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역성 공공성 고려 없는 이명박 언론정책

김훤주 2009. 2. 2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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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니 국회에서 또 미디어 법안 전쟁이 벌어질 모양입니다. 한나라당은 조만간 미디어 관련 법안을 다시 국회에서 처리하겠다 합니다. 야당인 민주당은 내일 소속 국회의원 비상 대기에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물론, 제가 소속된 언론노조는 다시 파업에 들어갈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썼던 이 글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생각도 듭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경남지회 기관지 창간호에 싣겠다는 원고 청탁이 들어온 시점입니다. 이달 초 "시간도 오래 지났고 상황도 바뀌었으니 좀 빼면 어떻겠느냐?"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겉으로만 바뀌었고 알맹이는 그대로 아니냐? 미디어 관련 법안 개정/제정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그대로 가겠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오늘에야 그 책 <예술IN, 예술人>이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같은 취지로, 그 글을 블로그에 한 번 올려봅니다.


1. 재벌과 서울만 위하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 정책의 핵심은 수도권과 독점자본에 있습니다. 시장성과 경쟁력으로 포장돼 있지만 한 껍질만 벗겨보면 이런 편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피비린내까지 진동을 합니다.

2008년 12월 29일 오후 마산시 창동 문화의 거리에서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 시민 150여 명이 모여 치른 MB 악법과 언론장악저지 촛불문화제.


종합 부동산세 규정 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상정 전 의원 말마따나, 실제 과세 대상이 되는 시가 15억원 웃도는 아파트가 서울 강남이 아닌 데에 과연 몇 채나 있겠습니까? 종부세 완화 보람은 서울 강남이 누리고, 감세 고통은 비수도권 서민이 주로 집니다.

수도권 규제 철폐도 그렇습니다. 주거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안 그래도 수도권에 몰려드는 투자 손길을 더 끌어들이겠답니다. 게다가 굉장히 뻔뻔합니다. 불황이 손에 잡힐 듯 나타난 시점에, 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내걸고 이처럼 비수도권 차별을 내놓았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은 미디어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서울과 재벌이 문제의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 매체를 위한다면, 그리고 재벌에 보탬이 된다면……. 지역 신문 지역 방송이야 그까짓 무슨 쓸모가 있어?

2. 서울일간지 조중동 배만 불리는 신문법 개악

여기서 시작하겠습니다. 11월 9일, 노동자들이 서울에 모여 노동자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시간대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고흥길 씨가 “신문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신문법 개정-저는 개악이라 합니다.-의 핵심은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 변경과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 두 가지입니다. 둘이 겨냥하는 바는 바로 재벌 신문(또는 신문 재벌)을 더욱 살찌우는 데 있습니다.

현행 신문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을 모든 일간지를 합산한 신문시장에서 1개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일 때 또는 3개 신문 비중이 60% 이상일 때로 정해 놓았습니다. 이 기준을 넘으면 여러 제약을 받게 돼 있습니다.

이는 2006년 6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습니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신문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내린 결정이라는 불만이 있지만, 어쨌든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문제로 삼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현재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바, 매체의 성격상 종합일간지로 한정해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야 함에도, 스포츠신문과 경제신문으로도 모자라 무료신문까지 더하는 방안은 그야말로 지나치다는 말씀은 드려놓겠습니다.

알기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지금 조중동의 여론 독점은 80%에 이른다고 합니다. 80%는 서울과 지역에서 발행되는 종합 일간지를 대상으로 삼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여기다 종합일간지와는 성격이 크게 다른 스포츠신문과 경제신문 그리고 무슨 메트로 같은 무료일간신문까지 집어넣으면, 조중동 비중은 당연히 낮아지게 됩니다.

한나라당은 무차별로 이렇게 해놓고 20% 이상이라는 기준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리 한다면, 기준에 걸리는 신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조중동의 여론독점을 사실상 제한 없이 허용하고 보장하겠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3. 조중동+재벌 방송의 출현 보장

2008년 11월 6일 언론노조 부울경 협의회와 언론장악저지 경남연대 창원 명곡동 한나라당 앞에서 벌인 파업승리와 YTN사수를 위한 출정 기자회견.


더욱 중요한 사안은 ‘신문의 방송 겸영 금지’ 폐지입니다. 헌재도 이에 대해서는 “여론 다양성 보장을 위한 필요한 제한”이라며 “신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을 한 바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표리부동하게도 제각각 다른 기준을 들이댑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은 위헌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변경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면서 개악을 추진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면, 여기 합헌 결정을 받은 ‘신문의 방송 겸영 금지’는 손을 대지 말아야 마땅합니다.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은 이렇게 진행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MBC 사유화와 KBS 2TV 매각, MBC나 SBS 같은 방송사가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은 종합편성채널 신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방송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합니다. 조중동은 재벌과 합작해 이것들을 ‘날름’ 또는 ‘냉큼’ 받아 챙깁니다.

신문의 방송 겸영을 허용하면 조중동의 여론 장악력은 당연히 더욱 세어집니다. 아침마다 수백만 부를 깔아대고 그것을 다시 방송에서 종일 떠들어댑니다. 방송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불법 경품을 마음껏 뿌려 독자 매수를 확실히 함으로써 신문시장을 완전 초토화할 것입니다. 폐해가 어떠할지는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입니다.

재벌+조중동 방송은 이윤 추구도 목적임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프로그램의 상업성과 선정성은 훨씬 더 심해집니다. 현재 방송은 다(多) 공영 1 민영입니다. 이명박 정부 정책대로 되면 1 공영 다(多) 민영으로 바뀝니다. 지금은 상업방송인 SBS조차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영향을 받아 작으나마 공영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다(多) 민영으로 바뀐 뒤에는 그 반대가 되기 십상입니다.

4. 예상되는 미디어 산업 판도는?

조중동과 재벌의 합작을 손쉽게 해주는 또다른 방안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방송법 시행령 개악입니다. 지금 방송법에는 재벌(독점자본)의 방송 진입을 자산규모 3조원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물론 목적은 방송의 공공성 유지(달리 말하면 방송에 대한 재벌의 영향력 행사 배제)에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3조원 이하를 10조원 이하로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웬만한 재벌은 곧바로 방송에 뛰어들 수 있게 됩니다. 정부는 이처럼 재벌에게 날개를 달아주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 방송이 돈만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컨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프로그램 내용이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누가 갖추고 있느냐, 바로 조중동입니다. 조중동은 신문을 여태 발행해 왔고 이런저런 케이블 채널도 운영해 왔습니다. 나름대로 실력과 안목과 프로그램 내용을 쌓아왔다는 얘기입니다.

미디어 시장은 이렇게 짜입니다. 공영방송은 KBS1TV 하나입니다.(한나라당은 이마저 국가기간방송법 제정을 통해 예산편성권을 빼앗음으로써 프로그램 자율성을 제거하고 정부 비판을 잠재우려 합니다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다만 국회에서 예산이 정해지는 과정이 곧바로 다음 한 해에 방송될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말씀은 일단 붙여 놓겠습니다.)

상업방송은 적어도 3개입니다. SBS와 사유화된 MBC, 자본에 팔려간 KBS2TV입니다. 조중동(적어도 이 가운데 둘)은 신문과 방송 둘 다를 갖는 미디어 재벌로 변신할 것입니다. YTN이나 MBN 같은 보도전문채널은, 하나 정도 더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판짜기는 아마 이렇게 끝이 날 것입니다.

5. 지역신문․방송에게는 고사작전

그러면 이삭줍기가 남았습니다. 서울 또는 수도권 신문과 방송의 폐해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규제 철폐를 다루는 보도에서도 나타난 대로, 서울 방송과 신문들은 지역-비수도권의 이익을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수도권 매체들에게 비수도권은 이상한 엽기 사건이 일어나는 곳으로만 비칩니다. 아니면 서울-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평소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주말에 쉬러 가기 적당한 그런 곳으로만 보도합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2007년 11월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마산 수정만 매립지 STX 진입의 문제점을 짚은 수도권 신문 방송은 없다시피 합니다. 마산시의 폭력적 행정, 하나에서 열까지 거짓말로 가득찬 STX의 약속,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조차도 직접 고용은 하나도 없는 STX중공업의 고용 정책 등을 짚은 서울-수도권 매체는 전혀 없었습니다. 인천 앞바다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서울-수도권 매체들이 이토록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별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곧바로 보도됩니다. 밀양 감물리 생수공장을 저지하려는 어르신들이 복면을 쓰고 시위를 했다든지(왜 복면을 썼는지, 이를테면 생수공장 쪽에서 사진을 찍어 곧바로 경찰에 고소를 하거나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고 했다든지 하는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들이 떼 지어 바깥으로 나가 며칠째 도로를 돌아다니고 있다든지 하는 보도만 나갑니다. 서울 사람들 볼 때 지역은 이처럼 이상하고 엽기적인 일만 일어나는 동네일 뿐입니다.

이삭줍기는, 지역 신문과 지역 방송의 고사 또는 말살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수도권뿐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도, 지역 신문이 질이 떨어지고 문제가 많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현실을 전제로 해서, 지역신문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로 2004년 만들어진 법률이 바로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입니다. 2010년까지 시행되는 한시법입니다. 법률의 취지는 제대로 된 지역 신문을 ‘선택’해 지원을 ‘집중’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편집권 독립의 제도적 장치 마련과 실행, 임원이나 직원에게 비리 부정이 있는 신문사 배제, 독자들의 보도 감시 시스템 구축 가동, 근로기준법 등 위반 사안 신문사 배제 등을 통해 ‘독버섯’ 지역신문을 걸러내고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를 선정합니다. 그러고는 여기에다 가능한 지원을 다하고 있습니다.(일간지뿐 아니라 주간지도 대상입니다.)

지역신문들은 노사 구분이 없이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시한을 연장하든지 아니면 일반법으로 전환해 영구(永久)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책은 ‘방치’입니다. 팽개쳐 놓으면 2010년 시한이 다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이라는 논리입니다. 지역신문을 위한 지역신문발전위원회를 한국언론재단 등에 통합시켜 독립성을 없애버리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지역신문이든, 독버섯 같은 지역신문이든 작은 것들은 제발 사라져라 성가셔 죽겠다, 꼭 이러는 것 같습니다.

지역방송은 어떻게 고사될까요? 방송광고시장을 뒤흔들어 버리면 됩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지금 하고 있는 방송광고 판매는 ‘공익적 연계’가 바탕입니다. 이를테면 잘 나가는 방송 프로그램에 광고를 하려면,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의 잘 나가지 못하는 프로그램에도 광고를 하도록 돼 있는 것입니다.

시장 경제에만 맡겨 놓으면, 여론 다양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의 약자나 소수를 위한 방송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뭉개려 합니다. 사설 방송광고대행업체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사설 업체들은 철저하게 이윤 추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자식 죽고 나서 불알이나 만질까?

이렇게 되고 나서 4년이나 5년 뒤에는, 그러니까 2013년이나 2014년에는, 지역에서도 서울-수도권 신문과 방송밖에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감시와 비판이 부담스러운 지역 토호에게는 아주 살맛나는 세상이겠지요.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지역 신문 방송이 없어지면 지역의 삶과 문화와 역사에 대한 기록과 보관과 성찰과 전망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삼아 한 번 더 말씀드리자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게는 지역의 가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약자의 몸부림도 보이지 않고 그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독점자본과 서울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경향은 그들의 매체 정책에서도 관철되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의 언론장악 정책을 저지하지 못하면 나중에 자식 죽고 나서 불알 만지는 꼴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 죽고 나서 되살리기가 쉬울까요, 아니면 지금 좀 거들어줘서 죽지 않도록 하는 편이 더 나을까요.

2008년 11월 13일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당시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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