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삼국지보다는 리얼한 적벽대전 2

김훤주 2009. 2. 23.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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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스토리 전개가 빨랐습니다. 원본으로 삼은 삼국지연의를 보면 적벽대전을 두고 갖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여기서는 거의 다 생략했습니다. 허무맹랑은 줄이고 리얼리티와 긴장감은 살렸습니다.

삼국지연의에는 방통이 조조 배를 묶어 두려고 연환계를 쓰는 장면도 나오고, 주유가 제갈량을 여러 차례 죽이려고 하는 상황도 나옵니다. 영화에 나온 장간도 두 번이나 주유에게 속으며 제갈량이 마지막에 동남풍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주유가 위나라 수군 장수 채모와 장윤을 처치하는 것과, 제갈량이 조조 군사를 속여 화살을 쏘게끔 해서 화살을 장만하는 장면만 살립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것들이 제각각 떨어져 놉니다만,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단단하게 서로 엮여 있습니다. 제갈량과 주유는 제각각 맡은 일을 이루지 못하면 목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장간이 주유에게 속아 채모와 장윤의 거짓 항서를 가져가고, 가져간 날 제갈량이 노숙과 함께 안개 속에 배를 몰아 나갑니다.

화살을 얻는 데 성공한 제갈량과 노숙.

가운데 조조가 채모와 장윤을 논죄하는 장면.

이렇습니다. 채모와 장윤은 오나라 수군이 진짜 쳐들어오는 줄 알고 화살을 비오듯 쏟아붓게 했고, 이것은 조조로 하여금 주유랑 내통했기 때문에 저토록 차분히 살펴보지도 않고 화살을 쏘아 갖다 바치다시피 했으리라 짐작하게 만듭니다. 곧바로 후회하지만 목은 이미 떨어졌습니다.

2.
동남풍 장면, 그러니까 불로 공격하는 시점은 어떻게 처리할까에도 저는 관심이 쏠렸습니다. 삼국지연의처럼 황당무계해지기 쉽고 아니면 조조를 바람이 바뀌는 시점도 모르는 멍청한 인물로 그려 리얼리티가 떨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소교의 등장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보였습니다.

소교가 조조 진영으로 혈혈단신 건너가는 것은 사실 무리한 설정입니다만, 영화 전편에서 소교를 반전 평화의 화신처럼 만들어놓았기에 한편으로는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군사를 물리시라 권하고, 그리 안 되면 공격하는 타이밍이라도 빼앗아 보겠다…….

조조 앞에서 스스로 목을 베겠다고 칼을 빼드는 소교.

어쨌든, 이보다 더 좋은 설정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소교가 조조 진영에 투입됨으로써 영화에서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주유가 군사를 몰아 화공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끝이 났어야 했겠지요. 그리 안 하면 맥빠진 장면 전개가 되겠지요.

마지막, 조조와 주유와 조자룡 따위가 서로 칼을 들고 상대방 목에 겨누고 한 설정은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어 보였습니다. 아마 제작진도 유치하다 여기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적벽대전의 주인공들끼리 얘기를 나누게 하려고 그리 했겠다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보러 간 우리 아들도 재미있게 잘 봤다면서도 안 좋은 점 몇몇을 꼽았습니다. 저도 동의했습니다. 손권의 동생 손상향이 적정 탐색을 위해 조조 군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손숙재라는 사람을 만나 친해집니다. 나중에 손상향은 돌아오고 한창 전투 중에 손숙재와 만납니다.

손상향이 아는 체를 하고 손숙재는 그냥 반가워 뛰어옵니다. 손상향 뒤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이를 맞은 손숙재는 웃으며 숨을 거둡니다. 손상향은 물론 화살 한 대 맞지 않지요. 어색합니다. 아들은 “짜증이 났어요.” 이랬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주유와 아내 소교가 제갈량을 떠나보냅니다. 제갈량 손에는 망아지 고삐가 쥐어 있습니다. 전편에서, 제갈량이 받아냈던 망아지입니다. 그러면서 ‘이 망아지만큼은 전쟁에 쓰이지 않도록 해 주시라.’ 취지로 말합니다.

제갈량과 주유와 소교의 인간적 풍모와 전쟁을 싫어하는 심정을 보여준다는 평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앞서 나온 장면들로도 그런 심정은 충분히 보여졌다는 생각으로 보면, 괜한 손찌검 또는 덧칠한 마무리 같이 보입니다. 아들은 “싸구려 같아 보였어요.”, 이랬습니다.

김훤주

삼국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정일 (김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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