하는 집단, 서민 대중의 힘이 갈수록 줄어들어 두렵습니다. 더욱이 이런 관성에는, 아무도 어떤 집단도 맞서지 못하는 것 같아 더욱 두렵습니다.

김훤주
== 광주의 굉장한 명물 <전라도닷컴>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그런데 제 글이 주문한 취지에 맞지 않고 게다가 분량도 많아 손질을 많이 당했습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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